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또 봐도 안 질려”…유통기한 없는 ‘고전의 맛’
입력 2026.05.31 09:51
수정 2026.05.31 09:51
전미도 '갈매기'·최수종 '오이디푸스'·이서진 '바냐삼촌' 등 공연
"고전 보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
“‘오이디푸스’나 ‘바냐아재’ 같은 작품들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운명뿐 아니라 인간의 고뇌를 아주 적나라하고 극명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객석에 있는 관객들은 그런 고전을 보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은 계속 공연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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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남명렬은 최근 열린 연극 ‘오이디푸스’ 제작발표회에서 고전이 현대 무대에 끊임없이 소환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이같이 정의했다. 그의 발언처럼 올해 상반기 공연계의 핵심 키워드는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그리스 비극부터 셰익스피어, 체호프, 그리고 한국 근대극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초월한 텍스트들이 동시대적 무대 언어와 결합하여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복고를 넘어 고전이 지닌 인문학적 가치가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과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서울문화재단이 진행 중인 ‘연극의 질문들: 진화하는 텍스트’ 역시 고전과 현대의 텍스트를 오늘의 무대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이러한 흐름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무대를 장식하고 있는 주요 작품들을 통해 고전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변주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7월 4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하는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인간의 가혹한 운명과 그에 맞서는 의지를 다룬다. 오이디푸스 역에는 최수종과 양준모가 더블캐스팅됐다. 서재형 연출은 “인간 오이디푸스의 의지를 관객에게 잘 전하는 작품으로 만들고자 한다”며 “변동성이 많은 현 시대에 관객들이 힘을 내시고, 의지를 갖고 걸어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위로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로 천만 배우에 등극한 배우 전미도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연극 ‘갈매기’도 오는 8월 9일부터 31일까지 티켓링크 1975 씨어터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다. 작품은 안톤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하나로, 사랑과 예술에 대한 갈망, 그리고 좌절을 그린다. 김정 연출가는 “‘갈매기’는 예술 하는 사람들과 그 주변인의 이야기지만, 꿈으로 가득한 젊은 시절을 지나 포기하고 좌절하며 희미해진 꿈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무대에서 공연을 올리지만 관객들과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여러 장치를 고민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바냐 삼촌' ⓒ
'반야 아재' ⓒ
체호프의 또 다른 대표작인 ‘바냐 아저씨’를 원작으로 한 ‘바냐 삼촌’과 ‘반야 아재’도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이서진·고아성 주연의 ‘바냐 삼촌’은 원작의 쓸쓸한 정서와 인물 간의 관계를 리듬감 있게 살려냈다면, 국립극장에서 공연 중인 조성하·심은경 주연의 ‘반야 아재’는 원작의 19세기 러시아 시골 영지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 한국으로 끌고 와 한국적 정서와 유머를 가미해 일상의 권태를 보다 친숙하게 풀어냈다.
또 오는 7월 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베니스의 상인’은 은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자본주의 사회의 갈등으로 재해석했다. 샤일록의 고뇌를 단순한 악인의 몰락이 아닌, 소수자의 생존과 복수라는 관점에서 조명한다. 현대적인 의상과 도시적인 무대 디자인을 활용해 법과 정의, 탐욕이라는 주제를 오늘날의 맥락으로 가져왔다. 신구와 박근형을 비롯해 이승주, 카이, 수영, 원진아, 이상윤, 김슬기, 김아영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에 앞서서도 1930년대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재해석한 ‘홍도’(고선웅 연출·박하선 예지원 출연), 셰익스피어 ‘맥베스’를 재해석한 ‘칼로막베스’ 등 다수의 고전이 관객을 만났다.
고전 재해석 무대가 잇따르는 것은 트렌드가 급변할수록 변하지 않는 본질에 대한 관객의 요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 구조가 바뀌어도 인간이 겪는 근원적인 고통과 선택의 문제는 유효하다. 남명렬 배우가 언급했듯, 고전은 관객에게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공연계는 원형의 힘을 유지하면서도 동시대적인 연출과 연기를 통해 고전의 유통기한을 늘리고 있다. 박제된 텍스트가 아닌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언어로 부활한 고전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결국 관객이 고전을 찾는 이유는 그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지금의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