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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 ‘좋다~’ 아비뇽 한복판에 울린 추임새…이자람의 ‘눈, 눈, 눈’ [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7.19 10:12
수정 2026.07.19 10:12

공식 초청 무대에 오른 이자람...언어 장벽 무색

프랑스어·영어 이해하고 한국어 ‘추임새’로 호흡

고유의 말맛과 독창적인 양식을 가진 한국의 전통 판소리가 언어와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해외 관객들과 어떻게 호흡할지는 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초청 부문(In) 무대에 오른 소리꾼 이자람의 ‘눈, 눈, 눈’은 무대 위 아티스트의 압도적인 에너지가 어떻게 언어의 장벽을 무력화하고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는지 증명해 보였다.


ⓒ아비뇽페스티벌

이미 한국 무대에서 선보이며 문학성과 음악적 완성도를 검증받은 ‘눈, 눈, 눈’은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주인과 하인’을 판소리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혹독한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은 주인과 하인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탐욕과 계급, 그리고 죽음 직전에서야 마주하게 되는 인간성의 회복을 담았다.


17일(현지시간) ‘눈, 눈, 눈’의 첫 공연이 올려진 아비뇽 오페라극장 앞, 공연 시작 한참 전부터 입장을 위한 대기 줄들이 길게 광장을 가로질렀다. 현장에서 만난 프랑스 관객 크리스는 “며칠 전 극단 1도씨 공연과 구자하 연출의 연극에 이어 세 번째 한국 공연”이라며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에 초청된 한국 작품들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톨스토이의 소설이 한국의 전통 소리와 어떻게 섞일지, 그 생소한 형식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데일리안 박정선 기자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 자막이 송출됐지만, 사실 판소리가 지닌 고유의 리듬감과 다채로운 언어유희를 외국어 자막으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번역으로 채우지 못한 장르 특유의 ‘말맛’이나 ‘에너지’는 이자람의 음색, 몸짓, 그리고 눈빛으로 완벽하게 채워진다. 소리꾼이 뿜어내는 음의 고저와 장단, 순간적으로 객석을 압도하는 에너지에 관객들은 숨을 죽이거나 함께 놀랐고, 해학적인 대목에서는 자막의 시차를 뛰어넘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언어적 이해를 넘어선 예술적 직관이 객석 전체를 관통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판소리의 핵심 요소인 ‘추임새’가 객석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되는 과정이었다. 이자람은 공연 초반, 판소리라는 양식을 처음 접하는 해외 관객들을 위해 극의 구조와 고수의 역할, 그리고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추임새를 직접 설명하고 제안한다.



ⓒ아비뇽페스티벌

단순히 학습된 반응을 넘어, 극의 긴장감이 고조되거나 소리의 극적인 대목이 완성될 때마다 객석 곳곳에서 외국인 관객들이 주도적으로 추임새를 얹었다. 어설픈 발음이었지만 ‘좋~다!’ ‘얼씨구!’ ‘잘한다~’ 같은 한국어 추임새가 극장 안을 채웠다.


전통 판소리에서 관객이 무대를 함께 완성하는 소통의 미학이 프랑스 아비뇽의 극장 안에서 완벽하게 재현된 셈이다. 이는 이자람이라는 베테랑 아티스트가 가진 탁월한 무대 매너와 객석을 쥐고 흔드는 노련한 완급 조절이 있었기에 가능한 풍경이었다.


ⓒ데일리안 박정선 기자

공연의 막이 내린 순간, 극장 안은 잠시의 정적도 없이 떠나갈 듯한 환호와 박수로 뒤덮였다. 몇몇 관객을 시작으로 객석에 있던 모든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원 기립박수를 보내는 장면은 이번 축제 기간 중 가장 압도적인 장관 중 하나였다.


한편 이자람의 ‘눈, 눈, 눈’은 지난 17일에 이어 18일, 21일, 22일까지 총 나흘간 아비뇽 오페라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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