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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조인성 "할리우드가 정답 아냐, 우리 정서로 풀어낸 한국형 SF" [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7.19 14:13
수정 2026.07.19 14:13

"몸을 사릴 수 없었다"…조인성이 말한 '호프'라는 도전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5일 개봉한 '호프'는 개봉 4일 차인 18일 누적 관객 122만512명을 기록하며 올해 개봉작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개봉 4일 만에 100만명을 넘긴 연상호 감독의 좀비 영화 '군체'보다 하루 빠른 기록이다.


'호프'는 비무장지대 인근 가상의 마을 호포항에 미지의 외계 생명체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황정민과 조인성, 정호연을 비롯해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등 국내외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며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조인성ⓒ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관객들의 호평이 이어지는 부분은 조인성이 연기한 성기의 액션이다. 말을 타고 질주하며 펼치는 총격전과 맨몸 액션은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핵심 장면으로 꼽힌다. 도로 위 외계인과의 추격 및 사투전은 한국 영화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규모와 박진감을 완성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올해 2월 '휴민트'에 이어 5개월 만에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온 조인성은 수염을 기른 거친 외형과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으로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조인성 역시 처음부터 이 작품이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한국형 SF라는 장르적 도전과 극한의 액션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작품인 만큼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던졌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도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걸 어떻게 구현하려는 거지?'였어요. 한국에서 이런 SF 장르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은 도전이잖아요. '역시 나홍진 감독님이 또 어려운 도전을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동시에 저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많이 했어요. '이 정도 로케이션과 액션을 내 몸이 감당할 수 있을까', '괜히 하겠다고 했다가 몸이 못 따라주면 영화에 피해를 주는 거 아닐까' 이런 고민이 많았어요. 몸을 사리면 분명 작품의 퀄리티는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에는 그래도 도전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집요한 연출로 유명하다. 디테일 하나도 쉽게 타협하지 않는 촬영 방식은 '추격자'와 '황해', '곡성'이라는 명작을 만들어냈다. 조인성 역시 현장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고 작품에 합류했다. 다만 실제 현장은 무작정 테이크를 반복하기보다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과정에 가까웠다고 돌아봤다.


"감독님 전작들을 보면 현장이 어떤 스타일인지 어느 정도 예상은 되잖아요. 그게 나홍진 감독님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했고요. 사실 선택한 건 저니까요. 제가 하겠다고 한 이상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결국 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감독님의 집요함과 꼼꼼함이 영화의 힘인데 그걸 빼고는 나홍진 감독 영화를 설명할 수 없잖아요. 그건 그냥 디폴트값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애초에 현장 가기 전부터 '오늘 쉽지 않겠다', '100번은 찍겠지'라고 생각하고 갔어요. 100번 찍을 줄 알았는데 30번 만에 끝나면 '오늘 빨리 끝났네' 하는거죠. 다들 감독님이 테이크를 엄청 많이 가는 분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제 기억에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워낙 세팅이나 날씨, 현장 준비를 철저하게 하시는 스타일이라 무조건 많이 찍는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액션에서는 '한 번 더', '한 번 더' 하면서 새로운 걸 계속 요구하시긴 했죠. 제가 풀밭에서 싸우는 장면도 나중에는 '다른 걸 보여달라'고 하셔서 풀까지 잡으면서 연기했어요. 그러다가 감독님이 '이제 풀까지 잡으시네요'라고 웃으셨죠. 결국 그런 집요함이 인간의 생존 본능을 끝까지 끌어내는 영화의 힘이 된 것 같습니다."


그가 연기한 성기라는 인물이 비무장지대 인근의 폐쇄적인 시골 마을 호포항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던 비결은 인위적인 캐릭터 설정이 아닌, 살아 숨 쉬는 관계성에 있었다. 낯선 외계생명체의 침공이라는 재난 속에서 인물들이 끈끈하게 연대할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현장 안팎을 가리지 않고 쌓아 올린 배우들 간의 단단한 유대감 덕분이었다.


"성기의 전사를 따로 만들지는 않았어요. 시골 공동체에서는 다 서로 알고 지내잖아요. 내 밭이 아니어도 같이 일해주고, 동네 어르신을 다 자기 할머니처럼 부르고요. 그런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배우들끼리 밖에서도 많이 만나면서 관계를 만들었고, 그걸 그대로 영화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첫 장면부터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보여야 했으니까요."


