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원스톱 반도체'…AI 호황이 가른 빛과 그늘
입력 2026.05.19 13:17
수정 2026.05.19 13:29
메모리 607% vs 파운드리 100%…DS부문 내 보상 격차 임계점
21일 총파업 앞두고 사후조정 막판 줄다리기…노사 이견 여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 22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첨단 복합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인 NRD-K 클린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AI 반도체 호황의 한복판에서 예상치 못한 내부 균열에 직면했다. 이재용 회장이 7년간 공들여온 '원스톱 반도체' 전략이 AI 시대 큰 수혜를 입는 동시에, 그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둘러싼 새로운 과제를 맞닥뜨렸다.
원스톱 반도체 전략의 딜레마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 세종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2차 사후조정을 진행 중이다. 사실상 마지막 협상 기회다. 정부는 국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우려하며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이번 협상의 핵심 쟁점은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부문 내 성과급 배분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 부문은 크게 데이터 저장장치를 주력으로 하는 메모리 사업부와 칩 설계 및 위탁생산 등 시스템 반도체를 아우르는 시스템 LSI·파운드리 사업부로 구분된다.
노조는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지급하되 이 중 70%는 DS부문 전체가 나눠 갖고 30%만 사업부별 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영업이익이 200조원을 넘길 경우 기존 성과급 외에 영업이익의 9~10%를 추가 지급하되 부문 전체 60%, 사업부별 40%로 나누자는 안을 제시했다. 성과급 70%를 공통 재원으로 분배하는 것은 성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성과급 격차의 배경에는 사업부별 극단적인 실적 차이가 있다. 올해 1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DS 부문 실적 대부분을 메모리 사업부가 견인한 가운데 업계는 메모리 사업부 영업이익이 54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면 시스템LSI·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부는 여전히 적자다. 로이터가 입수한 삼성전자 내부 임금 협상 회의록에 따르면 메모리 직원들에게 연봉의 607%가 제시된 반면 파운드리·시스템LSI 직원들에게는 50~100% 수준에 그쳤다.
삼성전자는 로직부터 메모리, 파운드리, 패키지를 모두 갖춘 종합 반도체 기업(IDM)이다. TSMC는 파운드리 중심이고,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중심이다. 삼성만이 로직 웨이퍼 생산부터 HBM4용 베이스다이, 첨단 패키징까지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원스톱 턴키 체제'를 내세울 수 있다.
이 전략의 출발점은 2019년 4월이었다. 이재용 당시 부회장은 화성사업장에서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를 하겠다"고 선언하며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내놨다. 이후 투자 규모는 171조원 수준으로 확대됐다. 지난해엔 테슬라의 차세대 AI칩 'AI6' 수주, 애플 이미지센서 공급 계약이 잇따랐고, 올해 2월엔 HBM4 세계 최초 양산 출하까지 성공했다. 삼성이 7년간 공들여온 원스톱 전략이 AI 시대에 마침내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어느 쪽을 택해도 부담을 안게 됐다는 점이다. 노조 요구를 수용하면 적자 사업부까지 포함해 대규모 성과급을 지급해야 한다. 수용하지 않으면 비메모리 핵심 인력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2019년 삼성 19%·TSMC 48%에서 지난해 삼성 7.2%·TSMC 67.6%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삼성전자는 HBM4 베이스다이를 자사 파운드리에서 직접 생산한다. SK하이닉스가 TSMC에 외주를 맡기는 것과 달리 내부에서 해결하는 구조다. 테슬라 AI6 칩 수주와 애플 이미지센서 공급 확대 역시 파운드리와 시스템LSI가 버텨줘야 가능하다.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오른쪽 두 번째)을 비롯한 삼성전자 DS 부문 사장단이 지난 15일 경기도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을 방문해 초기업노조 최승호 위원장(왼쪽 두 번째) 등 노조 지도부와 면담하고 있다.ⓒ삼성전자
노조 내부도 흔들…"DX 못해먹겠다"
이미 이탈이 시작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평택 파운드리 엔지니어 이모씨는 로이터에 "지난 몇 년간 팀 규모가 크게 줄었다. 일부 동료들은 메모리 사업부와 SK하이닉스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30년 경력의 반도체 연구원 이모씨도 지난달 말 4만명 규모 집회에서 "동료 상당수가 다른 회사로 떠났고 나도 마이크론에 지원했다"며 "분노해서 집회에 나왔다"고 밝혔다.
사측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사측 협상 대표인 김형로 부사장은 회의록에서 "시스템 반도 사업부는 수조원 손실을 냈고, 솔직히 우리 회사가 아니었다면 폐업하거나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했다.
협상 과정에서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지부(초기업노조)의 내부 갈등도 표면화됐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전날 노조 내부 소통방에 "마무리되면 노조 분리 고민을 해보자. DX 솔직히 못해먹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곧바로 사과했다.
DX(디바이스경험)부문은 스마트폰·가전·TV 등 완제품 사업을 담당한다. 최근 DX부문 조합원들이 줄줄이 탈퇴하면서 초기업노조 조합원은 7만6000명에서 7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DX부문 조합원 5명은 지난 15일 초기업노조를 상대로 단체교섭 중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은 초기업노조가 현재 DS부문 중심으로만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갈등은 AI 시대에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를 한 지붕 아래 두는 삼성의 IDM 경쟁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성과를 내부적으로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라는 새로운 숙제를 안겨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