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역사 지우면, 무대도 없다”…문화예술계 판도 바꾼 관객의 품격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5.29 10:16
수정 2026.05.29 10:16

서울재즈페스티벌 '스타벅스' 홍보 부스 운영 철회

배우 정민찬 스벅 방문 인증샷 사과에도 뮤지컬 하차

대중문화 소비층의 역사의식 및 윤리적 기준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움직임이 문화예술계 의사결정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콘텐츠가 담고 있는 가치와 태도를 소비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뚜렷해짐에 따라,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브랜드와 연계된 기획이 대중의 엄격한 검증대 위에 오르는 양상이다.


ⓒ뉴시스

지난 5월 18일 진행된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데이’ 프로모션으로부터 비롯된 논란이 대표적이다. 해당 프로모션은 대용량 텀블러 홍보를 목적으로 기획되었으나,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점과 과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의 은폐 발언인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를 연상시키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사용해 사회적 공분을 샀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실수를 넘어 역사적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의도적 문구로 읽히면서 광범위한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이러한 여론은 문화예술 현장까지 번졌다.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개최된 ‘서울재즈페스티벌’ 주최 측은 행사장 내 설치 예정이던 스타벅스 홍보 부스의 운영을 전격 취소했다. 당초 스타벅스는 해당 페스티벌의 주요 협찬사로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논란 직후 주최 측은 관객들의 역사적 감수성을 의식해 상업적 이익 대신 축제의 정체성을 지키는 선택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페스티벌 소비층의 윤리적 기준이 기업 협찬 유치라는 시장의 관행을 멈춰 세운 사례로 평가받는다.


뮤지컬 ‘디아길레프’에 출연 중이던 배우 정민찬은 불매운동이 한창인 시기에 스타벅스 매장을 방문해 음료를 구매한 인증 사진을 게시해 관객들의 비판을 받았다. 단순히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소비했다는 사실보다 더 큰 문제가 된 것은 이후 게시된 사과문의 태도였다. 정민찬은 장난기 섞인 사과문을 내면서, 역사적 상처를 자극하는 브랜드 마케팅에 분노한 대중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논란이 일자 뮤지컬 제작사는 해당 배우의 작품 중도 하차를 공식 발표했다.


사실 대중문화계에서 역사적 무지나 왜곡에 대해 소비자들이 단호한 심판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방영 2회 만에 폐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중국식 소품 사용과 역사적 인물에 대한 부적절한 묘사가 논란이 되자 시청자들은 광고주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였고, 결국 기업들이 광고를 철회하면서 작품 자체가 퇴출됐다. 최근엔 뮤지컬 배우 차강석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출연 중이던 작품에서 하차 당하고, 강사로 일하던 직장에서도 해고됐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들은 대중문화 소비자들이 단순히 콘텐츠를 즐기는 수동적 주체에서 벗어나, 역사적 정의와 윤리적 가치를 실천하는 능동적 주체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들은 자신의 지불 비용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기업이나 역사적 의식이 결여된 인물에게 흘러가는 것을 일종의 ‘가치 훼손’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대중문화 공간은 이제 단순한 오락 제공을 넘어 소비자의 가치관이 투영되고 검증되는 공간이 됐다는 것이다.


한 공연 기획사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역사적 감수성을 고려한 리스크 관리가 문화예술계에도 필수적인 과제가 됐다”며 “과거에는 출연진의 법적 일탈 등이 하차 사유였다면, 이제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무감각함이나 부적절한 사과 태도 역시 결격 사유로 작용한다. 기획사 및 주최 측은 협찬 유치와 출연진 섭외 시 대중의 강화된 윤리적 기준을 핵심적인 판단 근거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봤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