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자축구단 방한이 던지는 질문 [박은주의 한반도 전략 시선]
입력 2026.05.18 07:00
수정 2026.05.18 08:34
적대적 두 국가 시대에도 접촉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무덤덤한 방한 풍경이 보여준 오늘의 남북관계
‘완전한 단절’ 역시 쉽지 않다는 한반도의 현실
북한 여자축구팀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참가를 위해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심리학에는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개념이 있다. 복잡한 현실을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신적 지름길이다. 대부분의 경우 유용하지만, 반복되면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왜곡하는 오류를 낳기도 한다. 인간은 익숙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하고, 반복된 경험 속에서 판단을 내린다. 문제는 그 습관이 어느 순간 현실의 변화를 읽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요즘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도 이런 휴리스틱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선수들이 지난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왔다. 입국장 문이 열리고 짙은 남색 투피스를 맞춰 입은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과거처럼 대규모 환영 인파나 과열된 취재 경쟁은 보이지 않았다. 공항의 풍경은 예상보다 차분했고, 사람들의 반응 역시 대체로 담담했다.
북한 선수의 방한은 2018년 12월 국제탁구연맹 월드투어 그랜드파이널스 참가 이후 약 8년만이다. 표면적으로는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 참가를 위한 일정이다. 그러나 작금의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단순한 스포츠 뉴스로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북한은 이미 헌법에서 ‘통일’을 삭제했다.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지도 이미 몇 해가 흘렀다. 핵과 영토, 국가주권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가노선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도 이어지고 있다. 북러 군사협력은 심화되고 있으며, 북한의 핵·미사일은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한반도 안보 환경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사람들은 남북관계의 단절과 긴장에 너무 익숙해졌다. “북한은 원래 그런 나라”, “남북관계는 이미 끝난 것 아니냐”는 식의 인식도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북한 여자축구단의 방한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적대와 단절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왜 접촉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까. 왜 북한 선수단은 국제스포츠 교류 차원에서 한국을 방문하고, 우리는 그것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흥미로운 점은 이번 방한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이나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때 북한 선수단의 방한은 정치적 긴장과 기대, 논쟁을 동시에 불러오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뉴스는 빠르게 소비되고, 사람들은 놀랄 만큼 무덤덤하다. 남북관계가 잠시 완화 국면에 들어선다해도 결국 다시 긴장과 단절로 돌아간다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사람들 역시 관계 변화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번 방한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 교류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이후에도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 몇 안 되는 접촉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제한적 교류가 곧장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도 이제 이를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지금의 남북 스포츠 교류는 관계 회복의 상징이라기보다 '완전한 단절' 역시 결코 쉽지 않다는 지독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다.
남북관계는 긴장과 화해, 접촉과 단절을 반복해 왔다. 그리고 그 반복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익숙한 인식을 남겼다. 잠시 달라지는 듯 보여도 결국 다시 대결과 긴장의 국면으로 되돌아간다는 감각이다.
이번에 방한한 선수들 상당수는 이미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대결적 휴리스틱에 갇힌 채 오늘의 남북관계를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지금 한반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적대 그 자체만이 아니라, 적대에 너무 익숙해진 우리의 감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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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은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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