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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띄운 '호남 반도체'…삼성 준감위 경고, 기업은 선긋기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입력 2026.06.17 12:43
수정 2026.06.17 12:46

삼성 준감위 "정치 논리 좌우 안 돼" 이례적 경고

삼성·SK "공식 투자 계획 아직"…전력·용수·인력 사업성 관건

최태원 "국내만 고집 안 해" 지역균형론보다 투자 효율 강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뉴시스

정치권이 띄운 '호남 반도체' 구상에 재계가 속도 조절에 나섰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추가 투자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입지는 지역 균형발전 논리만으로 정해질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차기 반도체 생산거점에 대해 국내외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겠다는 뜻을 밝힌데 이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이례적으로 "기업 경영이 정치 논리에 좌우돼선 안 된다"고 공개 경고하고 나섰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권에 반도체 생산시설 또는 첨단 패키징 공장을 신설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기조와 맞물려 반도체 산업의 지방 분산 필요성이 부각된 영향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한 신규 생산거점 확보가 불가피한 만큼 지방 투자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정작 기업들은 공식 투자 계획에 선을 긋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관련 투자설에 대해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반도체 공장은 부지 확보만으로 결정되는 사업이 아니다. 막대한 전력과 초순수 공급 능력, 반도체 전문 인력, 장비·소재 협력사 생태계가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신규 공장 하나에 수십조원이 투입되는 만큼 입지 선정 자체가 기업의 장기 경쟁력과 직결된다.


삼성 준감위가 직접 경고에 나선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이찬희 삼성 준감위원장은 16일 정례회의에 앞서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권 논리에 좌우되지 않도록 유의 깊게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 투자가 이뤄질 경우 준감위 논의 사안이 될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준감위가 특정 투자 입지 논란에 대해 공개 발언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단순히 호남 투자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 정치권의 요구가 기업 투자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경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 내부에서도 대규모 투자 판단이 사업성보다 정치적 고려에 좌우될 경우 향후 글로벌 경쟁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역시 신중한 입장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닛케이포럼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차기 반도체 공장 입지와 관련해 "반도체 수요가 늘어 추가 공장은 필요하다"면서도 "'무조건 한국에만 짓겠다'는 것도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력과 땅, 사람, 물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 투자뿐 아니라 해외 투자까지 포함해 사업성을 우선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실제 업계에서는 AI 시대일수록 반도체 생산거점의 집적화가 중요해졌다는 점을 주목한다. HBM을 비롯한 첨단 메모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연구개발(R&D), 전공정, 후공정, 패키징을 한데 모은 클러스터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국가 차원의 전략사업으로 추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후공정이나 패키징 시설은 지방 분산이 가능하지만 첨단 메모리 전공정은 여전히 집적형 클러스터가 유리하다고 분석한다.


물론 호남권도 강점은 있다.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과 상대적으로 넓은 산업용 부지, 정부 지원 가능성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다만 업계에서는 실제 투자가 성사되려면 전력망 확충과 용수 공급,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 협력사 유치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한 지역 균형발전 논리만으로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의미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이와 관련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계획 수립 후 첫 삽을 뜨기까지 약 7년이 걸렸는데 호남 지역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부지를 확정하는 데만 5년 이상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며 "제조시설에 필요한 인프라, 물이나 전기 또 근무자 정주여건이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이달 말 대통령 주재로 열릴 것으로 알려진 주요 그룹 총수 간담회에서 지방 투자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기업들이 공식 투자 계획에 선을 긋고 있는 만큼 실제 발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결국 '호남 반도체'의 성패는 정치권의 구호가 아니라 기업이 납득할 만한 사업성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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