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퍼팩트스톰-정책] 바닷길 막히니 세계가 ‘흔들’…물류망 재설계 시급
입력 2026.04.10 07:00
수정 2026.04.10 08:35
호르무즈 봉쇄로 세계 물류망 위기
해상 운임 상승에 물가·유가 악재
중동 리스크에 세계 경제 ‘휘청’
공급망 다변화, 선택 아닌 필수
지난달 11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에 의해 피격된 태국 선박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 AFP/연합뉴스
중동 전쟁이 40일을 넘기면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을 합의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이미 우리 정치와 경제, 산업 전반은 고물가·고유가·고금리 3고(高) 위기를 맞으며 충격에 휩싸였다. 중동 전쟁이 현재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종전 이후에도 한반도에 머무를 강력한 중동발 태풍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지구 반대편 중동에서 발발한 전쟁 후폭풍이 대륙을 넘어 세계 바닷길로 번졌다. 중동을 둘러싼 지정학적 충돌이 격화하면서 국제 사회는 석유와 가스를 실어 나르는 해상 물류망의 취약성을 실시간 목격하고 있다.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에너지와 원자재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 ‘초크 포인트(chokepoint, 전략적 요충지)’다. 이 지역의 긴장은 곧바로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들 지역에 위험이 닥치면 해운사들이 기존 항로 대신 희망봉 우회 항로를 선택한다. 이에 따라 아시아와 유럽 간 운송 기간은 평균 10~15일가량 늘어난다. 선박 연료비와 보험료가 급등하고, 이는 해상 운임 상승으로 이어진다.
에너지 패권 전쟁의 또 다른 전장은 바다다. 중동을 둘러싼 지정학적 충돌이 격화되면서 국제 사회는 석유와 가스의 생산지뿐 아니라 이를 실어 나르는 해상 물류망의 취약성을 동시에 목격하고 있다.
특히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에너지와 원자재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 chokepoint로, 이 지역의 긴장은 곧바로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사장 안병길, 이하 해진공)가 지난 6일 발표한 부산발 컨테이너운임종합지수(KCCI)는 지난주 대비 4.01%(84p) 오른 2178p를 기록했다. 직전 주 3.3%(67p) 오른 데 이어 지난주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상하이 컨테이너운임지수(SCFI)도 6주 연속 상승했다. 지난 3일 발표한 SCFI는 1854.96p 기록해 전주 대비 28.19p(1.54%) 올랐다.
해진공은 SCFI 상승에 대해 “중동 리스크가 연료비, 보험료, 환적 차질, 지역별 할증 등으로 구체화하면서 미주·남미 상승 및 유럽·지중해 단기 조정 등 항로별 차별화된 흐름을 보이며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상 물류 비용 증가는 단순히 운송 업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원유와 LNG 같은 에너지 자원은 물론 철광석, 곡물,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다시 자극한다.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서울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돌파한 지난 7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게시돼 있다. ⓒ뉴시스
글로벌 해운 분석업체 제네타의 피터 샌드 수석애널리스트는 “이 위기가 길어질수록 전 세계 해상운송 차질은 더 커지고 비용도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퀴네앤드나겔의 마이클 올드웰 해상물류 부문 부사장도 “설령 지금부터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안전해진다고 해도, 선박 운항 패턴이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최소 두 달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 우회가 아니라 공급망 전체의 시간표가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유럽-아시아 연결 육상 운송 개발 가속
이에 세계 주요국들은 물류 전략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중동 리스크에 국가 경제가 좌우되는 상황을 반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육상 운송로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중동과 유럽, 아시아를 연결하는 철도·도로 네트워크 구축 논의가 활발해졌다. 해상 의존도를 줄이려는 시도다.
대체 항로 확보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기존 항로가 위험해질 경우 즉시 전환할 수 있는 복수의 운송 루트를 확보하려는 시도다.
재고 확보도 중요하다. 에너지와 핵심 원자재를 평시보다 더 많이 비축해 위기 시 공급 충격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다.
한국은 사정이 좀 더 제한적이다. 남북 분단으로 사실상 육로 물류망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에너지 빈국으로 원유와 가스 수입 의존도가 높다.
이달 초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내놓은 ‘세계경제 포커스-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 의존 배경과 과제’에 따르면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지난 10년간 감소하는 양상이나, 여전히 70%대를 웃돈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지만, 지리적 근접성과 국내 정유 설비와의 적합성, 러-우 전쟁 이후 중동산 원유 접근성 확대 등으로 중동 의존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 탓에 우선 단기적으로는 원유와 LNG 등 핵심 연료 재고를 확대해 충격 흡수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KIEP는 “미-이란 전쟁에 따른 공급 차질에는 비용 부담을 감수하더라고 접근 가능한 원유를 최대한 확보하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기존 중동 내 원유 도입선의 한국 우선 공급, 러시아 원유 수입에 대한 서방 제재 유예, 호르무즈 통항에 대한 이란의 보장 등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기적으로는 일본·동남아 등과 함께 아시아 차원의 물류 위기 대응 네트워크를 구축도 고민해야 한다. 호주와 앙골라, 말레이시아 등 한국산 석유제품 수입 의존도가 높은 산유국을 활용해 원유 확보 협상력을 높이는 것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KIEP는 “특히 호주나 미국 등은 특정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접근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북극항로 같은 대체 루트 검토도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전략적 과제가 되고 있다.
KIEP는 “에너지 믹스 전환을 통한 원유 의존도를 낮추는 게 필요하다”며 “동시에 정유설비의 유연성을 높여 다양한 유종에도 수익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공정 구조를 보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