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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증류주, 글로벌 주류 도약 꿈꾸지만…산업 생태계는 ‘걸음마’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6.08.04 06:41
수정 2026.08.04 06:41

K푸드 열풍 타고 ‘K증류주’ 글로벌화 기대감

종가세·전통주 기준·유통망 등 산업 기반은 미흡

‘비싼 소주’ 넘어 한국 대표 프리미엄 주종으로 키워야

하이트진로의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브랜드 ‘일품진로’ 제품군.ⓒ하이트진로

주류업계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K푸드 열풍을 타고 한국의 증류주를 위스키·와인·사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주류’로 키워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내수 시장의 성장 한계를 넘어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세 체계와 마케팅 전략, 해외 수출 기반의 확대 등 산업 생태계를 이루는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못하면서 ‘K증류주’ 육성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류주 시장은 광주요그룹의 ‘화요’와 하이트진로의 ‘일품진로’가 양대 축을 이루는 가운데, 롯데칠성음료의 ‘여울’, 원스피리츠의 ‘원소주’ 등이 경쟁하고 있다. 최근에는 CJ제일제당도 프리미엄 증류주 ‘자리(jari)’를 출시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증류주를 ‘K술’을 대표하는 주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희석식 소주와 과일소주가 해외 소비자에게 한국 술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증류주가 한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주류로 성장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증류주는 국산 농산물을 원료로 활용하는 비중이 높아 농가와 지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산업으로 꼽힌다. 위스키와 사케가 자국 농산물을 기반으로 세계화에 성공한 것처럼 증류식 소주 역시 국산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산업 중 하나다.


반면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희석식 소주와 과일소주는 주정을 물로 희석한 뒤 감미료와 향 등을 첨가해 만드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원료의 지역성과 국산 농산물의 가치를 브랜드 경쟁력으로 연결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주류 소비가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증류주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기존 소주 시장과 달리 절대 강자가 뚜렷하지 않은 데다, K푸드 확산과 함께 해외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점도 신규 진입을 이끄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한국은 막걸리, 증류식 소주, 약주, 과실주 등 다양한 전통주가 존재하지만, 이를 대표하는 국가 브랜드는 아직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 주류시장에서 위스키·보드카 등 증류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업계도 한국 증류주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희석식 소주 시장은 성장 여력이 제한적인 반면 증류주는 아직 절대 강자가 없는 시장”이라며 “국내 뿐 아니라 K푸드와 함께 해외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요그룹의 프리미엄 증류주 브랜드 ‘화요’ 제품군.ⓒ광주요그룹

문제는 국내 증류주 시장이 아직 일부 애호가와 고가 제품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일반 소주보다 높은 가격과 소비심리 위축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증류주를 찾는 소비자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지역별 양조장과 제품이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고, 증류주를 즐길 수 있는 바·외식업소·칵테일 문화와 유통망 역시 제한적이다. 소비자가 증류주를 접할 기회가 적어 시장 확대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증류식 소주에 적용되는 주세 체계도 시장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증류식 소주에 적용되는 종가세가 고급화를 막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해 왔다.


증류식 소주는 좋은 원료와 증류·숙성 과정에 비용을 들일수록 출고가가 높아지고, 출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특성상 세 부담도 함께 커진다. 현재 맥주와 탁주는 종량세를 적용받지만 증류식 소주를 비롯한 다수 주종에는 종가세가 적용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종가세 뿐 아니라 전통주 인정 기준과 지원 제도 역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전통주 인정 기준과 지원 대상은 현장의 변화와 괴리가 있다는 비판이다.


현재 온라인 판매와 세제 감면 등 각종 혜택은 전통주에 한정돼 있지만, 현행 제도는 제조 방식보다 생산 주체와 원료 사용 요건 등을 중심으로 전통주를 구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주류기업이 만든 일부 증류주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반면, 해외 전통 방식의 술이 국산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할 경우 전통주로 인정받는 사례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통주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온라인 판매 특례와 지원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현행 전통주 인정 기준부터 손봐야 한다”며 “산업 현실과 괴리가 있는 만큼 전통주의 개념과 기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세제보다 시장 환경 조성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또 다른 주류업계 관계자는 “종가세·종량세 등 세제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지역별 양조장과 다양한 제품이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며 “현재처럼 서울·수도권과 저가 희석식 소주에 소비가 집중된 구조에서는 세금 부담을 줄이더라도 증류주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키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 jari 신제품 2종 연출컷ⓒCJ제일제당

하지만 업계에서는 단기적인 시장 규모보다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외식 물가가 오르면서 집에서 음식과 함께 술을 즐기는 소비가 늘고 있는 데다, 한식이 해외에서 파인다이닝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증류주 역시 성장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최근 이 시장에 뛰어든 CJ제일제당도 ‘자리’를 대형 유통망에 곧바로 확대하기보다 한식 파인다이닝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알리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프리미엄 한식과의 페어링을 통해 한국 증류주의 이미지를 구축한 뒤 시장을 넓혀가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업계는 결국 한국 증류주가 세계적인 주류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비싼 소주’가 아닌 한국의 농산물과 지역성, 음식문화를 담은 독립적인 주종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증류주가 세계적인 술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종가세 개편과 세제 지원뿐 아니라 지역 양조장 육성, 외식업계와의 협업, 칵테일 등 음용 문화 확산, 해외 유통망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한 가지 제도만 손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반을 함께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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