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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벳 뮤비 속 살아남지 못한 남주들…‘서핀 보이’도? [MV 리플레이 ㊼]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8.06 14:01
수정 2026.08.06 14:01

개구리 왕자에게 날아간 화살, 다시 이어진 레드벨벳식 잔혹동화

쇼츠, 릴스 등 짧은 길이의 영상물들만 소비되는 현재 가수가 곡 안에 담아낸 상징과 그들의 세계관, 서사를 곱씹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아티스트가 담아낸 ‘작은 영화’인 뮤직비디오를 충분히 음미해보려 합니다. 뮤직비디오 속 이야기의 연출, 상징과 메시지를 논하는 이 코너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레드벨벳이 지난 3일 여름 미니앨범 ‘벨벳 서머’(Velvet Summer)를 발매했다. 2024년 6월 발표한 ‘코스믹’(Cosmic) 이후 약 2년 2개월 만에 선보인 완전체 신보다. 타이틀곡 ‘서핀 보이’(Surfin’ Boy)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했던 뜨거운 여름을 추억하고, 다시 한번 찬란한 기억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은 곡이다. 멤버 조이가 단독 작사했다. 그러나 뮤직비디오는 가사의 낭만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세이렌과 개구리 왕자 이야기를 비틀어 사랑과 죽음이 맞닿은 레드벨벳식 여름 잔혹동화로 완성한다.


ⓒ레드벨벳 ‘서핀 보이’ 뮤직비디오
줄거리


바닷가 모래 위에 사람의 발처럼 보이는 인어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한 남자는 밤에 서핑을 하기 위해 발자국이 남은 해변을 지나 어두운 바다로 향한다.


장면이 바뀌면 남자들이 다리를 얻은 인어들을 냉장창고로 옮긴다. 창고에는 참치가 어획물처럼 실려 오고, 남자들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듯 몸을 단련한다. 레드벨벳 멤버들은 이들의 행동을 말없이 지켜본다. 예리는 창고에 있던 남자를 아래로 떨어뜨리며 반격을 시작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물가로 나온 아이린 앞에 개구리 왕자가 나타나 손을 내민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던 예리가 남자를 향해 화살을 쏜다. 아이린은 놀라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리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다.


이후 예리가 개구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아이린과 개구리 왕자의 사랑은 예리가 지켜보던 실험이나 관찰 기록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화면은 흑백으로 바뀌고, 조이가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쓰고 있다. 앞서 펼쳐진 세이렌과 개구리 왕자의 이야기가 조이의 소설 속 세계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마지막에는 웬디가 여러 남녀와 함께 바닷가에 나와 있다. 웬디는 맞은편에서 춤추며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 장면이 조이가 쓴 소설의 마지막인지, 소설 밖 현실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인지는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은 채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레드벨벳 ‘서핀 보이’ 뮤직비디오
해석


‘서핀 보이’ 뮤직비디오는 하나의 사건이 순서대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다. 흑백 화면 속 조이가 이야기를 쓰고 있고, 그가 만든 소설 안에서 세이렌과 개구리 왕자 설화를 변주한 여러 장면이 각각의 장처럼 펼쳐진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냉장창고와 아이린의 사랑, 예리의 연구실이 직접 이어지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레드벨벳은 인어의 모습을 한 세이렌이다. 그리스 신화 속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존재다. 뮤직비디오 도입부에서 홀로 밤바다로 향하는 서핑 보이는 이미 세이렌의 부름에 이끌린 인물로 볼 수 있다.


개구리 왕자 이야기 역시 익숙한 결말을 거부한다. 일반적인 동화에서는 공주의 사랑을 얻은 개구리가 왕자로 변하고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간다. 아이린과 남자의 다정한 모습도 처음에는 이러한 결말을 예상하게 한다. 하지만 예리가 쏜 화살과 뒤이어 활을 드는 아이린은 왕자와의 사랑이 구원의 완성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가장 바깥에는 소설을 쓰는 조이가 있다. 실제로 ‘서핀 보이’를 단독 작사한 조이가 영상에서도 작가가 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노래 속 찬란한 여름과 뮤직비디오 속 잔혹한 이야기는 모두 조이의 글에서 출발한다.


마지막 웬디의 장면은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다시 연다. 조이가 글을 쓰는 흑백 화면 뒤에 해변의 색채가 돌아오면서 소설은 끝난 듯 보이지만, 웬디는 건너편 사람들을 관찰한다. 조이가 기록한 상상의 출발점이 실제 해변의 어느 여름이었을 수도 있고, 웬디가 바라보는 사람들 가운데 다음 이야기의 인물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명확한 설명 대신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가능성을 남긴 엔딩이다.


레드벨벳 뮤직비디오에서 남성 인물이 등장하면 무사히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은 팬들 사이에서 오래 이어진 유머이기도 하다. ‘서핀 보이’ 티저에서 아이린과 남성 모델의 다정한 모습이 공개되자 이번에는 기존 공식을 깨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지만, 본편에서 남성을 향해 화살이 날아가며 이 공식은 다시 이어졌다.


ⓒ레드벨벳 ‘서핀 보이’ 뮤직비디오
총평


‘서핀 보이’는 나른한 보사노바 기타와 여유로운 레게 리듬, 감각적인 하우스 그루브를 섞은 댄스곡이다. 청량하지만 마냥 들뜨지 않고, 시원한 보컬 하모니에는 물안개처럼 몽환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해가 내리쬐는 낮의 바다보다 석양이 내려앉거나 어둠이 찾아온 해변이 떠오르는 서머송이다.


이러한 음악은 세이렌의 이야기와도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부드러운 멜로디와 목소리가 남자를 바다로 끌어들이는 유혹처럼 들리고, 여유롭게 흐르는 리듬 아래에는 냉장창고와 화살, 죽음의 징후가 숨어 있다. 여름의 청량함 위에 기묘하고 서늘한 감각을 덧입힌 ‘벨벳 서머’라는 앨범명이 가장 선명하게 구현된다.


사랑에 빠진 인어와 왕자라는 익숙한 소재를 가져온 뒤 인어는 사냥꾼으로, 공주는 왕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인물로 바꿨다. 달콤한 노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잔혹동화의 결말에 도착하는 것. 아름다움과 기괴함을 한 화면 안에 놓는 레드벨벳의 방식은 이번 여름에도 유효하다.


한줄평


파도를 탄 소년이 도착한 곳, 사랑이 아닌 세이렌의 사냥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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