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게이츠 원전에 425억 넣은 정기선…4년 뒤 '배 위 원자로' 그린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8.14 13:34
수정 2026.08.14 14:07

빌 게이츠와 7개월 만에 재회…4년 원전 동맹

육상 SMR 넘어 2030년 원자력 추진선까지 겨냥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지난 1월22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에서 테라파워 창업자 겸 회장인 빌 게이츠와 만난 모습.ⓒHD현대 인스타그램 캡처

425억원의 투자가 4년 만에 원자로 기자재와 원자력 추진선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14일 오후 빌 게이츠 테라파워 창업자와 서울에서 다시 마주 앉는다. 두 사람의 만남은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 이후 7개월 만이자 네 번째다. HD현대가 개발 중인 1만5000TEU급(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원자력 추진 컨테이너선은 지난해 공개 당시 개발률이 절반 수준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같은 날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게이츠를 따로 만난다. SK와 HD현대 모두 테라파워의 주요 주주다. 정 회장과 게이츠의 만남이 눈길을 끄는 건 2022년 투자 이후 4년간 원자로 기자재 제작과 상업 공급망 구축, 원자력 추진선 기술개발로 협력 범위가 실제로 넓어져 왔다는 점이다.

투자로 시작해 조선까지 번진 4년

거슬러 올라가면 시작은 2022년 11월이다. HD현대의 조선 지주사(당시 한국조선해양)가 테라파워에 425억원을 넣으며 처음 관계를 맺었다. HD현대는 당시부터 해상 원전과 원자력 추진선 등 미래 조선사업과의 연계를 투자 목적으로 내걸었다. AI발 전력 수요가 지금처럼 폭발하기 전부터 정 회장이 이끄는 HD현대가 차세대 원전과 원자력 추진선에 일찌감치 베팅한 셈이다.


이후 협력 단계는 한 계단씩 착실히 올라갔다. 원자로 기자재를 직접 만드는 단계로 넘어간 건 2024년 12월이다. 테라파워가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에 짓는 345MW급 소듐냉각고속로(SFR·4세대 원자로의 일종)용 원자로 용기 제작을 HD현대가 수주했고, 지금도 이 물량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에는 협력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 3월 미국에서 나트륨 원자로 상업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대 업무협약을 맺은 데 이어 6월에는 테라파워가 6억5000만 달러 규모 투자를 새로 유치하면서 게이츠·HD현대·엔비디아 산하 NVentures가 참여자로 이름을 올렸다(개별 투자액은 비공개). 8월에는 서울에서 정 회장과 게이츠가 다시 만나 그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올해는 속도가 더 붙었다. 5월 HD현대중공업이 테라파워와 나트륨 원자로 공급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맺으면서, 원자로를 감싸는 외함시스템(RES) 핵심 설비의 우선제작사로도 이름을 올렸다. HD현대가 초기 투자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 후속 투자에도 참여했다는 점은, 정 회장이 테라파워와의 협력을 장기 전략으로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만 해도 425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였으나 4년이 흐른 지금은 원자로 기자재 제작과 상업 공급망, 원자력 추진선 개발로 사업 영역이 구체화됐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지난해 9월 27일 경북 경주시 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을 진행하고 있다. ⓒHD현대
다음 무대는 '배 위의 원자로'

여기까지는 육상용 SMR(소형모듈원자로) 얘기다. 하지만 정 회장의 시선은 바다로도 향하고 있다. 작년 2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해양원자력서밋에서 이 회사는 1만5000TEU급 컨테이너선에 원자력을 동력원으로 얹은 모델을 처음 세상에 내놨고, 미국선급협회(ABS)로부터 개념설계 인증도 받았다. 이 배의 개발 진행률은 지난해 하반기 공개 당시 약 50%였다. HD현대는 2030년까지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다.


테라파워와의 협력이 다른 투자자들과 구별되는 지점도 여기다. HD현대는 원전 자체의 성장성에 투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룹의 본업인 조선과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올해 들어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3월 9일 ABS와 손잡고 이번에는 1만6000TEU급 배에 들어갈 '원자력 연계 전기추진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원자력 추진선의 개념설계에서 실제 추진에 필요한 전력계통으로 기술개발 범위를 넓히고 있는 셈이다.


이 기술이 향하는 곳이 상선만은 아니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HD현대는 지난해 10월, SMR 추진선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이 향후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역량 확보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기존 조선 기술을 원전 기자재로, 다시 원자력 추진 상선과 잠수함으로 넓혀가는 방식은 HD현대가 최근 강조해온 사업 확장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오늘 만남이 갖는 무게

HD현대만 뛰어든 시장은 아니다. 삼성중공업도 한국원자력연구원 등과 1만5000TEU급 MSR(용융염원자로) 추진 컨테이너선을 개발하며 경쟁하고 있다. 정부도 선박용 SMR 기술개발을 지원하면서 국내 조선사들의 원자력 추진선 경쟁은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HD현대 이력이 눈에 띄는 건 쌓아온 시간 때문이다. 이 흐름이 시작된 건 2022년, 425억원짜리 투자 하나였다. 육상 SMR을 넘어 해상 원전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이 이날 테이블에 오를지도 관심사다. 4년째 같은 방향을 한 걸음씩 밟아온 정 회장의 행보를 보면, 오늘의 만남 역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