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에 열려 있어야" VS "문화적 부패 징후"…AI 품은 83세 거장과 저항한 20세 젠지 감독 [D:영화 뷰]
입력 2026.06.11 09:00
수정 2026.06.11 09:00
'결과와 확장'을 말한 스코세이지, '과정과 경험'을 말한 케인 파슨스
보통 사람들은 AI에 익숙한 젊은 창작자들이 이를 적극 수용하고, 필름 세대의 거장들은 경계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영화계에서는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졌다. 83세의 마틴 스코세이지는 생성형 AI 기업 블랙 포레스트 랩스의 고문으로 합류하며 기술과의 공존을 이야기했고, 유튜브에서 출발해 20세에 할리우드 기대주로 떠오른 케인 파슨스는 AI를 "문화적·경제적 부패의 현상처럼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뉴시스/AP
이는 단순한 세대 간 인식 차이라기 보단 영화를 바라보는 두 창작자의 철학, 그리고 창작 과정에 대한 관점이 AI를 사이에 두고 극명하게 갈라진 결과에 가깝다.
스코세이지는 영화사 자체를 몸으로 경험한 인물이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아날로그 편집에서 CGI로, 극장에서 스트리밍으로 넘어가는 모든 변화를 지켜봤다. 영화 역사 속에서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위협으로 등장했지만 결국 창작의 일부가 됐다. 컬러 영화도, 사운드 영화도, CGI도 그랬다. 스코세이지에게 AI 역시 영화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작을 확장하는 또 하나의 도구다.
실제 그는 블랙 포레스트 랩스를 통해 "70년 동안 직접 스토리보드를 그려왔지만 항상 머릿속 이미지를 배우와 스태프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과제였다"며 "이 도구를 통해 내가 상상하는 것을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촬영감독에게 훨씬 명확하고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시간은 곧 돈인데, 퀄리티나 장인정신을 희생하지 않고도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며 AI의 실용성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영화는 탄생한 지 125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매체인 만큼,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을 창작의 적이 아닌 진화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 대목이다.
반면 2005년생 케인 파슨스는 전혀 다른 시대를 상징한다. 그는 16세에 유튜브에 공개한 단편 시리즈 '백룸'으로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 바이럴 열풍을 바탕으로 A24 극장판 '백룸'의 연출까지 맡게 됐다. 영화는 북미 개봉 6일 만에 1억 달러를 돌파하며 A24 역사상 최고 흥행작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런 케인 파슨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손가락을 튕겨 AI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가 반복적인 시각효과 작업을 줄여줄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AI는 혁신이라기보다 "문화적·경제적 부패의 징후"처럼 느껴진다고 밝혔다.
역설적인 것은 그가 누구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기술 자체보다 창작 과정의 가치에 더 민감하다. '백룸' 애초에 역시 거대한 자본이나 스튜디오가 아닌 한 명의 창작자가 직접 만들고 수정하며 완성한 프로젝트였다. 시행착오와 노동, 반복적인 작업 과정 자체가 작품의 일부였던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AI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도구인 동시에 창작의 경험과 의미를 약화시킬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최근 젠지 세대의 문화 소비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는 젊은 세대는 오히려 LP와 필름 카메라, 카세트테이프, 손글씨 다이어리 같은 아날로그 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모든 것이 즉시 생산되고 복제 가능한 시대일수록 시간과 손길이 담긴 경험의 가치가 더욱 특별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에 가장 익숙한 세대가 오히려 인간의 개입과 과정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갈라지는 지점은 AI의 유용성 유무가 아니다. 이는 영화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스코세이지는 기술을 통해 상상력의 영역을 넓히고 더 많은 이야기를 가능하게 하는 '결과와 확장'에 주목한다. 반면 케인 파슨스는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창작자가 직접 부딪히고 고민하며 쌓아가는 '과정과 경험의 가치'가 희미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AI 시대 영화계가 마주한 진짜 화두 역시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창작의 본질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스코세이지와 파슨스가 내놓은 서로 다른 답 역시 결국 AI 자체를 향한 찬반이라기보다 영화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