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퍼펙트스톰-정책] 트럼프, 이란 불태운 진짜 이유는 ‘검은 황금’
입력 2026.04.09 07:00
수정 2026.04.09 07:00
중동 전쟁, 결국은 석유 패권 경쟁
종교·민족 갈등 명분 뒤에 ‘에너지’
배럴당 10달러 상승 시 GDP 0.3%p↓
에너지·물류망 다변화 필요성 재확인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량이 급격히 감소한 가운데 한 유조선이 술탄 카부스 항구에 정박해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중동 전쟁이 40일째를 맞으면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을 합의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이미 우리 정치와 경제, 산업, 문화 전반은 고유가·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4고(高) 위기를 맞으며 충격에 휩싸였다. 중동 전쟁이 현재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종전 이후에도 한반도에 머무를 강력한 중동발 태풍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최근 중동 전쟁이 길어지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과 물류 체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에너지 자립이 국가의 존립과 직결하고, 지구 반대편 국가도 물류망 하나로 경제가 휘청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미국의 이란 공격은 단순한 종교·지정학 갈등을 넘어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석유 패권 경쟁의 본질을 드러냈다. 종교·민족 갈등이라는 명분 뒤에 에너지 공급망을 둘러싼 전략적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국가 경제가 단일 원자재(석유)에 의존할 때 위기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정확히 보여줬다. 석유가 단순 연료로서의 가치를 넘어 나프타, 플라스틱과 같은 원자재까지 석유 의존도가 높을수록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이 ‘탈석탄 에너지’로의 전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고 분석한다. 화석연료에 매몰된 에너지 구조는 중동과 같은 특정 지역 정세 변화에 국가 운명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신재생에너지로의 국가 정책 전환을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로 인식하고 관련 예산과 기반 시설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태양광, 풍력, 수소 에너지 등 자립 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것은 환경 보호를 넘어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는 핵심 전략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보고서에 따르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국가일수록 외부의 에너지 가격 변동성에서 자유롭다.
모건스탠리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체탄 아야 연구팀은 이번 중동 전쟁 발발 이후 “석유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유가 변동성에 더 민감하다”며 “아시아 석유·가스 무역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1% 수준인데 유가가 배럴당 10달러씩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아시아의 GDP 성장률은 0.2~0.3%p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아시아 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가장 큰 위험에 직면했다고 판단했다. 한국은 석유·가스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반면, 2023년 기준 재생에너지 비중은 9%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33%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일본 또한 주요 7개국(G7) 중 화석연료 의존도가 87%로 가장 높다. 참고로 아시아 국가 화석연료 의존도는 한국 81%, 중국 20%, 인도 35% 수준이다.
정부도 탈화석연료 정책에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6일 국무회의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체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에너지 대전환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를 보급하고 석탄발전소는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현재 가스 중심 열에너지는 재생열로 전환한다. 녹색산업 육성을 위해 태양광 셀, 모듈, 풍력 터빈 등 산업에 세제 지원을 추진한다.
2028년까지 30만t 규모 수소환원제철 실증 설비를 완공하고,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고도화한다. 이 밖에도 신차 보급량 40%를 전기·수소차로 채우고, 건설기계와 농기계, 선박 등의 전기화도 속도를 높인다.
중동전쟁 이후 유가가 치솟는 가운데 지난 6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가격표에 경유 가격과 휘발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뉴시스
중동 단일 물류망, 세계 경제 아킬레스건
에너지 대전환과 함께 물류망 다변화도 시급하다. 에너지 대전환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 전까지는 여전히 석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이번 전쟁에서 증명하듯 세계 원유 해상 수송의 핵심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과 지중해·유럽으로 이어지는 수에즈 운하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 ‘생명선’이다.
두 해역이 봉쇄되거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국제 유가는 급등하고 물류비는 폭증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중동으로부터 정확히는 석유로부터 멀어져야 하는 이유다.
태양광·풍력·수소 등 탈탄소 에너지 확대는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 과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이야말로 전쟁과 분쟁의 파고 속에서 경제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란 게 전문가들 공통 의견이다.
김수동 산업연구원(KIET)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글로벌 통상 환경의 급변 속에서 한국은 첨단 기술 산업의 육성과 공급망 안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기술혁신, 공급망 다변화, 동맹국과 협력 강화를 통해 글로벌 경제 질서 재편에 적극 대응하고, 이를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해상 물류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신재생에너지 시대에도 해상 운송의 역할은 줄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소·암모니아 등 차세대 연료와 핵심 광물, 해상 풍력 설비 등 새로운 물동량이 급증하며 해상 물류는 ‘에너지 전환의 동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항만 인프라와 친환경 선박, 해상 운송 안전 체계 구축이 에너지 정책의 핵심 축으로 부상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선임연구위원은 “공급망이 변화하면 항만·공항·철도·도로를 잇는 물류 네트워크가 함께 재편된다”며 “우리 기업들이 주요 물류거점 확보를 통해 물류비를 낮추고 복잡해진 국제물류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