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권, 법을 공깃돌 다루듯 하나?
입력 2026.08.05 06:00
수정 2026.08.05 06:00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손님들이 응접실에서 어려운 문제를 토론하다가 한 사람이 말했다. “저 위에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러자 글래드스턴 부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곧 내려오실 거예요.”
영국에서 전해 오는 글래드스턴의 일화다. 손님은 하느님을 가리켜 한 말이었지만 글래드스턴 부인은 위층 서재에 있던 자신의 남편을 들어 농담으로 응수했다.
우리 정치인 중에도 무엇이든 다 아는 이가 있다. 생중계되는 국무회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무불통지(無不通知)다. 이분, 그러니까 이재명 대통령에게 야당, 전문가, 일반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검찰의 직접 수사권 전면 폐지는 안 된다며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호소했다. 수사권의 일부를 남겨놔야 한다는 언급을 몇 차례 한 적이 있으니 대통령이 검사의 보완수사권 존치 호소를 수용할 만도 하다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장기간의 외유에서 막 돌아온 이 대통령은 4일 국무회의에서 단칼에 이런 희망의 싹을 잘라버렸다. “수사․기소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 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 출발”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정상화’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날 국무회의는 이 대통령의 그 같은 인식을 반영,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고 법안은 대통령의 재가를 거쳤다.
이 대통령은 “모든 권력 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못 박기도 했다. 권력기관을 국민의 통제 아래 둬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당연한 명제다. 그러나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게 ‘국민적 통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 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입법권 또한 무제한적 권한 아니다
이 대통령은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도 했다. 모든 국가기관이 국민적 통제 하에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국가기관의 권한행사는 법과 선의에 기반해야 한다. 입법권은 무제한의 권한이 아니다. 만약 국회에 다수의석을 가진 정당의 집단적인 오만과 권력과시 욕구, 혹은 보복심리가 입법의 전 과정에 심각할 정도로 반영돼 있다면 그 입법은 부정되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검찰 수사권 전면 폐지를 당연시하면서도 이에 따른 부작용은 적극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모든 걸 다 아는 대통령이 그 부작용을 예견하지 못해 유보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인가? 뻔히 내다보이는 일을 왜 당한 후에야 대응하겠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그게 권위를 지키는 일이라 여기는지 아니면 고집인지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법 개정 주도세력에게 묻고 싶다. 법이 공깃돌은 아닐 테고, 입법은 예행연습이 아닐 것 아닌가.
검찰청 폐지법, 검찰 수사권 전면 폐지법 등의 발의와 입법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김용민 민주당 의원도 그런 식으로 말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제도를 다시 보완하면 된다.” 형사 피해자들을 훈련시키겠다는 뜻인가? 이렇게 오만하고 무책임한 말을 입법 주도자의 입으로 들어야 하다니!
“오늘 본회의에서 형소법을 통과시킨 후 가장 먼저 봉하마을로 달려왔다, 시간이 늦어 묘역 안까지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멀리서나마 대통령님이 계신 곳을 한참 바라봤다.”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날 김 의원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오버랩 된다. 단종(端宗)의 유배생활을 그린 영화로 누적관람객 수가 1690여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화를 보지는 않았으나 관람객들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김용민 ‘왕사남’ 흥행에 영감 얻었나
사람이라면 다들 그렇겠지만 특히 우리 국민들은 억울한 죽음과 비장한 의리에 아주 쉽게 그러면서도 깊게 빠져드는 심성을 가졌다. 그만큼 가해자로 지목되는 사람이나 세력에 대해 표출하는 증오는 격렬하다. 반면에 목숨을 바쳐 의리를 지킨 사람들, 예컨대 사육신은 마음 깊이 보듬어 안고 한량없이 우러른다.
노 전 대통령과 단종을 잇는 맥락이 있을까? 지금도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그를 위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그건 ‘억울함’이 두 사람에게 공유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단종의 예와 같지는 않지만 노 전 대통령 또한 ‘보수정권의 정치 검찰’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인식이 추종자들에겐 확신으로 자리 잡고 있을 터이다.
어쩌면 ‘왕과 사는 남자’의 폭발적 흥행에서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대중적 감동과 공감의 서사가 재현될 수 있다는 기대를 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혼자만의 추측이다. 그래서 검찰청 폐지, 검수완박 등에 대해서 말한 바가 없었던 노 전 대통령부터 떠올리고 늦은 시간임에도 그 멀리 달려갔던 게 아니겠는가.
그는 다음날(1일)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면서 형소법 개정안이 담긴 봉투를 바쳤다. 그가 묘역에 놓은 화분에는 “내 주신 숙제 다 끝냈습니다, 대통령님”이라고 적힌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는 말미에 “노 전 대통령님, ‘야~ 기분 좋다~!!!’라고 하고 계시지요?”라는 글을 적었다.
‘내 주신 숙제’라니?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에 그런 숙제를 누구에게도 낸 바 없을 텐데? 원혼을 달랜다는 뜻에서 한 말인가? 노 전 대통령은 수사를 받던 중 극단적 선택은 했지만 검찰에 대한 원한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혼자서 영화 찍느냐”는 핀잔이 나올 법한 장면이다. 왜 이렇게까지 상황 연출을 해야 하는 지 우습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다. 정치에도 쇼(Show)적인 요소가 가미될 수 있다고는 해도 이건 많이 거북하다.
대통령을 전지적 존재로 받들다니
추모의 열기가 아무리 뜨거워도 죽은 사람에게는 가 닿지 않는다. 다만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득(得)이 되거나 실(失)이 될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정치적 자산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따라다닐 부담이 된다. 그러므로 사자(死者)를 현실 정치에 끌어들여 증오심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정치적․사회적 대립과 분열을 가중시키는 무모한 권력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의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 대해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김진주(가명)씨가 “지옥에나 가세요 –부산돌려차기 피해자 김진주-”라는 글을 남겼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입법자라면 국민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의식을 하면서 한(恨)을 안기지는 말아야 한다. 강경파의 득세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다. 그들의 큰 목소리에 주눅 들어 있던 조용한 다수에 의해 언젠가는 책임 추궁을 당하게 된다. 그게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어정쩡한 태도는 난해하기까지 하다. 그는 지난 3일 신임검사 임관식 후 기자들을 만나 “빛의 속도로 형사소송법이 개정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부작용이 생긴다면 빨리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작용을 기다려 고칠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여지를 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왜 못했을까? 이날도 사의를 재확인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에게 직접 사표를 제출하지는 않았다.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사표를 제출했는데 장관은 그걸 받기만 하면 되는 자리인가?
그는 대통령의 재의 요구권과 관련, “거부권 제도가 도입된 이래 장관이 직접 관여한 적은 없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누구에게서 건의나 조언을 들어야 하는가? 측근의 누구로부터도 건의․조언․평가를 받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전지적(全知的) 존재이거나 독재자일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어느 쪽인가?
ⓒ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