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심판은 준엄하고 정교했다
입력 2026.06.04 13:10
수정 2026.06.04 13:12
제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일인 지난 3일 개표사무원들이 투표용지를 분류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 엄중한 심판이 지나간 자리에 정교하게 짜인 민심의 성적표가 남았다. 6.3 지방선거는 지리멸렬했던 보수진영과 오만했던 정부 여당 모두에게 유권자가 내린 거대한 경고장이자, 한국 정치의 삼각 딜레마(Trilemma)를 풀어낸 집단지성의 승리였다.
지리멸렬했던 보수의 자화상
선거를 치르는 보수진영의 모습은 그야말로 볼썽사나운 자멸의 연속이었다. 명분 없는 컷오프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대구시장 공천, 당 쇄신을 요구하며 후보 등록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서울시장 후보, 그리고 속내를 들여다보기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던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과 당 지도부의 맹목적 지원이 그러했다.
반대편의 상황 역시 오만함의 극치였다. 이른바 일명 셀프 공소취소 특검법이라고 불리는 ‘조작기소 특별검사 법안’의 졸속 추진, 정부 주도의 스타벅스 불매운동이라는 시민의 자유의지 통제 위협 상황이 발발했다.
대외적으로는 이스라엘에 대한 뜬금없고 반복적인 비난과 대비되는, 우리 선박을 미사일로 공격한 이란을 향해 보여준 지나치게 신사적인(?) 신중함이 도마 위에 올랐다. 통일부 장관의 민족의 영구분단의 길을 열어 놓는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한 수용성 발언은 분단 81년을 사는 우리 국민의 마음을 긁어 놓았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정부 여당의 권력 향연을 제어할 대항마가 없어 보였다. 참담한 정치 상황이었다.
6.3 지방선거의 서막과 반전의 드라마
이처럼 불편하고 암담한 정치적 대치 상황 속에서 6.3 지방선거의 막이 올랐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는 아니나 다를까 광역단체장 기준 '15 대 1', 재보궐 선거 기준 '13 대 1'이라는 참패를 예고하며 보수진영을 절망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자정을 지나 새벽이 깊어 가면서 투표함 속의 민심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서 한동훈 후보 캠프 관계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또 '대구는 그래도 대구'였다. 초반의 열세를 잠재우고 추경호 후보가 자정을 넘기며 마침내 승기를 잡았다. 진영 내분과 자격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평택갑에서도 국민의힘 후보가 앞서기 시작했다는 속보가 타전됐다. 동이 틀 무렵,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가 극적인 '골든크로스'에 성공했다는 승전보가 울려 퍼졌다. 역전승이었다.
최종 성적표는 광역단체장 12 대 4, 재보궐선거 9 대 4 대 1. 수치상의 착시가 있을지언정, 당초 오만했던 정부 여당의 호언장담을 무색하게 만들고 결정적으로 '서울'이라는 최후의 보루를 사수한 결과였다.
국민이 보여준 '트라일레마'의 해법
이번 선거를 관통한 국민의 진정한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유권자의 마음은 세 갈래의 엄중한 경고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제 1축: "어떠한 명분으로도 불법 계엄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서슬 퍼런 심판이다.
제 2축: "그렇다고 하여 이재명 정부와 여당이 폭주하며 위험한 독주를 하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는 견제구다.
제 3축: "이 선택이 결코 현재 장동혁 체제의 국민의힘에 무조건적인 생명연장의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경고다.
정치공학적으로는 도저히 세 축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트라일레마(Trilemma)'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이 불가능해 보이던 삼각 방정식을 하늘 아래 가장 선명하게 풀어내며 집단지성의 힘을 증명했다. 그 어떤 일류 선거 전략가나 정밀한 선거공학자도 감히 예측하거나 기획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준엄하고 정교한 '신의 한 수'를 세상에 던진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판정승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광역단체장 12곳을 휩쓸었던 국민의힘은 이번에 단 4곳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여당은 12곳의 광역단체장을 확보하며 보수 텃밭인 부산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국민이 당시의 계엄 사태에 대해 얼마나 깊이 분노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다.
그렇지만 국민은 결코 여당에게 백지수표를 쥐여주지 않았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의 선택이 이를 방증한다. 여론조사 1·2위 후보를 배제하고 3위 후보를 내리꽂은 막천에 분노한 대구 시민들은 야당 김부겸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며 가슴 서늘한 경고를 보냈다.
지역 언론조차 위태롭다고 전망할 만큼 민심은 흉흉했으나, 대구 시민들은 "보수진영의 궤멸은 국가적 불행"이라는 대국적 판단하에 추경호 후보의 손을 들어주며 매를 멈추었다. 김부겸 후보가 기록한 높은 득표율은 여전히 두려운 민심의 실체로 남아있다.
