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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시간 없다" 6년 뒤…삼성은 지금 총파업 벼랑 끝 [나우앤덴]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5.18 09:00
수정 2026.05.18 12:29

2020년 5월 18일 이재용, 코로나 봉쇄 뚫고 중국 시안행

6년 뒤 같은 날 삼성은 중노위에...총파업 앞에 고개 숙인 총수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6년 전 오늘, 이재용 회장은 당시 부회장 신분으로 봉쇄된 중국 공장 현장에서 "시간이 없다"고 했다. 6년 뒤 같은 날짜, 삼성전자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 총파업 위기를 앞두고 세종 중앙노동위원회에 선다.

재판 중인 총수, 봉쇄된 나라로

2020년 5월 18일의 이재용 회장은 복잡한 처지였다.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피고인이었다. 그 상태로 한·중 신속통로(패스트트랙)를 활용해 외국인 입국이 사실상 금지된 중국으로 날아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을 찾은 글로벌 기업 CEO 중 첫 번째였다.


시안은 삼성의 유일한 해외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다. 당시 미국은 화웨이 제재를 강화하며 반도체 전쟁을 본격화하고 있었다. 삼성은 미·중 사이에서 생산 거점을 지켜야 했고, 그해 4월엔 엔지니어 200여명을 전세기로 긴급 투입했다.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를 겨냥한 반도체 추가 제재를 발표한 지 사흘 뒤였다. 화웨이라는 거대 고객을 잃을 위기와 중국 생산기지를 지켜야 하는 압박이 동시에 몰아치던 순간이었다.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총수는 공장 현장을 돌았다.


이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과거에 발목 잡히거나 현재에 안주하면 미래는 없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그 사과가 오늘을 만들었다

시안 방문 12일 전인 2020년 5월 6일, 이 회장은 서초 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조 와해 의혹을 인정하고 무노조 경영 폐기를 선언한 것이다. 재판부의 권고를 받아들인 결과였지만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낳았다.


이듬해 창사 52년 만에 첫 단체협약이 체결됐고, 2024년 2월엔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이하 노조)가 출범하며 조합원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현재 조합원은 7만명에 달하며 이 중 약 80%가 DS(반도체)부문 소속이다. 이 회장이 직접 노조의 문을 열었고 6년 뒤 그 노조가 파업을 선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이 지난 2020년 5월 18일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시안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해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삼성전자
이틀 전, 노조가 먼저 꺼낸 카드

파업을 닷새 앞둔 시점까지도 노조는 강경했다. 노조는 "파업 종료까진 추가 대화는 없다"고 버텼고, "이 회장이 직접 나오면 응하겠다"는 말도 나왔다.


그 말이 현실이 됐다. 지난 16일, 이 회장은 일본 출장을 접고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급거 귀국했다. 검은 정장 차림으로 굳은 표정의 그는 원고를 꺼내 읽었다. 세 차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이 회장은 "노동조합 여러분, 삼성 가족 여러분, 우리는 한 몸 한 가족입니다"라며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2020년 무노조 경영 폐기에 이어 세 번째 대국민 사과이자 2022년 회장 취임 이후로는 처음으로 고개를 숙인 순간이었다. 사과 직후 삼성전자는 노조가 요구하는 교섭대표를 기존 김형로 부사장에서 여명구 DS 피플팀장 부사장으로 교체했다.

족쇄가 풀린 자리에 새 불씨가

지난해 사법 리스크가 일단락되고, 올해 12조원 규모의 상속세 납부까지 마무리되면서 오너가를 묶던 외적 족쇄는 대부분 풀렸다. 하지만 이번엔 내부에서 불이 났다. 노조는 OPI(초과이익성과급) 상한 폐지와 함께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 배분하고 제도화할 것을 요구하며 오는 21일부터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57조 232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756% 증가라는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이 숫자가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는 노조의 불씨가 됐다.

오늘 오전, 세종 중노위

오늘 오전 10시 세종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삼성전자 노사 2차 사후조정 회의가 열린다. 박수근 중노위 위원장이 직접 참관한다.


지난 11일부터 13일 새벽까지 이틀간 마라톤 협상을 벌였지만 빈손으로 끝난 1차 사후조정 이후 처음 다시 마주 앉는 자리다. 전날 김민석 국무총리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18일 교섭은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며 협상 결렬 시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실상 21일 총파업 전 마지막 대화의 기회다.


6년 전 이 회장은 봉쇄된 나라에서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했다. 6년 뒤 오늘, 이 회장이 고개를 숙인 뒤 협상 테이블이 다시 열렸다. 싸움의 상대가 바뀌었다. 급하다는 건 여전하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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