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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 갈리는 소아중환자실…'발레'로 전투력 충전하는 의사 [취미 처방전]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07.30 13:45
수정 2026.07.30 13:56

이인경 서울성모병원 성 니콜라스 어린이병원 교수 인터뷰

진료와 교육, 환자와의 소통까지 바꾼 취미의 힘

“환자 곁을 오래 지키기 위한 몸과 마음의 균형”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명의들에게도 일상에 활력을 더하는 셀프 ‘처방전’이 있습니다. ‘취미 처방전’은 진료실을 벗어난 의료진의 특별한 취미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소개합니다.



이인경 서울성모병원 성 니콜라스 어린이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소아중환자의학 전공)가 7월 16일 병원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아이들을 돌보는 소아중환자실은 의료진에게도 치열한 긴장의 공간이다. 중증 환아의 상태를 쉼 없이 살펴야 하는 의료진은 긴장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한 뒤에도 환자에 대한 걱정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이인경 서울성모병원 성 니콜라스 어린이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증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누적된 긴장감은 번아웃으로 이어졌고, 2022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발레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취미였지만, 지금은 환자 곁을 오래 지키기 위한 자신만의 ‘처방전’이 됐다.


이 교수는 지난 16일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발레가 “몸과 마음을 돌보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 의사로서 더 오래, 더 건강하게 환자 곁을 지키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발레가 알려준 의학의 기본

이 교수가 발레를 시작한 것은 펠로우 과정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새로운 환경에서 중증 환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지던 시기.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할 방법을 찾던 중 집 근처에 새로 문을 연 발레 학원을 발견했다.


그는 “몸을 움직이는 취미를 가져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됐다”며 “발레 음악이 시작되면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발레에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발레는 그의 몸과 마음을 조금씩 바꿔놓았다. 오래 서서 진료하는 시간이 많아 허리 통증이 줄고 체력이 좋아졌으며,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가 생기면 퇴근 후에도 그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생각을 환기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찾게 됐다.


공연무대에 오른 이인경 서울성모병원 성 니콜라스 어린이병원 교수.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이 교수는 “예전에는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가 있으면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는데, 이제는 ‘발레 다녀오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며 “수업을 마치고 나면 머릿속이 한결 정리되고,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몸과 마음의 변화는 진료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발레를 꾸준히 배우면서 그는 의학과 발레가 의외로 닮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화려한 기술보다 기본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다.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도, 발레 학원에서는 누구보다 서툰 초보 수강생이 된다. 늘 가르치는 입장에서 배우는 입장이 된 경험은 의학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했을 뿐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태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 교수는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결국 교과서를 다시 펼쳐보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많다”며 “발레도 마찬가지다. 늦게 시작한 만큼 지금도 기본 동작을 반복하며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에서는 늘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학원에서는 배우는 사람이 된다”며 “발레 선생님도 저를 가르치면서 답답하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가르칠 때도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하고, 기다려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더 오래 환자 곁에 서기 위해”
이인경 서울성모병원 성 니콜라스 어린이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소아중환자의학 전공)가 7월 16일 병원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동료 교수들도 처음에는 발레를 한다는 사실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지난해 학원 발표회를 준비할 때는 공연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먼저 물어볼 만큼 든든한 응원단이 됐다. 그는 발표회에서 고전 발레 작품 ‘지젤’의 한 장면을 선보였고, 긴장감 속에서도 무대를 무사히 마쳤다. 무엇보다 함께 준비한 수강생들과 가까워진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발레는 환아들과의 소통에도 뜻밖의 연결고리가 됐다. 현대무용을 전공하는 한 환아에게 자신의 발레 경험을 얘기했더니, 아이가 훨씬 편안하게 마음을 열었던 경험도 있었다. 그는 “취미를 공유하면 환자들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질 때가 있다”며 “아이들도 의사가 병원 밖에서는 다른 취미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조금 더 편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교수에게 발레는 단순한 예술이 아닌 몸의 균형과 근육 사용을 끊임없이 익히는 운동이기도 하다. 응급 상황이 잦은 소아중환자실에서는 병동과 중환자실을 급하게 오가며 뛰어야 할 때가 많은 만큼, 발레를 통해 기른 하체 근력과 체력은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직접 운동의 효과를 체감한 그는 진료실에서도 운동의 필요성을 빼놓지 않는다. 특히 소아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마친 환아와 보호자들에게는 회복 과정에서 근육을 유지하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평소 활동량이 많고 근육이 잘 형성된 아이들이 회복도 더 빠른 경우를 많이 봤다”며 “우리나라는 식단에는 관심이 많지만 운동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공부 때문에 운동량이 크게 줄어드는데, 건강을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몸을 움직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의료진에게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만들 것을 권했다. 그는 “꼭 발레가 아니어도 좋다. 몸을 움직이는 취미는 결국 더 좋은 컨디션으로 환자를 만나는 힘이 된다”며 “환자든 의료진이든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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