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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제헌절에 건국 지도자들 희롱이라니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7.22 07:00
수정 2026.07.22 07:00

조정식 국회의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제78주년 제헌절 경축식에 앞서 열린 환담에서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맨 왼쪽),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왼쪽에서 두 번째)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며칠 지난 일이긴 하지만 너무 어이없어 그대로 넘겨버리고 말 수가 없다. 조정식 국회의장이 무슨 마음으로 제 78회 제헌절 경축식에서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해서 건국 지도자들을 희화화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색한 표정과 입 모양으로 헌법 전문을 한 대목씩 낭독케 함으로써 그분들의 이미지를 한없이 가볍고 이상하게 만든 잘못을 무엇으로 갚으려 하는가.


게다가 신익희를 이승만에 앞세운 그 비뚤어진 심사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도 궁금하다. 좌파 정치세력이 이승만 격하를 집요하게 시도해온 연장선상에서 그를 맨 앞에 세우기가 싫었다는 것인가? 민주당 창당을 주도해 초대 당수를 맡았던 신익희를 그 후신인 더불어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으로서 뚜렷이 부각시키고 싶어서 그랬을까? 달리 추측 혹은 해석할 근거가 있으면 누가 좀 알려주시라.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 국회법 제20조의 2 규정이다. 국회가 지난 2002년 6월 2일 본회의에서 의결한 개정 국회법에 신설됐다. 그 이전 제2공화국 국회법에도 국회의장 당적 금지 규정이 있었으나 제3공화국 때 이 제도는 사라졌다. 그러니까 흔한 표현으로 원조 민주당이 국회의장의 당적 금지를 국회의 중요 가치로 인식해서 제도화했고, 그 정신이 조정식 의장에게도 이어졌으리라 기대할 수 있겠다.


제헌헌법의 대표 서명자 누구인데


국회법이 국회의장의 당직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분명하다. 입법부의 수장이 정파적 편향성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제도적 선언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전 국민의 복리와 행복과 안전의 증진을 위해 봉사해야 할 국회가 특정 정파의 우월적 지위에 휘둘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것이다. 이 같은 도덕적 법제적 의무에 구애돼서 인지 (신문 기사에) ‘국회 측’이 해명을 내놓기는 했다. 그런데 그게 너무 군색하고 낯간지럽다.


“이 전 대통령은 제헌 국회에서 2개월간 활동한 뒤 초대 대통령이 됐다. 신 전 의장은 제헌 헌법의 1·2단계 초안 작업을 하고 제헌 국회 의장과 2대 의장을 하는 등 제헌 헌법의 상징성이 더 크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렇게 억지스런 변명을 하느니 차라리 “조 의장이 민주당 출신이어서 그렇게 결정했다”고 털어놓는 게 나았겠다. 솔직하다는 평가는 받을 수 있었을 테니까.


헌법 제정 당시 제헌 의원 모두가 헌법제정기관의 구성원이었다. 그리고 그 기관의 대표로, 제헌 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였을까? 신익희? 해공 선생은, 우리 어릴 적엔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반대로 우남 박사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체로서의 신생 대한민국’을 성립시키고 그 헌법을 제정하는 일에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은 우남 이승만일 수밖에 없다. 그가 채택을 고집했던 대통령중심제의 국가권력구조는 약 11개월의 제 2공화국 기간(헌법 기준·장면 정권 기준으로는 약 9개월)을 빼고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문과 본문에 따로 국회의장 서명


제헌헌법의 문서적 구성에 특히 한 가지가 눈에 띈다. 이승만의 서명이 헌법 전문(前文)에 한 번, 본문에 한 번 따로 돼 있다. 전문 말미엔 ‘1948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승만’, 본문 끝에는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승만’이다. 7월 12일에 국회 표결을 거쳐 헌법이 제정됐다. 그 헌법이 공포된 날이 7월 17일이다. 같은 문서로 인식했다면 날짜를 달리해가며 국회의장이 각각 서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전문은 제헌국회가 헌법을 제정했다는 인증서의 성격을 가진 문서였다고 볼 수 있다. 즉 대한민국의 출범을 확인하면서 그 역사적 배경과 새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건국 선언문이었다고 하겠다. 본문은 이름 그대로의 헌법으로, 17일에 역시 이승만 의장 명의로 선포됐다. 이점에서 두 문건은 같은 헌법이지만 제정 당시 의미와 성격은 달랐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서명의 날짜를 달리한 게 설명되지 않는다.


