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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이 빚은 스펙터클, 무대의 경계를 지우다 [‘발광’하는 무대①]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4.16 07:40
수정 2026.04.16 07:40

'데스노트'의 성공이 이끈 영상 기술 활용 가속화

공연계의 지속 가능한 ‘에코 프렌들리’ 대안으로

"무대예술 현장성에 상상력 한계 허문 창작 효율성까지"

뮤지컬 무대는 현재 거대한 LED 스크린과 첨단 영상 기술의 도입으로 유례없는 시각적 화려함을 구현한다. 목재와 철재 등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세트가 차지하던 자리를 디지털 영상이 대체한 셈이다. 기술 발전으로 과거 공연 예술이 지녔던 시공간 제약을 허물고, 영화적 연출에 익숙한 대중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는 평가도 나온다.


뮤지컬 '데스노트 2026' ⓒ오디컴퍼니

한국 공연 시장에서 영상 기술 활용의 분기점이 된 작품으로는 뮤지컬 ‘데스노트’가 꼽힌다. 2022년 논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으로 제작된 ‘데스노트’는 바닥과 벽면, 천장까지 이어지는 무대 전체를 LED 패널로 감싸는 대담한 시도를 감행했다. 당시 총 1380개의 LED 패널이 투입됐고, 이음새 없는 영상 구현을 통해 무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스크린처럼 작동하게 했다.


이러한 시도로, 뮤지컬 무대는 과거 암전 상태에서 세트를 교체하던 물리적 방식을 탈피했다. 첨단 LED 기술을 통해 테니스 경기장, 시부야 거리, 주인공의 방 등 순식간에 시공간을 전환하며 관객에게 압도적인 시청각적 쾌감을 제공했다. 이는 미학적인 완성도뿐만 아니라 작품의 초현실적인 세계관과 완벽하게 부합해, 기술이 서사를 어떻게 보조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성공 사례로 남았다.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는 “‘데스노트’는 콘셉트를 LED로 잡아서 모든 것을 구현한 모델”이라며 “이 모델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후 다른 제작사들도 ‘데스노트’를 참고해 창조적으로 변형하거나 적용하려는 시도가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데스노트’ 이후 국내 대극장 뮤지컬에서는 LED 스크린을 주 무대 장치로 활용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일각에선 “LED 스크린을 쓰지 않는 뮤지컬이 손에 꼽힐 정도”라는 말까지 나온다. 더구나 이젠 연극에서도 LED 스크린을 활용한 무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기술 도입이 가져온 가장 큰 실질적 이점은 무대 연출의 효율성이다. 디지털 영상은 데이터 수정을 통해 배경을 즉각적으로 변경할 수 있어 연출의 유연성을 극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물리적 세트를 제작하고 운반해 설치하면서 소요된 시간과 투입된 막대한 자본의 절감은 ‘연출 유연성 극대화’를 든든하게 받쳐준다.


실제로 뮤지컬 ‘데스노트’의 변천사는 이러한 효율성의 가치를 증명한다. 2015년 국내 초연 당시, 일본 제작진의 무대를 그대로 들여온 레플리카 버전은 거대한 회전 무대와 육중한 철제 구조물 등 물리적 세트가 중심이었다. 당시엔 장면 전환을 위해 세트가 움직이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수적이었고, 이를 유지·보수하는 데도 많은 인력이 투입됐다.


하지만 2022년 한국 제작진이 새롭게 설계한 논레플리카 버전은 무대 전체를 LED 패널로 교체하며 이 공식을 완전히 깼다. 수 톤에 달하는 물리적 세트 대신 디지털 데이터가 그 자리를 채우자, 복잡한 테니스 경기 장면이나 시공간을 넘나드는 추격전은 별도의 세트 이동 없이 오직 영상의 관점 변화만으로 구현됐다. 이는 무대 전환 시간을 ‘0초’로 단축함과 동시에, 세트의 보관과 운송에 드는 물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무대 뒤 스태프들의 생태계도 변했다. 고도화된 자동화 시스템을 조율하고 영상과의 합을 맞추는 테크니컬 디렉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 그 예다.


뮤지컬 '긴긴밤' ⓒ라이브러리컴퍼니

또한 최근 공연계의 주요 화두인 ‘에코 프렌들리’(Eco-friendly) 측면에서도 기술 활용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문화예술의 친환경적 관점 도입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공연장 한 곳당 연간 탄소 배출량은 평균 약 54톤에 달한다. 이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다른 문화시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로, 공연 하나를 올리기 위해 제작되는 막대한 규모의 세트와 소품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의 물리적 세트는 작품이 막을 내리는 순간 곧바로 ‘처치 곤란한 짐’이 된다. 재공연을 위해 보관할 경우 매달 수백만 원에 달하는 창고 임대료와 유지비가 발생하며, 보관을 포기하고 폐기할 때도 막대한 폐기물 처리 비용과 함께 환경 오염이라는 부채를 남긴다.


반면 LED와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무대의 굴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최승연 평론가는 “물리적 세트는 작품이 끝나면 폐기 처분하거나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보존해야 하는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하지만, LED는 수만 번 반복 사용이 가능한 반영구적 장비”라며 “디지털 데이터로 구현된 무대는 별도의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탄소 배출과 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적 대안”이라고 짚었다.


이러한 기술적 보강은 소극장과 중극장 무대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뮤지컬 ‘긴긴밤’이나 ‘홍련’의 경우 바닥에 LED를 설치하여 최소한의 장치로도 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 최 평론가는 “바닥 LED는 과한 느낌 없이 색감을 예쁘게 사용하며 효과적인 무대화를 이뤄낸 사례”라며 기술이 적절한 밸런스를 찾았을 때 강점을 언급했다.


결국 영상 기술은 무대 예술이 지닌 ‘현장성’이라는 무기에 ‘확장성’이라는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찰나의 순간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디지털 영상은 새로움을 원하는 관객들에게 돈이 아깝지 않은 시각적인 보상을 제공하고, 이는 곧 자본의 유입과 시장의 팽창이라는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더해 “물리적인 한계에 갇혀 미처 구현하지 못했던 창작자의 상상력을 무대에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됐다”면서 “단순히 관객들을 현혹하는 스펙터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무대 예술의 현장성과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창작의 효율성과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문법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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