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 오브 러브', 사랑스러운 이별 레시피 [D:쇼트 시네마(161)]
입력 2026.06.10 08:25
수정 2026.06.10 08:26
정현영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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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도 성격도 전부 다르지만, 오직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만난 연인 최경(공준호 분)과 달기(송서영 분). 어느 날 달기는 하와이안 피자를 먹던 중 최경에게 이별을 고한다. 과거 "나랑 헤어지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달기의 질문에 "피자집을 차릴 거야"라고 농담처럼 답했던 최경은 시간이 흐른 뒤 정말로 피자 가게를 운영하게 된다.
그사이 세상은 변했다. 파인애플이 멸종하면서 하와이안 피자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추억의 음식이 되어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최경의 가게로 옛 연인 달기의 주문 전화가 걸려온다. 최경은 오랫동안 소중히 숨겨두었던 마지막 파인애플을 꺼내 달기만을 위한 하와이안 피자를 만든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배달원으로 위장해 달기를 마주한 최경. 그는 슬며시 고객 만족도 설문지를 건넨다. 설문지 마지막 문항에는 "당신도 파인애플을 추억할까요?"라는 질문이 적혀 있다. 달기가 잠시 집 안으로 들어간 사이, 최경은 문 앞에 피자를 남겨두고 대신 그녀의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 피자 상자를 연 달기는 파인애플로 정성스레 만든 하트 장식을 발견한다. 미련을 붙잡는 대신, 최경만의 엉뚱하고도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건네는 마지막 작별 인사다. 이후 거짓말처럼 파인애플 재배가 다시 가능해지며 하와이안 피자는 세상에 돌아온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하와이안 피자를 단순한 소품이 아닌, 두 사람의 관계 자체를 상징하는 시각적 장치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피자는 서로 다른 재료들이 모여 하나의 맛을 완성하는 음식이다. 하와이안 피자 역시 달콤한 파인애플과 짭짤한 햄, 치즈가 어우러져 독특한 조화를 이룬다. 이는 성격도 취향도 극과 극이었던 최경과 달기의 연애와 닮아 있다. 영화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감정을 나누고 관계를 맺는 과정이 피자가 구워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맛의 완벽함과 관계없이 여러 재료가 섞여 피자가 탄생하듯, 사랑 역시 해피엔딩 여부와 상관없이 '함께했던 시간 자체'로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는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제목인 '피스, 오브 러브' 역시 이러한 주제를 중의적으로 함축한다. '사랑의 한 조각'(Piece of Love)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피자 한 조각(piece)을 연상시키며, 이별 후에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사랑의 잔여물을 표현한다.
영화 속 멸종된 파인애플은 이미 끝나버린 관계와 사라져가는 추억을 상징한다. 최경이 마지막 파인애플을 남겨두었던 것은 사랑을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그는 이 마지막 재료를 자신을 위해 아끼지 않고 달기에게 보내는 피자에 모두 쏟아붓는다.
눈물 섞인 재회 대신 피자 한 판과 파인애플 하트로 마음을 전하고, 전 여친의 음식물 쓰레기를 대신 들고 떠나는 최경의 모습은 이 작품만의 순수한 정서와 매력을 극대화한다. 이별마저도 하와이안 피자처럼 단짠의 매력으로 승화시킨,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한 조각의 이야기다. 러닝타임 24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