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퍼펙트스톰-산업] 고환율의 두 얼굴…불안감 커지는 '수출 기둥' 자동차
입력 2026.04.08 10:00
수정 2026.04.08 15:10
중동사태에 치솟는 환율…장중 1530원까지 돌파
국제 유가 배럴당 100달러 넘어…에너지·물가 상승 부추겨
단기적으론 '환차익' 예상…1분기 수익성 개선 전망
장기화시 원가 상승·자동차 수요 감소…불안감 커져
ⓒAI 이미지
중동 전쟁이 40일을 넘기면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을 합의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이미 우리 정치와 경제, 산업, 문화 전반은 고유가·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4고(高) 위기를 맞으며 충격에 휩싸였다. 중동 전쟁이 현재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종전 이후에도 한반도에 머무를 강력한 중동발 태풍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길어지면서 고유가·고물가·고환율이 동시에 압박하는 ‘퍼펙트 스톰’이 현실화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 업계에는 호재처럼 보이지만, 장기화시 원가 상승과 자동차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업계에선 불안감이 짙어지는 분위기다.
중동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이 열흘 넘게 1500원 선을 웃돌고 있다. 전쟁 발발 이후 1400원대 박스권에 머물던 원·달러 환율은지난달 31일 기준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장중 1530원까지 돌파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협상 시한이 다가오며 관망하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환율도 소폭 하락하긴 했으나, 여전히 불확실성은 큰 상황이다.지난 7일 기준 서울 외환시장에서 주간거래 종가는 전날보다 2.1원 내린 1504.2원으로 집계됐다.
고환율은 통상 국내 경제에는 부담 요인이지만, 수출 비중이 높은 완성차 업계에는 그간 호재로 분류돼왔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산할 때 이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사이 역대 최대 실적을 매분기 갈아치웠던 현대차·기아의 경우 미국 시장으로의 수출량 확대와 고환율이 맞물리면서 수익이 극대화됐다.
실제 현대차는 지난해 1분기 평균 환율이 1450원대였던 당시 약 2조587억원 규모의 환율 효과를 거뒀다. 같은 기간 기아도 3640억원의 환차익을 기록했다. 현대차·기아는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영업이익이 약 2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에서도 올 1분기 실적에 환율 효과가 반영돼 수익 개선에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가 지난해 25%에서 올해 15%로 하향 조정됐고, 주요 시장에서 하이브리드 등 '돈 되는 차' 중심의 판매가 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NH투자증권은 "1분기 관세 부담은 25%에서 15%로 관세 규모가 축소되며 1조원 수준으로 추정되며, 1분기 평균 환율은 최근 5년 내 가장 높았던 지난해 1분기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며 "우호적인 환율 영향과 함께 SUV, 제네시스 등 고부가가치 제품과 하이브리드 비중 확대 기조가 지속되는 점은 수익성 개선에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 전용부두에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 ⓒ뉴시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자 업계 안쪽에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고환율 뿐 아니라 고유가와 물류비 상승이 이어지면 해상운임, 에너지가격, 원자재 가격 등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어서다. 환율 효과로 일부 상쇄될 수는 있지만, 물류비와 원자재 비용이 같이 오르면 결국 남는 게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한 자동차 부품 업계 관계자는 "고환율, 고유가 기조가 지속된다면 오히려 수출업체에는 비용 부담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이라며 "수출 비용에는 해상 운임, 에너지 가격, 원자재 가격 등이 모두 포함된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유가는 계속 치솟을 수 밖에 없고, 결국 수출 업체들은 자동차 한 대를 만들고 운송하는 전 과정에서 비용이 전방위적으로 상승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가 상승은 곧 자동차 연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사태 장기화시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특히 자동차처럼 가격이 큰 내구재는 가장 먼저 소비를 미루는 대상이 된다. '차를 바꿀 때가 됐어도, 기름값이 올랐으니 조금 더 타자'는 심리가 확산된다는 것이다.
‘단기 호재, 중장기 악재’라는 이중적인 신호 속에서 자동차 업체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물류비 상승, 원자재 가격 불안, 글로벌 수요 둔화가 한꺼번에 겹치며 향후 실적 변동성도 크게 확대될 수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캐즘(일시적 정체기)에 부딪힌 전기차 수요를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자동차 업체들의 주요 수익원은 전기차가 아닌 내연기관차"라며 "유가 상승이 곧바로 전기차 수요 증가로 이어지기보다는, 전체 자동차 수요 자체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