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하는 명곡의 힘, 뮤지컬 ‘그날들’ [헬로스테이지]
입력 2026.07.29 06:58
수정 2026.07.29 06:58
8월 23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사람이 떠나고 사건이 잊혀도, 특정한 선율은 당시의 공기와 감정을 통째로 복원해 낸다. 고(故) 김광석의 음성이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흔드는 이유다. 뮤지컬 ‘그날들’은 여기서 출발한다. 한 대중가수의 유작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장기 흥행을 이어왔는지, 무대로 증명하는 셈이다.
ⓒ(주)케이티지니뮤직
작품은 1992년과 현재라는 20년의 시간을 교차시킨다. 청와대 경호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배경으로, 사라진 동료 무영과 그녀를 찾는 정학의 추적이 중심축을 이룬다.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미스터리 구조는 김광석의 넘버들과 결합하며 독특한 결을 얻는다. 극중 인물들이 부르는 ‘변해가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사랑했지만’ 등은 단순히 배경 음악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내면 고백이자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시대의 문맥으로 읽힌다.
이번 시즌의 정학 역으로 무대에 오른 김정현은 정석적이고 절제된 톤으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원칙을 고수하는 청와대 경호원의 고지식함부터 20년의 세월을 베어 물고 살아온 중년의 부채감까지, 과장 없는 연기로 매끄럽게 연결해 낸다. 다만 인물의 감정이 폭발해야 하는 주요 넘버 구간에서는 드라마틱한 감정의 파동을 전달하는 데 아쉬움을 남긴다.
반면 윤시윤이 연기한 무영은 극에 필요한 청량함과 자유로운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한다. 특유의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는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경호실이라는 배경에 유쾌한 숨통을 트여준다. 하지만 가창 시 소리의 전달력이나 넘버의 감정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에서는 무대 배우로서의 스킬적 한계가 엿보인다.
두 배우의 상반된 에너지가 만든 시너지는 분명 흥미롭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완성도 측면에서는 인물 간의 밸런스가 매끄럽게 어우러지지 않는 지점도 존재한다.
ⓒ(주)케이티지니뮤직
제작진의 연출적 정돈은 이번 시즌에서도 빛을 발한다. 극이 지나치게 신파나 감상적으로 빠질 수 있는 순간마다 경호원들의 절도 있는 군무와 회전 무대를 활용한 액션 신이 들어서며 극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육체적 에너지는 노래가 지닌 아날로그적 감성과 대척점을 이루며 묘한 균형을 만든다.
물론 주크박스 뮤지컬이 가진 구조적 한계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특정 곡을 서사에 맞추는 과정에서 간혹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거나 사건의 개연성이 약해지는 구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들’이 지닌 힘은 강력하다. 익숙한 노랫말이 드라마의 결정적 순간과 만날 때 발생하는 감정의 밀도가 관객의 몰입을 끝까지 유지시킨다.
공연장을 나설 때 귓가를 맴도는 것은 화려한 무대 장치나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무대 위 인물들의 잔상, 그리고 시대를 건너 뛰어 현재의 관객에게 도착한 노래의 힘이다. ‘그날들’은 과거의 추억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명곡이 가진 생명력을 무대라는 공간에서 성공적으로 재증명해 낸 작품이다. 공연은 8월 23일까지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