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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호황에도 실트론 판 SK…성장성보다 자본 효율 택했다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입력 2026.08.04 14:35
수정 2026.08.04 14:35

웨이퍼 몸값 상승 전망에도 두산과 2조3000억원 거래 확정

대규모 투자·차입 부담 덜고 미래 성장사업 재원 확보

최태원 회장 개인 지분 29.4%는 별도…재산분할과 맞물려 주목

서울 서린동SK사옥 전경.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반도체 소재부터 메모리까지 공급망을 내부에 구축해 온 SK그룹이 특수가스에 이어 실리콘 웨이퍼 사업의 경영권도 외부에 넘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확대로 웨이퍼의 중장기 성장성이 커지고 있지만, 추가 투자와 차입 부담을 이어가기보다 현금을 확보해 그룹 전체의 자본 효율을 높이는 쪽을 택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SK㈜는 지난달 31일 이사회를 열고 보유 중인 SK실트론 지분 70.6%를 ㈜두산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 체결을 승인했다. 기본 매각대금은 2조3000억원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개인적으로 보유한 지분 29.4%는 이번 계약에 포함되지 않았다.


SK실트론은 반도체 회로를 형성하는 기판인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전문 제조업체다. SK는 2012년 SK하이닉스를 인수한 데 이어 2017년 당시 LG실트론의 경영권 지분 70.6%를 약 7900억원에 사들였다. 이후 사명을 SK실트론으로 변경하고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투자를 이어왔다. 웨이퍼는 반도체 제조 공정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핵심 소재인 만큼 SK가 계열사로 편입해 웨이퍼 공급망을 확보하고 SK하이닉스와의 사업 연계를 강화해온 것이다.


그러나 그룹 차원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 진행되면서 반도체 소재 계열사도 잇달아 매각됐다. SK㈜는 앞서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용 특수가스를 생산하는 SK스페셜티의 경영권 지분 85%를 한앤컴퍼니에 넘겼다. SK실트론 거래까지 마무리되면 SK는 반도체 소재 사업의 주요 축인 특수가스와 실리콘 웨이퍼의 경영권을 차례로 외부에 넘기게 된다. 두 회사의 기본 매각대금을 합하면 SK㈜가 확보하는 자금은 약 5조원이다.


SK는 SK실트론 매각 목적에 대해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재 계열사를 직접 보유하며 얻는 공급 안정성과 사업 시너지보다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우선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거래는 SK실트론을 둘러싼 시장 평가가 달라진 상황에서 확정됐다. SK㈜가 지난해 12월 두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이후 AI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지면서 웨이퍼 업체의 기업가치도 상승했다. 실제 거래 확정 직전까지 달라진 시장 상황을 반영해 SK실트론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그럼에도 SK㈜가 두산과 거래를 마무리한 데는 이미 장기간 진행한 협상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데 따르는 부담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두산은 지난해 12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며, 최종 계약 체결까지 약 7개월 반이 걸렸다. 가격 재협상이나 매각 철회를 추진하면 거래가 추가로 지연되고 상대방과의 신뢰 문제도 불거질 수 있었다.


SK실트론의 재무 부담도 매각 배경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회사는 구미 사업장을 중심으로 생산능력 확대 투자를 진행하면서 차입 규모를 늘려왔다. SK실트론의 영업이익은 2024년 3155억원에서 지난해 1931억원으로 감소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8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7% 줄었다.


인공지능(AI) 서버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이 확대되면 웨이퍼 수요도 중장기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웨이퍼 산업은 생산설비 구축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고 투자 성과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 역시 매각을 결정하는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SK는 SK실트론의 향후 성장성을 계속 보유하는 대신 추가 투자와 차입 부담을 감수하는 방안과, 현재 시점에서 경영권을 매각해 현금을 회수하는 방안 가운데 후자를 선택했다. 2017년 약 7900억원을 투입해 확보한 지분을 기본 매각대금 2조3000억원에 넘기면서 투자금의 약 세 배를 회수하게 됐다.


향후 SK실트론의 기업가치가 더 오를 가능성은 추가 대금 조건에 반영했다. 기본 매각대금 외에 2027년부터 2034년까지 SK실트론의 경영실적과 자산 처분 성과 등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두산이 SK 측에 초과이익 공유분을 지급하는 구조다. 주요 고객사의 품질 인증 성과도 추가 지급 조건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2조3000억원을 먼저 확보하면서도 향후 웨이퍼 업황 회복과 실적 개선에 따른 가치 상승분 일부를 추가로 받을 수 있게 됐다. 성장 자산을 현금화하면서 향후 상승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거래를 구성한 셈이다.


거래 이후 남은 변수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29.4%의 향방이다. 이번 계약에는 최 회장의 개인 지분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SK㈜의 경영권 지분 거래가 완료된 뒤 두산과 별도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에도 최 회장 지분은 SK㈜ 보유 지분 매각 이후 협상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기본 매각대금을 지분율대로 단순 환산하면 최 회장의 지분 가치는 약 9600억원으로 추산된다. 최 회장은 지난달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시장에서는 SK실트론 지분이 향후 재산분할 재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SK㈜ 지분은 그룹 지배력과 직접 연결되는 반면, SK실트론은 SK㈜가 경영권을 두산에 넘기기로 한 만큼 최 회장이 개인 지분을 처분하더라도 그룹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다만 최 회장이 SK실트론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다. 지분 매각 여부와 가격, 시기는 두산과의 협의와 재산분할 소송의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웨이퍼 제조사를 그룹 밖으로 내보내는 대신 대규모 현금과 투자 여력을 확보했다"며 "실트론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고 AI 사업에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이번 리밸런싱의 최종 평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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