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피' 기대 속 코스닥엔 온기가 없다 [기자수첩-증권]
입력 2026.05.18 07:08
수정 2026.05.18 07:08
벤처·IPO 생태계 경고음
기관 자금 유입 확대돼야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코스피가 달리면 뭐해요. 코스닥이 같이 잘 돼야지."
최근 코스닥 기업에 투자하는 한 벤처캐피탈(VC) 대표가 내뱉은 말이다. 짧지만 묵직하다.
얼핏 들으면 중소형주 시장에 대한 단순한 아쉬움 같지만, 이 말에는 한국 증시의 구조적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코스피는 연일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지난 15일 코스피는 장중 8046.78까지 도달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이같은 증시 호황에 증권가에서는 연내 '1만피'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기대감이 맞물리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형주가 증시를 끌어올리고,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도 자금이 몰리고 있다.
문제는 이 온기가 코스닥까지 번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날 코스닥은 1120선에서 맥없이 마감했다. 이달 내내 지지부진한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시장은 같은 나라 증시가 맞나 싶을 만큼 딴 세상을 살고 있다.
자금은 냉정하다. 변동성이 큰 코스닥 종목보다 '결국 삼전·닉스가 낫다'는 인식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돈은 코스피 대형주와 ETF로만 몰리고 있다.
금리 인하 기대 약화에 지정학적 불안까지 겹치자 위험자산 회피 심리는 더욱 깊어졌다.
이 같은 투자자 개개인의 판단을 탓할 수는 없다. 투자의 기준은 수익률이고, 그 선택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코스닥을 단순히 '중소형주 시장' 정도로 보는 건 위험하다.
코스닥은 바이오·AI·로봇·반도체 소부장 등 미래 산업 기업들이 성장 자금을 조달하고 상장하는 핵심 통로기 때문이다.
성장 초기 기업은 은행 대출보다 상장과 투자 유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코스닥 시장이 위축되면 기업가치 평가가 낮아지고, 투자와 연구개발(R&D) 여력도 줄어든다.
이미 그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기업공개(IPO) 시장 냉각은 벤처투자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혁신기업 성장 둔화로 연결된다.
오늘의 코스닥 부진이 내일의 산업 공백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이다.
코스피 지수판에 박수를 치는 사이, 한국 경제의 미래 엔진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코스닥 활성화를 위해 기관 자금 유입 확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연기금 등 장기 자금의 투자 비중 확대, 코스닥 기업 대상 리서치 강화, 기술특례상장 제도 보완, 세제 혜택 등이 거론된다.
최근 IBK증권이 중소형주 분석 보고서를 늘리고, IBK금융그룹이 코스닥 활성화 태스크포스(TF)를 꾸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간의 자발적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정책 당국이 보다 강하고 일관된 시그널을 시장에 던져야 한다.
결국 중요한 건 코스피 숫자 자체가 아니다.
'1만피'가 와도 상승의 과실이 소수 대형주에만 집중된다면, 그것은 강세장이 아니라 쏠림장일 뿐이다.
진짜 강한 증시는 삼성전자 혼자 우뚝 선 시장이 아니다. 작은 기업이 투자받고 성장해 다음 삼성전자가 될 수 있는 시장이다.
코스피가 웃을 때 코스닥도 함께 웃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