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움' 간호사 잇단 사망…직장 내 괴롭힘 '형사 처벌' 못 받나? [법조계에 물어보니 735]
입력 2026.07.07 17:58
수정 2026.07.07 17:59
'태움'으로 간호사 숨진지 한 달도 안 돼 방사선사 사망
현행법 상 '직장 내 괴롭힘' 형사 처벌 대상에 포함 안돼
'구체적 피해 사실 입증·가해자 특정 등' 쉽지 않은 현실
법조계 "사회적 합의 통한 구체적 대응책 마련 필요성"
ⓒ클립아트코리아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했던 20대 방사선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소위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우면서 괴롭힌다는 은어)'으로 동년배 간호사가 숨진지 채 한 달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의료 현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들이 반복되고 있지만, 현행 체계에선 재발 방지가 쉽지 않을 것이라 지적이 나온다. 직장 내 괴롭힘이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닌 데다, 피해 사실 입증도 쉽지 않단 의견이 지배적이다.
법조계는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는 만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대응책과 관련한 충분한 연구와 사회적 합의를 찾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직장 내에서 발생한 형사 사건에 대해 양형 수준을 높이는 방안도 거론됐다.
7일 법조계와 경찰청에 따르면 전북 군산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던 방사선사 A씨(20대·여)가 지난달 29일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사망 경위에 대해 조사 중이다. 전북경찰청은 이날 군산경찰서로부터 사건 관련 자료를 넘겨 받아 직접 수사에 착수했다.
A씨는 지난달 초 군산의 한 종합병원에 입사해 계약직 방사선사로 일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무단결근 후 연락이 끊겼고, 29일 숨진 채 발견됐다. 단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유족은 A씨가 입사 후 병원 일이 힘들다며 약을 복용해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A씨는 생전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주변에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직장 내 괴롭힘이 사망의 원인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경찰은 객관적이고 신속한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단 입장을 전했다. 병원 측도 외부 노무사를 통해 A씨를 향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이번 사건은 '태움'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발생해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심각성을 재차 확인시켜줬다. 지난달 2일 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근무한 간호사 B씨(20대·여)가 선배들의 '태움'으로 인해 숨진 일이 발생했다.
B씨는 작년 3월 병원을 퇴사해 고용노동부에 '태움' 피해를 신고하기도 했다. 이에 노동당국은 조사를 통해 일부 피해 사실을 인정해 병원 측에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가해자로 지목된 1명에게 훈계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던 것으로 조사됐다. 병원은 B씨가 재직하던 당시에도 수간호사와 간호부 등에 여러 차례 피해를 호소했지만, 실질적인 분리 조치를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사건을 맡은 경기남부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 전담수사팀은 유족으로부터 B씨의 일기장과 휴대전화, PC 등 증거물 5점을 제출받아 분석 중이다. 경찰은 고인의 지인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뒤 진술과 관련 기록을 토대로 병원 관계자 조사와 입건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태움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정부와 지자체는 엄정 대응을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해당 병원에 대한 노동 점검을 지시하고, 유사한 위험이 있는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불시 점검을 예고했다.
대한간호협회는 피해자 지원에 나섰다. 간협은 '간호사 SOS 지원창구'를 마련해 ▲위기·고충 지원 ▲심리 상담 ▲노무 상담 ▲법률 상담을 지원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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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는 현행법 상 태움 등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구조적으로 뿌리 뽑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태움이 집단 괴롭힘의 특성을 띄고 있어 구체적인 피해 사실 입증과 가해자 특정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가 될 경우 법률 전문가 상담을 통해 피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승우 변호사(법무법인 정향)는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되기 위해선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행위' 등의 요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이를 입증하는 것이 모호하다"며 "상급자로 통상적인 업무 지시인지, 아니면 그 상당성을 넘는 직장 내 괴롭힘인지가 개개별로 다르기 때문에, 명백한 욕설이나 모욕적인 언행이 아니라 교묘한 괴롭힘의 경우 피해자만 인지할 수 있을 뿐 처벌 대상으로 입증되기가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허위사실이나 모욕적인 발언에 대해선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상사의 협박이나 지속적인 연락 등은 협박, 스토킹 등 별도의 죄목으로 처벌될 수 있고,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면 폭행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며 "통상 이들 죄목은 인정되더라도 벌금형 정도로 처벌 수위가 높지 않은 데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한 형사 사건의 경우 죄질을 나쁘게 보아 더욱 양형을 높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느낀다면 녹음 등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초기에 노무사나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인 증거 수집과 대응이 필요한데, 섣부르게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오히려 고립을 낳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동찬 변호사(더프렌즈 법률사무소)는 "사업주가 회사면 회사, 개인사업자면 개인사업자 고용주가 직장 내 괴롭힘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해야된다는 규정을 두고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해졌을 경우 가해자에게 감봉 징계처럼 고용상 불이익을 가할 수 있다"며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 그 자체가 형사적인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한 직장 내 괴롭힘 자체 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괴롭힘을 당한 사실에 대해 분리 조치, 재발 방지 조치 같은 것들을 회사에 알려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호소하는 게 최선인데 (사실) 그걸로는 약하다"며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경우, 학교폭력이 대처법에 대한 단계 절차가 이뤄져 있듯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도 대응책이 구체적으로 마련될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제언했다.
나아가 "국민적 합의에 의해 처벌 조항이 만들어지면 (직장 내 괴롭힘도) 처벌 가능할 것이고, 불가능하지도 않다"면서도 "법이라는 것은 윤리의 최소 기준이어야 하고 형법은 명확해야 되는데 괴롭힘이라는 부분은 명확하지 않아서 법제화할 경우 과잉 입법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이 점은 고민해 봐야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