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의 양',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마음…고레에다가 그린 사랑과 공존 [볼 만해?]
입력 2026.06.10 17:24
수정 2026.06.10 17:25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혈연으로 설명되지 않는 가족, 사회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 그리고 상실 이후에도 이어지는 관계를 그려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신작 '상자 속의 양'으로 돌아왔다. 오리지널 각본으로는 어느 가족 이후 8년 만이다. AI와 휴머노이드라는 낯선 소재를 꺼내 들었지만, 영화가 끝내 도달하는 곳은 여전히 인간이다. 죽은 아이를 대신할 수 없는 존재를 통해 애도와 사랑, 그리고 공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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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네(아야세 하루카 분)와 켄스케(다이고 분) 부부는 7살 아들 카케루(쿠와키 리무 분)를 교통사고로 잃은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상실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어느 날 집으로 드론이 배달한 브로셔 한 장이 도착한다. 죽은 이의 얼굴과 목소리, 사진과 영상 속 기억을 학습한 휴머노이드를 제공한다는 업체 '리버스'의 광고다. 오토네는 곧바로 관심을 보이지만 켄스케는 탐탁지 않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상담이라도 받아보자는 마음으로 리버스를 찾고, 그곳에서 실제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구현된 휴머노이드를 마주한다. 결국 업체 측의 무료 렌탈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카케루의 얼굴과 기억을 가진 휴머노이드가 부부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후 집 안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진다. 오토네는 카케루와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생활의 리듬을 그에게 맞춰간다. 사고 이후 멈춰 있던 집 안에는 다시 웃음이 흐르기 시작한다. 반면 켄스케는 카케루를 죽은 아들의 대체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그렇다고 냉정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카케루를 세심하게 챙기고 돌보며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그가 진짜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놓지 않는다. 같은 상실을 겪고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애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영화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설정만 놓고 보면 '상자 속의 양'은 고레에다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SF에 가까운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오히려 익숙한 감각이 먼저 다가온다. '아무도 모른다'의 버려진 아이들, '걸어도 걸어도'의 가족, '어느 가족'의 공동체처럼 감독은 이번에도 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다만 그 대상이 인간을 넘어 휴머노이드까지 확장됐을 뿐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AI 기술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나 기술 윤리에 대한 경고보다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이 슬픔을 견디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카케루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도,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죽은 아이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사실을 전제한 채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남겨진 사람들은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고, 관계를 이어가려 한다. '상자 속의 양'은 그 복잡한 감정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그 중심에는 카케루 역의 쿠와키 리무가 있다. 순수한 아이의 모습과 어딘가 설명하기 어려운 낯섦을 동시에 품은 연기는 영화가 가진 감정의 균형을 만들어낸다. 사랑받고 싶은 아이의 모습과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지하는 존재의 불안이 한 인물 안에서 공존한다. 고레에다가 오랫동안 보여준 아역 연출의 강점 역시 이번 작품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절제된 연출도 여전하다. 영화는 감정을 과장하거나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침묵과 시선,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카케루가 가족 안에서 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를 바라보는 부모의 복잡한 감정, 설명되지 않은 채 남겨지는 여백들이 서서히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아야세 하루카와 다이고 역시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부모의 심리를 안정감 있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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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후반부에 이르러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은 다소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가족의 의미와 사랑의 본질,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가치는 이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괴물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탐구해 온 주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소재에 비해 결론이 다소 안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익숙함은 동시에 고레에다 영화의 일관성이기도 하다.
영화의 메시지는 후반부 숲 장면에서 완성된다. 카케루는 버려진 휴머노이드들과 상처받은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숲속 공동체에 합류하기로 결심한다. 건축가인 부모의 기억을 물려받은 그는 직접 이 공동체의 공간을 설계하며 스스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로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오토네가 내뱉는 "버림받은 건 우리"라는 대사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부모가 휴머노이드 아이를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아이가 자신의 삶을 선택해 부모의 품을 떠나는 독립이 겹쳐 보인다. 많은 SF 영화가 인간과 AI의 충돌을 그릴 때, 고레에다 감독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독립성을 인정하며 공존할 수 있는지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렇게 인간과 휴머노이드, 자연과 기술이 하나의 숲속 풍경 안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공존의 의미를 압축해 보여준다.
제목 '상자 속의 양'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따왔다. 어린 왕자가 양을 그려달라고 하자, 화자는 양이 들어 있는 상자를 그려준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양의 모습이 아니라, 상자 안에 양이 있다고 믿는 마음이다. 극 중 "건축은 보이지 않는 것에 본질이 있다"는 대사 역시 눈앞의 형태보다 보이지 않는 믿음과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카케루는 인간도 아니고 죽은 아들도 아니다. 그럼에도 부부는 그를 사랑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영화는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인간은 어디까지 사랑하고 상상할 수 있는가를 묻는 듯 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AI 시대를 빌려, 인간이 가진 가장 의미있는 능력은 상상력과 사랑의 가치임을 말한다. 10일 개봉. 러닝타임 127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