제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선거사무소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더욱 드라마틱한 반전은 서울이었다. 여당 후보는 구청장 3선 이력보다 대통령의 관심과 립서비스로 기대를 모았으나 미디어 노출이 늘어날수록 서울시민의 반응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특히 공정과 자유를 체화한 2030 세대가 정치 고관여층으로 각성해 행동에 나섰다.
"스타벅스까지 통제하려 드는가? 이젠 전세 구하기도 힘든 세상이다!"라는 청년층의 분노가 투표소로 이어졌다. 여기에 위기감을 느낀 강남 3구의 전통적 지지층이 '영끌 투표'로 화답하며, 동튼 아침 오세훈 후보의 극적인 골든크로스를 완성해 냈다.
그렇다면 장동혁 체제의 국민의힘은 승리의 축배를 들어도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착각이다. 이번 선거의 핵심 변수는 한동훈의 생환이다. 그는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서 보수의 내분이라는 악조건을 뚫고, 용산이 애착했던 'AI 수석' 하 후보를 꺾으며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사실상 축출당하듯 떠나며 "반드시 돌아온다"던 약속을 지켰다.
"보수 재건과 이재명 정부의 독주 저지"를 포효하던 한동훈의 당선은 이번 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 당 지도부가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자신들이 밀었던 후보가 패배했으니, 장동혁 지도부의 마음은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 그의 생환은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극심한 분란의 씨앗이 될지 걱정 반 기대 반의 시선이 교차한다.
평택을 유의동 후보의 승리는 표면적으로 민주당의 자중지란 덕분이었으나 내막을 뜯어보면 유의동 후보 개인의 지역 유대감이 주효했다. 여기에 유승민 전 의원의 지원유세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지지 선언이 결합하면서 중도층과 청년층의 마음을 흔들었다.
다시말해, 이들의 승리는 장동혁 체제의 주류 이념적 '결'과는 확연히 거리가 있는 중도 확장성의 승리였다. 서울 오세훈 후보의 승리 역시 장동혁 대표 체제와의 철저한 '거리두기'가 주효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보수 재건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로써 이번 지방선거는 한국 정치를 옥죄던 트라일레마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유권자의 위대한 선택으로 기록되었다. 문제는 선거 그다음이다.
보수 진영의 고관여 유권자들은 상식적인 해법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의도의 정치인들은 알면서도 국익과 민심을 실천하지 못했다. 불법 계엄에 대한 입장 표명조차 매번 뒷말을 흐리며 내부 분란의 소지만 키웠다. 선언 한번으로 말싸움과 말꼬리 잡기 식의 정쟁(政爭) 구도에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제는 오직 과감한 '행동'으로써만 증명해야 한다. 다가올 내후년(2028년) 총선을 겨냥해 사람·제도·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선명하게 보여주어야 할 때다.
여기까지는 무수한 평론가들이 조언해 왔다. 누구나 아는 해법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평론가들의 무수한 조언을 현장에서 실행할 진정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 신인들은 패기는 넘치나 문제 본질에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를 통찰하지 못해 진흙탕 싸움만 키우고 노회한 올드보이들은 지나치게 영악해 리스크가 있는 선명한 길을 제시하길 꺼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명하면서도 품이 넓은 리더십'이다. 묵묵히 당을 지켜온 당원들과 보수 유권자들의 순수한 애국심이 극우라는 오명으로 모욕받지 않도록 방어벽을 쳐줄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파편화된 보수 진영을 한 그릇에 담아내는 '거버넌스의 정치'가 시급하다. 위에서 군림하는 패권주의가 아니라, 아래서부터 품어 안아 역량을 결집하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이는 단순히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유약한 심성으로는 불가능하며 자신의 사리사욕을 초월한 결기 있는 심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급변하는 대전환의 시대(AI 디지털 전환, 초고령화 쇼크, 지정학적 격변기)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훈련된 혜안'까지 장착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 세 가지 덕목을 모두 갖춘 리더를 찾는 일은 어쩌면 플라톤이 정초한 '철인 정치가'를 기다리는 일만큼이나 아득하고 유토피아적인 갈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단순히 권력을 찬탈하기 위한 야만적인 이전투구의 장이 아니라, 시민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규범을 도출해 내는 고도의 지적 활동이라는 본질을 믿는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 두드려야 마땅하다.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위대한 유권자들이 보여준 정교한 심판에 보답하는 최소한의 정치적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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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인배 한반도미래포럼 수석연구위원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