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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만 돌리는 사회, 왜 우리는 슛을 두려워하는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6.24 07:08
수정 2026.06.24 07:08

패스만 돌리는 한국 축구, '과정 중시·결과 회피' 한국 사회의 축소판

교육과 금융규제 현장, 형식과 절차 숭배하는 대신 골 없는 지공 반복

속공 시도하고, 과감히 슛을 날릴 수 있는 목표지향적 문화·제도 필요

지난 18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멕시코전에서 축구선수 손흥민이 드리블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6년 월드컵이 한창이다. 경기 중계를 보다 보면, 한국 축구가 보여주는 답답한 장면들이 눈에 밟힌다.


공은 오래 소유하지만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패스는 많은데 슛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는 속공보다, 책임이 분산되는 지공을 택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라운드 위에 서 있는 건 11명의 선수만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체성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는 겉으로는 매우 분주하다. 회의는 끊이지 않고, 보고서는 점점 더 정교해지며, 절차와 과정은 해마다 복잡해진다.


하지만 ‘무엇이 얼마나, 언제까지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선명하게 답하는 경우는 드물다. 축구로 치면, 점유율과 패스 성공률은 높은데, 정작 골은 나오지 않는 팀과 닮아있다.


우리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명분 아래, 어느새 결과와 목표지향적 사고 자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 것은 아닐까.


교육 현장에서 ‘과정을 중시하자’는 구호는 오래전부터 반복되어왔다. 시험 점수만으로 학생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타당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전개는 다소 기묘한 방향으로 흘렀다.


지금 많은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는, 학생이 어떤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해결했는지보다 과제가 얼마나 정교한 형식을 갖추었는지, 발표 자료가 얼마나 ‘준비된 티’를 내는지가 더 중요한 평가 지표가 된다.


팀 프로젝트에서는 결과물의 완성도보다, 역할 분담과 과정 관리, 회의록 작성 여부가 강조된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리스크 있는 선택’보다 ‘흠 잡히지 않는 수행 과정’에 에너지를 쏟게 된다.


금융부문의 규제 영역을 보면, 한국 사회의 지공 선호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혁신 금융, 디지털 전환, 새로운 산업 육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 제도 변화의 속도는 놀랄 만큼 느리다.


각종 위원회와 공청회, 시범사업과 연구 용역이 길게 이어지지만, 골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슛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규제다. 핀테크, 디지털 뱅킹, 빅데이터·AI를 활용한 신용평가와 같은 영역에서 한국은 인프라와 기술 인력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새로운 사업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규제 샌드박스, 한시적 특례,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의 ‘연습경기’만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정식 리그에 등록해 정면승부를 펼치기보다는, 연습경기에서의 안전한 패스 플레이를 계속 관찰하는 데 그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이해관계자들은 나름의 논리를 갖는다.


소비자 보호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해야 한다. 기존 산업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 목표지향적 접근은 훨씬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제도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3년 안에 달성해야 할 변화는 무엇인가.


그 변화가 금융소비자와 실물경제에 어떤 구체적 효과를 줄 것인가. 실패했을 때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질 것인가.


상기 질문에 답하려면, 누군가는 슛을 때려야 한다. 그리고 그 슛이 빗나갔을 때를 감수해야 한다.


지금의 금융·규제 환경은 위험 감수의 부담을 지는 사람보다, ‘충분히 검토했고, 적정한 절차를 모두 밟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람을 더 안전한 위치에 놓는다.


결과적으로 제도 변화의 타이밍을 놓치는 사례가 반복된다. 골대를 보고도 패스를 선택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문제는 ‘과정의 중요성’이 왜곡되고, ‘성과와 목표’가 거의 자동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소비된다는 데 있다.


성과를 말하면 즉시 ‘사람을 숫자로만 본다’, ‘또 압박이냐’라는 반응이 뒤따른다.


물론 과거의 과도한 성과주의는 분명히 반성해야 할 지점이 있다. 그러나 반성을 핑계로, 아예 목표와 결과 자체에 대한 논의를 피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위험이다.


어느새 한국 사회에는 묘한 조합이 자리 잡았다. 과정은 숭배하면서, 성과와 목표는 은근히 혐오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조합 속에서 사람들은 ‘열심히 한 과정’은 자신 있게 말하지만, ‘무엇을 언제까지 해냈다’는 문장은 꺼내기 어려워한다.


목표를 선명하게 제시하는 순간, 책임이 자신에게 귀속될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패스를 돌리며 ‘우리 팀워크는 좋았다’고 말하지만, 골은 나오지 않는 경기와 닮아간다.


속공과 슛을 허용하는 문화로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이렇게까지 지공을 했느냐’ 보다, ‘왜 한 번도 속공을 시도하지 않았느냐’를 물어야 한다.


‘왜 저 슛이 빗나갔느냐’보다, ‘왜 그 위치에서 슛을 시도하지 않았느냐’를 물어야 한다.


금융·규제 분야에서는, ‘모든 리스크를 제거한 뒤에야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허용 가능한 리스크의 범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빠르게 실험하고, 실패하면 즉시 보완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패스를 예쁘게 돌리는 능력이 아니라, 골을 향해 과감히 발을 휘두를 수 있는 결단이다.


글/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jyseo@smu.ac.kr/rmjiseo@hanmail.net)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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