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놈될' 지원 쏠림에…'신약 우물'은 마른다 [기자수첩-ICT]
입력 2026.07.22 07:00
수정 2026.07.22 07:00
중국은 정부 지원 업고 기술수출 200조 쓸어담아
바이오 벤처까지 물길 터야 블록버스터도 나온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아홉 길을 파고도 샘에 닿지 못하면 '버린 우물'이다. 맹자는 뜻을 이루려는 일을 우물 파기에 빗댔다. 신약 사업도 그렇다. 신약 사업은 돈으로 파는 우물이다. 물이 솟기 전에 파기를 멈추면 쏟은 돈과 시간이 모두 사라진다.
신약 후보물질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1조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하다. 후보물질을 골라 전임상과 임상을 차례로 거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년이다. 그렇게 돈과 시간을 붓고도 정부 허가를 받아 시장에 출시될 확률은 10%를 밑돈다. 그러니 정부도 투자사도 성공이 임박한 곳에 베팅하고 싶어 한다. 중견 제약사와 바이오 벤처가 늘 자금난에 시달리는 이유다.
현장의 체감 온도는 더 차갑다. "최근 2~3년은 생존이 목표였다"는 바이오 업체들의 숨가쁜 목소리가 종종 들려온다. "대기업에는 천억원 단위의 지원이 들어가는데 당장 10억~20억원이 급한 바이오 벤처까지는 자금이 닿지 않는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국내 바이오 벤처가 전임상 실험이나 초기 임상 시험 단계에서 서둘러 기술을 파는 이유다. 수익성보다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른 매각은 손해를 부른다. 임상 데이터가 적은 신약 후보물질은 헐값에 팔리거나 계약 자체가 무산되기 일쑤다. 우물을 얕게 판 채 넘기니 제값을 받기 어렵다.
반면 중국은 폭발적인 정부 지원으로 그 격차를 벌렸다. 중국 정부는 성패를 가리지 않고 자본을 붓고, 심사를 앞당겨가며 임상 인프라를 조성했다. 많은 중국 기업들이 후기 임상까지 진행한 뒤 기술을 매각할 수 있는 이유다. 대표적인 사례가 항서제약과 영국 GSK 사이의 거래다. 지난해 7월 항서제약은 GSK에 신약 12종을 약 16조7000억원(120억달러)에 넘기는 계약을 맺었다.
덕분에 지난해 중국 기업의 기술수출(L/O) 규모는 200조원까지 늘었다. 전 세계 라이선스 계약의 3분의 1이 중국 몫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최근 공개 행사에서 "한국은 전임상 자산이 많고 임상 진입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반면, 중국은 임상 데이터를 갖춰 선택받는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우리 정부도 국내 신약 사업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기는 하다. 아쉬운 건 방향이다. 지난달 국민성장펀드는 리가켐바이오에 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자금에 최대주주와 민간이 절반을 얹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제약 바이오 장기 투자에 마중물을 댄 첫 사례다. 리가켐바이오는 좋은 기술을 가진 기업이다. 다만 이미 현금 4500억원을 쥐고 있었다. 물이 솟는 우물에 물을 더 부은 셈이다. 첫 마중물이 정작 목마른 우물에는 닿지 않았다.
이웃 일본은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일본 정부는 2015년 세 부처에 흩어져 있던 의료·바이오 R&D 예산을 한 기관으로 모아 관리하기 시작했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연구를 긴 호흡으로 받치기 위해서다. 그 컨트롤타워가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AMED)다. 인내는 결실로 돌아왔다. 올해 3월 유도만능줄기(iPS)세포 재생의료제품 두 종이 세계 최초로 일본에서 출시됐다. 어느 나라도 상용화하지 못한 첨단 치료제를 일본이 처음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우리도 길을 안다. 국민성장펀드 같은 정부 지원을 상시 제도로 굳히고, 쪼개진 연구개발(R&D) 예산을 하나로 묶으면 된다. 그렇게 마련한 재원을 초기 바이오 벤처까지 흘려보내면 된다. 관건은 끝까지 파게 하는 것이다. 그 믿음이 이어지려면 샘을 코앞에 둔 우물이 마르지 않아야 한다. 될성부른 곳에 돈을 얹기는 쉽다. 어려운 건 아직 물을 못 본 우물을 샘에 닿을 때까지 받치는 일이다. 다음 물길은 거기서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