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5만 달러’ 시대 오면 서민 삶도 나아질까 [전쟁이 삼킨 3·4·5]
입력 2026.07.25 07:00
수정 2026.07.25 07:00
반도체 바탕 ‘3·4·5 비전’ 내놓은 정부
경제 성장하면서 소득 양극화도 심화
부자와 서민 소득격차 6.59배 달해
자산·소득 아우르는 재분배 정책 필요
서울 시내의 한 폐업 식당 앞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뉴시스
정부가 3%대 경제성장률과 세계 수출 4강 진입을 바탕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 달러’ 달성을 경제정책 목표로 내걸었다. 당장에는 거시경제 지표상 경제 성적표도 나쁘지 않다.
다만 장바구니 물가는 연일 높아지고 골목상권에서 느껴지는 서민 체감 경기는 한여름에 찬바람이 인다. 이런 현실에서 1인당 GDP 5만 달러 달성보다 더 중요한 건, 경제성장 열매를 경제 취약계층에 제대로 전달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한국 1인당 GDP가 약 3만9164달러로 추산된다. 5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올해 안에 사상 처음으로 1인당 GDP 4만 달러를 돌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올해 경상성장률을 12.3%로 전망했다. 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수출 증가 영향으로 199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경상성장률이 예상된다.
정부가 제시한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치 4.6%와 현재 환율을 적용하면 내년 1인당 GDP는 4만1024달러로, 사상 처음 4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강기룡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수출과 1인당 소득 5만 달러는 현재의 성장 흐름과 정책적 노력이 이어진다면 2030년까지 달성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가계소득 격차, 6년 만에 최고 수준 벌어져
경제 외형이 성장할수록 계층, 업종, 개인 간 불균형은 심화한다.
지난달 국가데이터처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올해 1분기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간 소득격차가 6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벌어졌다. 상위 20% 고소득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1200만원을 돌파한 반면, 하위 20%의 증가 폭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가구 가처분소득(실제 사용할 수 있는 금액) 5분위 배율은 올해 1분기 6.59배를 기록했다. 상위 20%와 하위 20%의 쓸 수 있는 돈 차이가 6.59배란 의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최고치다.
구체적으로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237만8000원으로 1년 전보다 4.2% 늘었다. 반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 소득은 117만원으로 2.7% 증가에 그쳤다. 1분위는 사업소득이 26.7%, 근로소득이 3.4% 늘었고 이전소득은 0.6% 줄었다. 5분위는 이전소득 증가율이 25.1%로 가장 높았고 근로소득도 2.5% 늘었다.
지출 증가율은 소득 하위계층이 더 컸다. 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145만 7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했다. 소득 상위 20% 가구 소비지출 상승폭(6.9%)보다 0.4%p 더 높았다. 소득은 늘지 않은 상황에서 필수 생활 물가 상승 등으로 인해 지출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기 때문이다.
한 고물상에서 작업자들이 폐지를 옮기고 있다. ⓒ뉴시스
기업에서도 과거에는 반도체, 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 수출이 활성화되면 협력업체와 자영업계에도 ‘낙수효과’가 작동했다. 그러나 현재 수출을 견인하는 반도체, AI, 바이오 등 첨단 기술 집중형 산업은 막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할 뿐, 고용 창출 효과는 매우 한정적이다.
결국 대기업과 고소득층은 수치상 성장세를 주도하며 국가 거시지표를 올리고 있지만, 일자리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서민 계층은 고물가·고금리 이중고 속에서 소득 정체와 실질 구매력 하락을 겪고 있다.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해온 전통 제조업과 자영업의 몰락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자영업 폐업률은 위기 수준이 이어지고 있다.
국세청 국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동사업자는 1032만1407명으로 1년 전보다 1.7% 증가했다. 이는 국세통계포털에서 확인 가능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가동사업자는 사업자등록을 한 뒤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사업자를 말한다.
지난 22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 은행 원화대출 연체율 현황’을 보면 5월 말 기준 연체율은 0.67%로 1년 전보다 0.03%p 상승했다. 2016년 10월(0.81%) 이후 9년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소법인 연체율은 1.11%로 2년 전보다 0.36%p 올랐다. 2017년 5월(1.17%) 이후 가장 높다. 개인사업자 연체율도 같은 기간 0.15%p 상승한 0.84%를 기록했다. 2013년 5월(0.92%) 이후 최고치다.
5만 달러보다 더 중요한 건 양극화 해소
전문가들은 자영업과 전통 산업이 무너지면 거시지표가 5만 달러를 달성한다 해도 사회적 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서민 경제의 붕괴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내수 시장을 고사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성장을 통한 ‘5만 달러 달성’이라는 목표는 양극화 해소와 서민 생계 기반을 다지는 질적 보완책 마련을 수반해야 한다.
첨단산업 성장에서 발생하는 과실이 사회 전체로 공유될 수 있는 재분배 기틀과 사회 안전망을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AI와 반도체 등 신산업에서 창출된 부가 포용적 세제와 사회적 기금을 통해 노동 이동 지원, 서민 금융 안정, 소득 보완 정책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재호 한국은행 조사국 조사총괄팀 차장은 “복합 양극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소득 보전 중심 재분배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자산과 소득 전반을 아우르는 새로운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 중심의 가계 자산구조를 개선하고 생산적 자산 형성 기회를 확대해 경제 전반의 자본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기술 발전에 따른 경제구조 변화에 맞춰 조세 기반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근로소득을 통한 자산 형성 경로가 약화되지 않도록 제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