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대표 후보들, 레버리지 ETF 도입 사과…"정말 신중했어야" 등 [8/12(수) 데일리안 퇴근길 뉴스]
입력 2026.08.12 16:30
수정 2026.08.12 16:30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정청래, 김민석 당대표 후보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TV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당대표 후보들, 레버리지 ETF 도입 사과…"정말 신중했어야"
8·17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나선 당대표 후보들이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에 대해 사과했다.
김민석·정청래·송영길 후보는 12일 SBS에서 주관하는 민주당 대표 후보자 토론회에서 삼전닉스 레버리지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먼저 김민석 후보는 과거 국무총리로 재임했을 당시 국무회의를 주재해 레버리지 ETF를 통과 시켰다는 점 도입안을 통과시켰다는 점을 사과하면서 "경제팀 고유 사안이라 사전에 특별히 대면보고는 없었다"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서 그 이후에 예탁금 상향 등을 통해서 일정한 안정을 지금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만 저희들이 더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일부에서 얘기하듯이 거래를 바로 중단했다거나 했다면 더 큰 무리수로 혼란이 났을 것"이라며 "이 문제를 야당에서 특히나 여당 내에서 과도한 정치공세로 삼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청래 후보도 김 후보가 국무총리 재임 시절 레버리지 ETF 법령안을 제출한 점을 언급하며 "금융감독원장이 '내가 들어 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고 했다"며 "정말 신중해야 했었다고 생각하다"고 밝혔다.
이어 "김 후보가 책임 회피성 발언을 하는데 사과는 해서 정말 다행"이라며 "주식은 신뢰가 기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몫이지만 문책할 일이 있다면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영길 후보는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외환보유와 환율 관리 등을 위해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지만 성급한 면이 있었다"며 "AI(인공지능) 시대가 거꾸로 가지 않는 이상 반도체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생각하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수익도 나쁘지 않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경의선숲길 사용료 부과' 판결 확정에 "겸허히 수용…관련 행정 절차 이행"
경의선숲길 공원 부지 사용과 관련해 서울시가 국가철도공단이 부과한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대법원이 12일 판단한 것과 관련해 서울시는 "대법원 판결 결과를 겸허히 수용한다"며 "향후 변상금 납부 등 관련 행정 절차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후속 절차를 이행할 예정"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이날 서울시가 국가철도공단을 상대로 낸 변상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경의선숲길은 경의선 철도를 지하화하고 만든 것으로 효창공원앞역∼가좌역 약 6.3㎞ 구간에 조성된 공원이다. 지난 2010년 서울시-국가철도공단 간 협약에 포함된 '국유지 무상사용' 약속에 따라 현재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경의선숲길은 과거 철도로 인해 단절되었던 도심 공간을 녹지로 재생해 '연트럴파크'라는 애칭과 함께 매년 수백만 명의 시민과 방문객이 찾는 서울의 대표적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11년 4월 국유재산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개정된 시행령에 따르면 국유지를 1년 이상 무상으로 대여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안녕, 크레이지 아케이드"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PC방으로 달려가 물풍선을 놓았다. 한 대의 컴퓨터 앞에 둘이 붙어 앉아 키보드를 나눠 쓰기도 했다. 상대를 물방울에 가둔 뒤 터뜨리는 간단한 게임이었지만 한 판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한 판만 더"가 이어졌다.
200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익숙한 넥슨의 장수 온라인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25년의 서비스를 마친다. 넥슨은 오는 13일 오전 9시 크레이지 아케이드 서비스를 종료한다.
2001년 서비스를 시작한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물풍선을 설치해 상대를 물방울에 가두는 간단한 대전 방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다오·배찌·디지니 등 귀여운 외모의 캐릭터들을 앞세워 빠르게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이듬해인 2002년 최고 동시접속자 수 35만명을 기록했고, 출시 후 수년이 지난 2006년과 2008년 겨울에도 동시접속자 수가 10만명을 넘겼다.
당시 크레이지 아케이드만의 승부수는 캐주얼함이었다. 방향키로 움직이고 물풍선을 내려놓는 것만 알면 누구나 게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동시에 상대의 이동 경로를 읽고 연쇄 폭발을 만들거나 물줄기를 피해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승부가 갈리는 등 긴장 요소도 갖췄다.
특히 한 대의 PC에서 두 명이 함께 게임할 수 있었던 '2P 플레이'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만의 추억을 만들었다. 친구나 형제가 같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나눠 잡던 모습은 당시 PC방과 가정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기자의 인생 첫 게임 역시,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집에 놀러온 동네 친구가 설치해준 크레이지 아케이드에서의 2P 플레이였다.
많은 이들의 추억이 서린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서비스 종료 소식이 들리자, 한동안 게임을 떠나 있던 이용자들도 다시 게임으로 돌아오는 현상도 나타났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마지막으로 함께 게임할 사람을 모집하거나 어린 시절 즐겼던 맵을 다시 찾아가는 모습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모아온 희귀 아이템을 다른 이용자에게 나눠주고, 공들여 꾸민 캐릭터와 게임 화면을 캡처해 남기는 이용자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