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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의 양', AI 시대에도 필요한 이별…고레에다가 던진 질문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6.19 08:37
수정 2026.06.19 08:38

5만 돌파

'가족'이라는 화두를 집요하게 탐구해 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번엔 기술 발전의 그늘과 인간의 이기심을 정조준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NEW


'상자 속의 양'은 죽은 아이를 대신해 한 가정에 입양된 7세 설정의 휴머노이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작품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의 기쁨과 함께 언제든 대체되거나 버려질 수 있는 존재의 불안을 담아낸다. '어느 가족', '걸어도 걸어도', '괴물' 등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탐색해 온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AI와 휴머노이드라는 동시대적 소재를 통해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다시 들여다본다.


특히 이번 영화는 기술 발전이 가져올 윤리적 문제와 상실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중국에서 죽은 사람을 되살려주는 서비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죽은 사람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랐어요.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의 위안을 위해 죽은 사람을 마음대로 되살리고, 또 버리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일일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영화는 휴머노이드와 AI를 다루고 있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이를 먼 미래의 이야기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 기술의 연장선상에서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를 상상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아주 먼 미래를 상상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뒤 정도의 미래를 생각했어요. 중국에서 만난 AI 사업가는 인간과 같은 육체를 가진 AI가 10년 안에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일본의 로봇공학 연구자들도 생성형 AI의 발전 속도 자체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어요. 다만 연구자들은 인간을 그대로 모방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 세계도 택배가 날아오고 냉장고가 말을 거는 정도, 지금보다 반 걸음 정도 앞선 미래로 설정했습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비단 윤리적 시시비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상실의 아픔을 기술로 손쉽게 대체하려는 세태 속에서, 인간이 마땅히 거쳐야 할 슬픔의 시간이 지워지고 있다는 점에 감독은 주목한다. 죽은 이를 닮은 휴머노이드를 곁에 둠으로써 일시적인 위안을 얻을 순 있지만, 그것이 과연 남겨진 이들의 삶을 진정으로 나아가게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상실을 마주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나약함을 따뜻하게 시선으로 감싸 안으면서도, 기술이 지닌 이면의 위험성을 담담히 경고한다.


"저 역시 돌아가신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합니다. 저 또한 그런 감정을 갖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슬픔을 받아들이고 치유하는 과정이 멈춰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고레에다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상실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다. 영화는 죽은 아이를 대신하는 휴머노이드와 가족의 관계를 그리면서도, 영원한 대체 가능성보다는 이별과 수용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영화의 결말에도 반영됐다. 고레에다 감독은 기술이 인간의 상실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고 보며, 결말을 수정했다.


"저는 죽은 사람은 어디까지나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어떤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고 놓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휴머노이드와 부부가 계속 함께 살아가는 결말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뭔가 아니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결국 이별하고 떠나보내는 이야기로 바꿨습니다. 휴머노이드를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기보다는, 그것들이 집단이 되었을 때 마치 하나의 의지를 가진 존재처럼 인간에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카케루를 통해 인간다움의 경계를 흔든다.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의 모습과 설명하기 어려운 잔혹함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할 때, 관객은 그것이 AI의 특성인지 인간의 본성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된다.


"그 장면은 원래 각본에 없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떠올린 아이디어였어요. 아이들은 어른의 시선에서 보면 때때로 굉장히 잔혹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또 카케루가 엄마에게 '내가 없는 편이 더 행복해?'라고 묻는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이 아이의 잔혹함이 휴머노이드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아이들이 가진 본성 때문인지 관객이 혼란을 느끼길 바랐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NEW


그동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이들의 연대를 그린 '어느 가족', 피의 이끌림과 키운 정 사이의 고뇌를 담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다. 그리고 이번 신작을 통해 그의 가족 세계관은 마침내 인간이라는 종(種)의 벽마저 뛰어넘는 궁극의 확장을 이뤄낸다.


"아이는 성장하면 결국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휴머노이드가 생각하는 가족도 그런 개념이라고 봤어요. 이 영화 속 가족은 인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기계, 숲과 자연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에요. 휴머노이드들은 그런 존재들이 함께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신작 '상자 속의 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통산 10번째 칸 국제영화제 초청작이자, 8번째 경쟁 부문 진출작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묵직한 시대적 화두를 던지는 거장의 귀환에 전 세계 영화인들의 찬사가 쏟아진 가운데, 정작 축제의 중심에 선 감독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동료 거장들과의 유쾌한 일화를 털어놓으며 거장다운 여유와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이번 영화를 무사히 선보인 그는 벌써부터 다음 칸에서의 재회를 꿈꾸며 창작자로서의 멈추지 않는 열정을 내비쳤다.


"개막식에서 박찬욱 감독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저를 보고 미소를 지어주신 것 같았어요. '아, 나를 기억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봉준호 감독님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미소가 저를 향한 것이었는지, 봉준호 감독님을 향한 것이었는지 아직도 궁금합니다. 칸 영화제는 진지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축제이기도 합니다. 봉준호 감독, 알폰소 쿠아론 감독, 케이트 블란쳇 등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영화 홍보에 집중하고 있지만, 다음 작품을 잘 만들어 다시 칸에 가서 그분들과 재회하고 싶습니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숲'은 단순히 인간 사회에서 쫓겨난 이들의 도피처가 아니다. 그곳은 대립과 배제의 논리가 사라지고, 모든 존재가 평등하게 어우러지는 기적 같은 치유의 공간이다. 감독은 이 신비로운 공간을 통해 기술의 진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인간이 상실의 아픔을 딛고 도달해야 할 진정한 화해의 장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냈다


"그 숲에 휴머노이드만 살고 있었다면 인간과 단절된 결말이 됐을 겁니다. 저는 그곳에 기계도, 자연도,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함께 존재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번 신작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거대한 글로벌 도전을 예고했다. 일찍이 프랑스에서 작업했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나 한국 스태프·배우들과 합작한 '브로커' 등 국경을 넘나드는 작업을 꾸준히 시도해 왔던 그가, 이번에는 영어권 국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내년에 영어권 영화 촬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홍보 일정으로 바쁘지만, 마무리되면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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