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퍼펙트스톰-유통] 나프타 쇼크에 경기 불황 '겹악재'…벼랑 끝 몰린 소상공인들
입력 2026.04.08 10:00
수정 2026.04.08 10:00
포장재료값 폭등에 직접 발품 팔아
"중동에만 의지 말고 대안 찾아야"
정부 5월 나프타, 4월 확보 총력전
전문가 "추경에 지원방안 포함돼야"
7일 서울 중구 방산시장 내 한 포장용품 제작 업체에서 자영업자들이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용기를 보고 있다. ⓒ데일리안 김찬주 기자
중동 전쟁이 40일을 넘기면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을 합의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이미 우리 정치와 경제, 산업 전반은 고물가·고유가·고금리 3고(高) 위기를 맞으며 충격에 휩싸였다. 중동 전쟁이 현재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종전 이후에도 한반도에 머무를 강력한 중동발 태풍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경기 불황에 원재료·부재료 가격 상승을 감당하지 못해 폐업할 예정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정세 불안의 여파가 영세한 자영업 현장을 강타했다. 중동 전쟁으로 플라스틱 핵심 원료인 나프타(Naphtha) 수급이 불안정해지자 포장용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값이 폭등한데다 수급마저 원활하지 않아서다.
설상가상 소상공인들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경기 불황까지 겹친 '이중고'에 직면했다. 폭등한 포장재 가격을 제품에 반영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다시 겪는 것 같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7일 데일리안이 서울 중구 광장시장과 방산시장 등 현장에서 만난 소상공인들은 이미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고 토로했다.
중동 전쟁 사태 장기화로 국제 원·부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 가중에 더해 소비 심리까지 위축되자 영업 지속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린 것이다.
이날 방산시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용기 업장 앞을 둘러 보던 김삼석(71세·남) 씨를 만났다. 이곳에서 50여년 간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는 "국밥집 하는 아들 대신 포장용기를 구매하러 나왔는데 경기 불황에 원재료값 상승을 감당하지 못해 곧 폐업한다"며 "코로나19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광장시장에서 만난 테이크아웃 전문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는 30대 여성은 "전쟁 발생 전엔 발주만 넣으면 알아서 배송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제 가격이 너무 올라 시장에 직접 발품 팔러 나왔다"며 "하지만 그마저도 원하는 만큼 살 수 없고, 가격도 어제보다 오늘이 더 비싼 탓에 많은 양을 구매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7일 서울 중구 방산시장 내 한 포장용품 제작 업체에 일회용 포장용기들이 진열돼 있다. ⓒ데일리안 김찬주 기자
나프타는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 등 플라스틱의 기초 원료로, 포장용기 뿐 아니라 식품 포장 비닐과 일회용품 전반에 쓰이는 필수 소재다.
미국·이란 전쟁 장기화로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사실상 막히면서 국내 수입 나프타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중동산 공급이 급감했고, 이는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기준 나프타와 에틸렌 가격은 전월 말 대비 각각 83.0%, 109.6% 상승했다.
이 같은 원재료 가격 상승은 곧장 플라스틱 용기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고, 인상분은 소상공인들에 고스란히 전가됐다. 배달과 포장 비중이 높은 음식점일수록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양국 간 갈등 격화로 초래된 '나프타 쇼크'는 요식업 뿐만 아니라 포장용기 판매업주들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
방산시장에서 비닐·포장재를 제작·판매하는 박모씨는 "나프타 공급이 안 되니 공장에서 물건이 안 나오고, 우리도 팔 물건이 없다"며 "물건을 떼 와서 팔아야 하는데 지난 1일 가격이 20% 올랐고, 오는 15일에도 또 20% 이상 오른다고 한다.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정부와 언론이 '비닐·포장용기 사재기'를 언급하는 데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이들이 자영업자들의 불안감을 조명해 소상공인들로부터 가수요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란 전쟁 종료 이후에도 이 같은 수급 불안정이 지속될 가능성에 높은 만큼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7일 서울 중구 광장시장과 방산시장 사잇 골목에 한 비닐 포장용품 제작 업체. ⓒ데일리안 김찬주 기자
광장시장에서 만난 비닐포장 제작 업주 김계준(60세·남) 씨는 "언론에서 '나프타 수급 문제로 소상공인이 힘들다'는 내용만 부각하니까 연결된 모든 사람들이 더 힘들어 지는 것"이라며 "적어도 언론이라도 정부에 불확실성 해결 방안을 촉구하거나 중동 외 타국에서 나프타 수급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라도 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전쟁이 끝나더라도 바로 해결 되겠느냐"고 분개했다.
중동 전쟁의 여파는 비단 외식업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주말 부산 가덕도 대항항 인근에서 만난 낚시용품 판매업자 서순호(62세·남) 씨는 "날씨가 따뜻해져 낚시객들이 많이 찾는 시기엔 미끼·밑밥을 담는 플라스틱과 비닐이 필수"라고 했다.
이어 "3주 전만 해도 비닐 1000장 한 묶음에 1만4000원 하던 게 지난 주 2만2000원으로 올라 주문을 못했다. 손님들에게 비닐이 없다고 하니 '이걸 어디에 담아가냐'는 불만이 나오지만,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 ⓒ산업통상자원부
업계는 국회가 이번 추가경정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중동 전쟁으로 비롯된 소상공인 피해에 따른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금 지급' 및 '경영 안정 바우처'에 포장재 가격 인상분 반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 전문위원은 "소상공인들이 급등한 비닐·플라스틱 가격을 소비자가에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고, 경기 불황까지 겹쳐 그야말로 진퇴양난을 겪고 있다"며 "정부에서 비상 경제 시국에 맞춰, 특히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에 대한 비상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컨대 플라스틱 포장재 인상분 지원금을 신설한다든지, 하다못해 경영 안정 바우처에 포장재 인상분을 추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국회 심의 과정에서 이번 추가경정예산안에 소상공인 관련 대안이 반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대책 강구에 나섰다. 5월 나프타 수급 위기를 막기 위해 4월 중 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양기욱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이날 일일 브리핑에서 "추경을 통해 예산이 편성되면 차액지원과 코트라 등 통상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업들과 나프타 확보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