전문 문제는 후술하겠지만 이 헌법의 제정을 주도한 사람이 이승만이었다는 사실은 문서상으로도 명확히 확인되고 있다. 두 달밖에 의장직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낭독 순위가 뒤로 밀렸다는 것은 얼마나 황당한 궤변인가. 왜 역사적 사실까지도 굳이 왜곡하려고 하는지 그 심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면 이승만이 역사에서 지워지는가? 이런 협량으로 입법부 수장직을 계속 수행할 것인지 조 의장에게 묻고 싶다.



지난 1948년 이승만 대통령 시절 제정된 제헌헌법 원문. ⓒ행정안전부
전문은 역사적 사건의 목록 아니다


전문에 대해서도 한 마디 거들어둬야 하겠다. 만약 그것이 ‘실체적 대한민국’의 건국을 선언하는 성격의 문건이었다면 이 후에는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 ‘기미독립선언문’을 수정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의 독립선언서, 미국 헌법의 전문도 수정된 바 없다. 그건 역사에 편입된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건국 선언문’이었다고 이해된다면 그 그걸 고치는 것은 역사훼손일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각국의 예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역사 혹은 헌법을 경시하는지 뚜렷이 보인다.


우리는 1948년 제헌 이래 아홉 차례의 개헌을 거쳤다. 그 중 네 차례의 개헌(제 5·7·8·9차)에서 전문(前文)을 수정했다. 5차 때 ‘4·19의거’와 ‘5·16혁명’이 들어갔다가 8차에서 둘 다 빠졌다. 9차 개헌에서는 ‘4·19의거’가 ‘4·19민주이념’으로 되살아났다. 문재인 개헌안(2018년 3월 26일 발의)이 다시 ‘4·19혁명’에 더해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전문에 삽입했다. 이 개헌안은 의결시한이었던 5월 24일 본회의에 상정됐으나 야당이 전면 불참한데 따라 의결 정족수 미달로 자동 폐기됐다. 지난 4월 3일엔 국회 개헌안이 발의됐고 5월 7일 본회의에 상정됐으나 국민의힘이 불참한 바람에 표결이 성립되지 못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다음날 다시 상정하겠다고 했다가 야당의 저항으로 포기했다. 이 개헌안은 ‘부마항쟁 및 5·18민주화운동’을 전문에 반영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은 전문 수정하지 않아


1787년 제정된 미국헌법의 경우 27차례의 수정이 있었으나 전문은 달라지지 않았다. 독일기본법(Grundgesetz)은 1949년 제정된 이래 1990년 통일이 ‘완성’됨으로써 단 한 차례 전문(前文)이 손질됐다. “독일 국민은 자유로운 자결로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완성해야 한다”를 “독일 국민은 자유로운 자격에 의해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완성하였다. 따라서 이 기본법은 독일 전체 국민에게 적용된다”로 바뀐 것이다.


일본은 1947년 현행 헌법을 시행한 이후 지금까지 수정이 없었다. 당연히 전문도 그대로다. 프랑스는 좀 독특해서 공화국이 바뀔 때마다 제헌과정을 거쳤다. 제1공화국(1792~1804·프랑스혁명 이후), 제2공화국(1848~1852·1848년 혁명 이후), 제3공화국(1870~1940년·프로이센 전쟁 이후), 제4공화국(1946~1958·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5공화국(1958~현재·드골이 주도한 공화국)이 각각의 헌법을 만든 것이다. 비시정권(Vichy France·1940~1944)은 공화국이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이었다. 정권을 장악한 필리프 페탱이 헌법 제정권을 위임받았으나 새 헌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 대한민국 제헌의 의미와 의의, 그리고 각국의 예로 보더라도 제헌헌법 전문은 건국문서로서 덧칠 없이 보존될 필요가 있다. 수정이 불가피할 경우는 본문에 반영하면 된다. 왜 굳이 전문을 손 봐야 한다는 것인가? 전문은 국가 및 헌정 성립의 선언문이지 역사적 사건의 목록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집권세력 혹은 힘을 가진 이념 집단의 자기 정당성 과시와 미화를 위해 전문에 사건을 나열하게 될 때 헌법의 권위와 신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시겠습니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의원 여러분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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