조인성ⓒ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조인성은 성기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인물의 시점에 집중했다. 성기 일행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전혀 모른 채 산으로 향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며, 관객과 인물 사이의 정보 격차가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고 봤다.


"성기 일행도 처음부터 외계인을 잡으러 산에 간 건 아니에요. 그냥 사냥 허가도 받았고 '뭐라도 하나 잡고 오자', '돈 될 만한 거 하나 있으면 가져오자' 정도의 마음으로 올라간 거죠. 관객은 이미 외계인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모르잖아요. 그 무지에서 오는 긴장감이 영화의 서스펜스를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속 음식은 생존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치다. 조인성은 숲에서 주먹밥을 먹는 장면부터 후반부 감자를 먹는 장면까지 모두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순간으로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라면을 끓여 먹을지, 주먹밥을 먹을지 여러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라면은 너무 여유 있어 보이더라고요. 배추김치도 찢어 먹는 동작이 한가롭게 보일 수 있어서 결국 알타리김치와 주먹밥으로 정리했죠. 나중에 감자를 먹는 장면도 단순히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욕망이라고 생각했어요."


'호프'의 백미로 꼽히는 승마 액션은 조인성이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장면이기도 했다. 꾸준한 승마 훈련은 물론 도로 질주와 낙마 액션까지 소화해야 했던 만큼, 촬영 과정은 끊임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제가 만족하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관객들이 만족해야 의미가 있는 거죠. 승마 액션은 꾸준히 연습했고, 숲에서는 말도 장애물을 인지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속도를 내지 못해요. 도로에 나가면 또 전혀 다른 위험이 있고요. 촬영 차량 속도에 맞춰 달려야 했는데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건 말에서 뛰어내리는 액션이었어요. 액션팀에도 '이거 해본 적 있냐'고 물어봤는데 다들 '이 정도는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왜 내가 이걸 해야 하지?' 싶을 정도였죠. 물론 안전장치를 모두 갖춘 상태에서 촬영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결과가 좋았다면 그 공은 저보다 말을 비롯한 현장 스태프들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할리우드식 SF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따르지 않고,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척박한 비무장지대의 현실을 결합해 독창적인 장르물을 개척했다는 점은 '호프'가 거둔 가장 큰 성취다. 광활한 우주나 미래 도시 대신 익숙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우주적 재난을 마주한 인간 군상의 본질을 파고든 이 영화는, 한국형 SF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이자 독자적인 가능성을 명확히 증명해 낸다.


"SF는 결국 인간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은 우리가 할리우드 SF를 많이 봐왔지만 그게 꼭 정답은 아니잖아요. '호프'는 우리나라 환경과 정서에 맞게 풀어낸 SF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히려 한국형 SF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이 흘러나오는 이유는 '호프'가 남긴 거대한 여운과 무궁무진한 세계관의 확장 가능성 때문이다. 미지의 외계생명체가 남긴 흔적과 살아남은 이들의 남겨진 과제는 자연스럽게 다음 장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다만 시리즈의 지속 여부는 결국 현재 마주하고 있는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과 흥행 결과에 달려있다.


"솔직히 지금은 속편이 나온다, 안 나온다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결국 이번 영화가 잘돼야 감독님 머릿속에 있는 다음 이야기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를 보면 '이 뒤 이야기가 더 있겠는데?'라는 생각은 충분히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근 투자·배급사인 메가박스중앙의 기업회생절차 신청이라는 초대형 악재 속에서, '호프'는 어쩌면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의 마지막 불꽃이 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현재 한국 영화계는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 간신히 회생의 기로에 서 있으며, 올여름 극장가를 책임질 대형 텐트폴 영화는 사실상 '호프'가 유일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의 흥행 패배는 단순히 한 작품의 실패를 넘어 한국 영화 투자 시장 전체를 위축시키는 도미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형 SF 크리처물이라는 전례 없는 모험을 이끄는 주연 배우로서, 그는 침체된 영화 시장을 다시 깨워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관객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제가 한국 영화를 위해 대단한 업적을 세운 사람도 아닌데, 어느 순간 '희망'이라는 말을 듣게 됐어요. 제가 스스로 희망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분들이 그렇게 기대를 걸어주신다는 건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도 아직 회복 과정에 있고, 이 영화도 크리처와 SF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잖아요. 장마 끝에 피는 능소화라는 꽃처럼 관객들에게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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