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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에서 핀셋으로…유류세 줄이고 바우처 늘려야 [유류세 인하의 늪④]

김지현 기자 (kjh@dailian.co.kr)
입력 2026.06.11 15:48
수정 2026.06.11 15:49

유류세 인하 장기화 시…올해 5조원 재정 구멍

6월 중동전쟁 분수령…에너지 고갈 우려 커

전문가 “취약계층 핀셋 지원 전환” 강조

에너지 효율 개선 투자·에너지 바우처 제안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가격 안내 전광판이 보이고 있다.ⓒ뉴시스

고유가 충격 완화를 위해 도입된 유류세 인하 조치가 수년째 이어지면서 국가 재정 부담과 시장 왜곡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중동전쟁이 이달 중대 분수령을 맞으며 에너지 공급 불안과 국제유가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든 소비자에게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는 보편적 감세 정책에서 벗어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에너지 바우처 확대와 에너지 효율 개선 투자 등 맞춤형 지원 체계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대 최장 유류세 인하…시장 기능 왜곡 우려도


개별소비세법상 유류세 인하 조치는 경기 조절과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제유가 급등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질 때마다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인하해 왔다.


2000년에는 2개월간, 2008년에는 10개월간, 2018년에는 10개월간 각각 유류세 인하 조치가 시행됐다.


현재 진행 중인 유류세 인하는 역대 최장 기간이다.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11월부터 유류세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지역 지정학적 갈등 등으로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지면서 인하 조치를 수차례 연장해 왔다.


문제는 유류세 인하가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만큼 상당한 재정 비용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11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고유가에 따른 물가 대응 정책 동향 및 향후 과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0월까지 교통·에너지·환경세 누계 수입은 9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조9000억원(34.1%) 감소한 규모다.


정부는 2021년 11월 유류세를 기준세율 대비 20% 인하한 데 이어 2022년 7월에는 법정 한도인 37%까지 인하 폭을 확대한 바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국가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잖다. 국세의 약 5%를 담당하는 주요 세목으로, 단일 세목 기준으로는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지방재정에서도 교육세와 주행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로 적지 않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유류세 인하가 장기화될수록 물가 안정 효과는 점차 줄어드는 반면, 재정 부담은 누적된다고 지적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유류세 인하 조치로 인해 발생하는 세수 결손 규모를 연간 약 5조원으로 추산했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유류세 인하 조치는 단기적인 고통은 줄여줄 수 있지만, 국가 재정에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시장의 기능마저 마비시킬 수 있다”며 “효율적인 시장은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기름값이 오르면 에너지 효율 개선 효과가 훨씬 크게 창출되니 전세계가 에너지 효율 개선이라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유가 인상이 이런 상황이다. 정부는 시장이 자동적으로 에너지 효율 개선이라는 투자를 하는데 막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유가 상황에서는 가격 신호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고효율 설비나 기술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데, 정부가 세금을 인하해 가격 상승분을 상쇄하면 이러한 시장 조정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유가 충격을 모든 소비자에게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보다 저소득층·생계형 운송업 종사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 지원을 확대하고, 남는 재원을 에너지 효율 개선과 친환경 인프라 구축에 투입하는 것이 보다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10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단순히 공급 측면의 유가 보조에 낭비하기보다, 취약계층 직접 지원과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투입했다면 훨씬 생산적인 결과를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정학적 위기 고조와 ‘단기 버퍼’로서의 한계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서 고객이 주유를 하고 있다.ⓒ뉴시스

일각에서는 이달을 에너지 위기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유류세 인하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브렌트유가 100달러 미만에서 관리되고 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3분기 이후 국제 유가가 걷잡을 수 없이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유류세 인하가 고유가 충격을 완화하는 일종의 완충 장치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가 상승세가 수개월 이상 이어질 경우 재정 부담이 누적되면서 정책 지속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송 위원은 “고유가가 장기화되면 결국 금리 인상이나 환율 방어 같은 거시적인 고강도 인플레이션 정책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낮고, 석유 의존도가 극도로 높다. 유럽이나 중국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선제적으로 늘려온 경쟁국들에 비해 유가 충격에 훨씬 취약한 체질이라는 점도 유류세 인하라는 단기 처방에 의존해서는 안 되는 핵심 이유로 꼽힌다.


보편적 감세에서 ‘핀셋 지원’으로


서울 중구 서울역 환승센터에서 버스에 붙어있는 요금표.ⓒ뉴시스

전문가들은 고유가 대응 정책의 방향을 핀셋 지원의 형태로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유류세 인하는 전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보편적 지원에서 도움을 필요로 한 곳에 선별적으로 지원하고, 유류세 인하 대상도 경유 등으로 좁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전체 유류세를 일괄 인하하는 방식은 세수 손실이 너무 크다며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유종별 차등 지원을 제안했다.


서민 생계, 물류와 직결된 경유에 대해서는 지원을 유지하되 개인 승용차 소비가 대부분인 휘발유 인하 조치는 점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경유 가격이 높다. 국제적으로 경유가 부족한 상황이라 경유 가격을 낮추는 쪽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수출 통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유류세 감세 대신 에너지 바우처 형태의 재정 지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라살림연구소의 ‘소득분위별 교통비 지출 현황 분석’ 보고서를 보면 유류세 인하는 차량이 없는 1분위 가구 66.7%에는 효과가 작용하지 않는다.


주유비 지출은 5분위가 1분위의 2.5배로 대중교통(1.8배)에 비해 격차가 크다. 유류세 인하 혜택이 고소득층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이 귀속된다는 의미다.


가격 폭등으로 생존 위기에 처한 에너지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은 정부의 직접적인 현금성 바우처를 통해 실질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 위원은 “유류세 인하 조치를 계속하는 것보다는 에너지 바우처 등을 실시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 효율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현 기자 (kjh@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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