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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 낮춘 총리실 "국회 존중하지만, '재의요구' 이유는…"

김희정 기자 (hjkim0510@dailian.co.kr)
입력 2024.12.20 00:10
수정 2024.12.20 00:10

한덕수 대행, 양곡관리법 등 6개 법안 재의요구

방기선 "국회서 다시 한번 의논해 달라는 의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국무총리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권한대행으로서 첫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한 권한대행은 양곡관리법 등 6개 쟁점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자세를 바짝 낮췄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거부권의 문제가 아니고, 국회에서 다시 한번 의논을 좀 해주십사 하는 의미에서 재의요구를 한 것"이라고 호소했다.


6개 법안 왜 거부권 사용했나


한 대행은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농업 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 가격안정법·농업재해 대책법·농업재해 보험법)과 국회증언 감정법·국회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를 했다.


한 대행은 모두발언에서 먼저 "국가적으로 매우 엄중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이 책임있는 정부의 자세인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고민과 숙고를 거듭했다"며 "이 법안들에 영향을 받는 많은 국민들과 기업, 관계부처의 의견도 어떠한 편견 없이 경청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과 입법 취지는 최대한 존중돼야 하지만 정부가 불가피하게 재의요구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국회와 국민께 소상히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고 했다.


한 대행은 농업 4법 개정안과 관련해 "농업농촌의 발전과 농업인들의 소득을 보장하고자 하는 국회의 입법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한다"며 "다만 이 법들이 시행되면 시장기능을 왜곡해 쌀 등 특정 품목의 공급과잉이 우려되며 막대한 재정부담을 초래할 것이고, 재난피해 지원 및 보험의 기본 원칙과도 맞지 않아 상당한 논란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양곡관리법은 쌀값이 평년보다 하락하면 농협이 시장 수요보다 많이 공급되는 쌀을 의무적으로 사들이는 내용이 골자다. 농어업재해대책법은 농민이 재해로 인해 제대로 수확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농사에 들어간 비용을 정부가 보상해 주는 내용이며, 농어업재해보험법은 농민이 자연재해로 농작물 피해를 보아 보험금을 받는 경우 보험사 보험료 할증을 금지한다.


한 대행은 특히 양곡관리법에 대해선 "지난 21대 국회에서 정부가 이미 한 차례 재의요구권을 행사했고, 국회 재의결을 통해 부결되어 폐기된 바 있다"며 "이 개정안이 시행되면 고질적인 쌀 공급과잉 구조를 고착화해 쌀값 하락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쌀 생산 확대로 시장 기능 작동이 곤란해져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막대한 재정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수산물 가격안정제에 대해서도 양곡법과 같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했다. 결국 농업 4법이 시행되면 정부에 과도한 재정부담이 발생하고, 미래의 농업과 농촌을 위한 재원배분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한 대행은 "농산물 가격안정이 시행될 경우 농산물 생산이 가격안정제 대상 품목으로 집중돼 농산물 수급 및 가격이 매우 불안정해질 것"이라며 "시장을 왜곡하는 농산물 가격지지 중심에서 농가 소득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농업정책을 전환하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는 접근"이라고 했다.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은 국회가 서류제출·증인과 참고인 출석 요구 등을 통해 개인 정보나 영업기밀을 요구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국회법 개정안은 예산안 부수 법안 자동 부의 제도를 없애는 것이다.


한 대행은 국회증언감정법에 대해 "어떠한 이유로도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 등에 거부할 수 없도록 해 헌법상 권력분립원칙에 반해 개인정보결정권 등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며 "기업 현장에서도 핵심 기술과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가 헌법에서 정한 예산안 의결기한 12월 2일에 구속받지 않고 예산안 심사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서 원활한 예산집행을 위해 국회가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헌법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덕수·방기선, 민주당 향해 거듭 호소


더불어민주당은 거부권을 사용한 한 대행을 향해 "탄핵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 대행과 방기선 실장은 국회를 향해 '법'과 '미래'를 강조하면서, 국회로 돌아간 이 6개의 법안들에 대해 다시 한번 논의해달라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한 대행은 "어느 때보다 정부와 여야 간 협치가 절실한 상황에서 국회에 6개 법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하게 돼 마음이 매우 무겁다"면서도 "정부는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있는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방 실장은 "그동안 언론에서는 거부권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오늘은 사실 거부권의 문제가 아니고 정말 다시 한 번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어느 것이 가장 옳을 것이냐 라는 의미에서 국회에 다시 한 번 좀 의논을 해주십사 하는 의미에서 재의요구를 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실 정부로서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의결을 해 오 것에 대해서 존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면서도 "여러 가지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충분히 존중하지만, 여러 가지 검토한 결과 특히 농업 관련 4법 같은 경우에는 시장 경제의 원리라든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좀 부적절한 측면들이 있다라는 측면에서 재의요구를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한편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2004년 고건 전 총리 이후 두 번째다. 국회로 돌아가는 6개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지 못하면 폐기된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한 권한대행을 탄핵하겠다'는 민주당 주장에 대해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의 재의요구권 행사가 탄핵 사유가 된다는 것은 어느 헌법과 법률에 의한 판단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희정 기자 (hjkim051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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