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빈(國賓), 언제까지 호텔에 머물러야 하나 [정상환의 시대읽기]
입력 2026.08.07 07:00
수정 2026.08.07 07:00
국가 원수 예우 상징 영빈관
외교 환대도 갈리는 한 끗
30년 전부터 건립 논의 반복
韓영빈관 위상 갖춰야 할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 시간) 백악관 서관 입구에서 이재명 대한민국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뉴시스
공직생활을 돌아보면 가장 의미 있고 자랑스러운 기억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 해외순방에 실무자로 참여했던 일이다. 대통령과 함께 세계를 누비며 정상외교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백악관도, 크레믈린궁도, 엘리제궁도, 중남해도 그외 수 많은 나라의 권부를 둘러보는 영광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곳은 의외로 각국의 영빈관이다.
미국의 블레어 하우스, 중국의 조어대, 인도의 하이데라바드 하우스….
국가마다 이름은 달랐지만 역할은 같았다.
'당신은 우리에게 귀한 손님입니다'라는 메시지를 건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중국의 조어대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17개 안팎의 독립 건물로 이루어진 작은 외교도시와 같았다.
국가원수만 머무는 곳이 아니다. 장관, 국제기구 대표, 세계적 기업인, 문화예술인까지 중국이 특별히 예우하고 싶은 손님이라면 조어대로 초청한다.
그래서 중국에서 "조어대에 묵었다"는 말은 단순히 숙박을 했다는 뜻이 아니다.
중국으로부터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는 외교적 상징이다.
미국의 블레어 하우스도 마찬가지다.
백악관 맞은편에 자리한 그 건물은 미국 대통령이 초청한 국빈을 맞이하는 공식 영빈관이다.
그곳에 머문다는 것은 미국이 상대국을 최고 수준으로 예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빈관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다.
환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국격을 말하는 또 하나의 외교 언어다.
필자는 오래전 이지만, 해외순방 때마다 그 영빈관과 숙소에서 밤을 새워 일한 기억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해외순방이라면 관광도 하고 여유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전 선발대인 정부답사단은 현지 점검을 마친 뒤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함께 움직이는 본대 수행은 다르다. 공항에서 숙소, 숙소에서 행사장, 다시 회담장…. 내가 다닌 나라는 많지만 정작 본 풍경은 별로 없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었을 때다. 청와대 공보팀은 국내 방송 뉴스를 모니터해 요약보고서와 주요 신문기사를 팩스로 보내왔다. 우리는 그 자료를 정리해 대통령께 보고했다. 시차로 인해 날 밤도 샜다.
몸은 워싱턴이나 베이징에 있었지만 대통령의 머릿속은 늘 서울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빈관 하나에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자존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구 하나, 그림 한 점, 식기 하나까지도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블레어 하우스 거실에 걸려 있던 초상화 한 점도 아직 기억난다. 누구를 그린 그림인지는 이제 희미하지만, 그 공간이 풍기던 무게감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청와대 영빈관은 매우 빈약하다.
국빈만찬과 공식행사를 위한 연회장에 불과하다.
이름은 영빈관이지만 외국 정상이나 주요인사들이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은 아니다.
그래서 국빈이 방한하면 대부분 특급호텔에 머문다.
귀한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놓고 "잠은 호텔에서 주무십시오" 하는 셈이다.
예우는 다했지만, 마지막 한 끗은 비어 있는 셈이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면 미국은 전용 리무진과 경호장비, 필요하면 헬기까지 공수해 온다.
세계 최강국답게 경호는 누구에게도 전적으로 맡기지 않는다. 숙소는 대사관저나 특정호텔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독립된 국가 영빈관이 없기 때문이다.
환대에도 마지막 한 끗이 있다.
그 한 끗이 영빈관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K-팝과 K-드라마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반도체와 조선, 방산은 세계시장을 이끌고 있다.
국격은 높아졌는데, 국빈을 맞이하는 공간은 아직 그 위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30년 전부터 영빈관 건립 논의는 반복됐다.
비용 논란도 있었고 단임제 대통령으로서 정치적 선택도 있었다.
그러나 영빈관은 사치가 아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 인프라다.
외교는 회담장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전과 만찬, 그리고 머무는 공간까지 모두 외교의 일부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대국이자 문화강국이 되었다.
이제는 그 위상에 걸맞은 영빈관도 갖출 때가 되지 않았을까.
영빈관은 건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품격이고, 국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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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상환 환경국립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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