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파업 피한 삼성…성과주의 균열·보상 인플레 후폭풍
입력 2026.05.21 14:14
수정 2026.05.21 14:14
적자 사업부도 1억대 성과급, '성과주의' 원칙 벗어나
하이닉스식 공동배분, 종합전자회사 구조와 충돌
내부 갈등·주주 반발까지 확산…"안좋은 선례" 우려
ⓒ연합뉴스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직전 극적으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지만 후폭풍은 이제부터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도체 생산라인 셧다운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이번 합의가 삼성전자의 기존 성과주의 체계와 종합전자회사 구조를 흔드는 선례를 남겼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특히 성과주의 원칙 훼손 논란과 사업부 간 형평성 문제, 자사주 보상 구조 등을 둘러싼 논쟁이 삼성 내부를 넘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총파업은 막았지만 삼성 내부 갈등의 불씨는 오히려 더 커졌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체계를 유지하면서 DS(반도체)부문 특별경영성과급 제도를 신설하기로 했다. 특별경영성과급은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며 지급 상한도 두지 않는다.
재원 배분 구조는 부문 40%, 사업부 60%다. 사업성과를 영업이익으로 가정할 경우 올해 기준으로 메모리사업부 직원들은 최대 6억원 안팎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적자가 유력한 시스템LSI·파운드리 사업부 역시 최소 1억6000만원 수준의 공통 배분 몫을 확보하게 된다.
ⓒ데일리안AI 이미지
"성과 있는 곳에 보상" 기본 원칙 사실상 흔들렸다
논란의 핵심은 적자 사업부 보상 구조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원칙을 핵심 성과주의 철학으로 내세워왔다. 그러나 이번 합의로 올해 실적 기준 내년 성과급에서는 적자 사업부 역시 DS 공통 배분 몫을 상당 부분 가져가게 됐다. 회사 측이 1년간 적자 사업부 배분 방식을 유예하기로 하면서다.
원래 메모리사업부와 비메모리사업부 간 성과급 격차가 수억원 수준까지 벌어질 수 있었던 만큼, 업계에서는 "이번 협상은 총파업을 막기 위해 삼성전자가 결국 기존 성과주의 원칙 일부를 접은 것"이라는 평가하고 있다.
특히 이번 구조는 메모리 중심 성과공유 체계를 운영하는 SK하이닉스 방식과 닮아간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단일 회사가 아니라 스마트폰·TV·가전 등을 포함한 종합전자회사라는 점이다.
실제 조직 내부에서는 "흑자를 내는 DX(완제품)사업부보다 적자 DS 사업부가 더 많은 성과급을 받는 구조가 맞나", "메모리 적자일때는 모바일(MX)에서 다 벌어서 투자했는데, 그럼 이런 형평성에 있어선 초기업노조는 뭐라고 할 것인가"등의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10년간 특별경영성과급이지만... 노조 "100~200조 못벌면 안주나" 불만
DX를 넘어 이번 특별경영성과금의 수혜를 입게 될 DS 내부에서도 합의안에 대한 불만 기류가 감지된다. 특별경영성과급이 향후 10년간 운영되지만, 실제 지급에는 실적 조건이 걸려 있어서다. 특별경영성과급은 2026~2028년 DS부문 영업이익 200조원, 2029~2035년에는 연간 영업이익 100조원 이상을 달성해야 지급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업황 변동성이 큰 반도체 산업 특성을 고려해 과도한 고정비 부담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둔 셈이지만,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상한 없는 성과급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조건부 보상에 가깝다"며 만족스럽지 못하단 반응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DX부문 조합원들이 참여한 '삼성전자 직원 권리 회복 법률대응연대'는 최근 초기업노조를 상대로 교섭 중단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들은 이번 성과급 협상안이 총회·대의원회 의결 등 내부 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채 추진됐다며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21일 오전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 민경권 대표가 서울 용산구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임채현 기자
주주 반발까지 확산…"주주 권익 침해", "이적(利敵) 파업"
주주 반발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이날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는 서울 용산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전 영업이익에 연동된 성과급 구조는 주주 권익 침해 소지가 있다"며 법적 대응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들은 "영업이익은 본질적으로 주주 몫인데, 주주총회 결의 절차조차 밟지 않았다"며 이사회 책임론을 제기했다.
또다른 주주 단체인 삼성전자 주주행동실천본부도 같은날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반도체 산업은 납기와 안정성이 생명인데 이번 사태로 글로벌 고객사에 한국 반도체 공급망 불안 우려를 키웠다. 파업이 유보됐지만 언제든지 반도체 인질극으로 파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 아니냐. 이 자체만으로도 이미 경쟁국에 반사이익을 크게 안겨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재계 역시 이번 합의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최근 카카오, 현대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에서도 '영업이익의 N%'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 보상체계의 기준점 역할을 해온 회사"라며 "이번 합의가 다른 대기업 노조들의 영업이익 연동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업들이 가장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21일 오전 대한민국 주주행동 실천본부가 서울 용산구 인근에서 삼성 노조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임채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