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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철강 쓰나미가 몰려온다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4.08.25 07:07
수정 2024.08.25 09:17

부동산 경기 침체·내수 부진 장기화로 중국 철강 수요 급감

中 항구에 전년 대비 28% 많은 1억t 이상 철광석 재고 쌓여

세계 최대 철강업체 바오우, 위기 극복 위해 긴축 지침 하달

세계 각국, 中 저가공세에 맞서 관세인상 등 대책 마련 나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미 무역대표부(USTR)에 중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를 3배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사진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16일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열린 한 행사장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중국발(發) ‘철강 덤핑 쓰나미’가 몰려온다.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인 중국이 부동산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이라는 악재가 겹쳐 철강 수요가 급감하는 바람에 남아도는 철강을 헐값에 해외 수출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철광석 가격은 곤두박질치고 세계 주요 철강 기업들이 고사 위기에 몰리는 등 글로벌 철강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침체로 철강 수요가 감소하면서 철광석 가격이 올 들어 3분의 1 이상 급락하는 등 2년래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18일 보도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철광석 선물 가격은 18일 한때 1t당 96.85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올해 1월 t당 140달러가 넘던 것이 이제 생산 손익분기점으로 볼 수 있는 100달러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올 들어 낙폭만 30% 수준에 이른다.


원자재 정보업체 아거스(Argus)에 따르면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로 수출되는 철광석 가격은 t당 92.2달러다. 2022년 11월 이후 최저치다. 이로써 각국 증시에서 호주 BHP그룹과 포테스큐, 영국 리오틴토, 브라질 발레 등 세계 4대 철광석 업체들의 시가총액 1000억 달러(약 134조원)가량 사라졌다.


중국 업체들이 철강 제품을 저가에 해외로 내다파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수요가 부진해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부동산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의 장기화로 중국 건설·제조업체들의 철강 소비는 급감했다. 철강이 건축 구조물과 선박, 차량 등 제작에 쓰이는 만큼 하강 국면에 진입한 중국의 경기 동향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후베이성에 있는 바오우 어저우 공장 ⓒ 로이터/연합뉴스

철강 전문 정보업체 칼라니시코모디티에 따르면 중국 내 철강 수요는 2020년 이후 10% 이상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철강 생산은 연 10억 5000만t이라는 기록적인 수준까지 급증한 이후 지금도 연간 10억t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더군다나 중국 부동산 시장의 지속적인 침체는 우려를 가중시킨다. 중국에서는 2년 간 주택착공이 10% 이상 줄더니 올해 상반기에는 25%가 감소했다.


중국 철강 산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5년 증시 대폭락 사태 당시에도 골이 깊은 침체를 겪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부양책을 통해 경기 침체를 타개하려고 노력했으나 회복까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의 제철소들도 건설용 철강 공급 과잉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중국 최대 철강 기업이자 생산량 기준 세계 1위 업체인 바오우(寶武)철강이 중국 철강 산업이 심각한 침체 국면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내에서는 수요 부진으로 어려움이 커진 데다 해외에서는 주요국들로부터 과잉생산 및 시장왜곡 비판을 받으며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상황을 털어놓은 것이다.


바오우철강은 앞서 14일 후왕밍(胡望明) 회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위기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길고 더 차가우며,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길고 혹독한 겨울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현금을 비축하는 것이 수익을 내는 것보다 중요하다”며 직원들에게 긴축 지침을 강조했다.


칠레 CAP그룹은 내달 15일부터 탈카우아노에 있는 우아치파토 제철소를 폐쇄하기로 했다. 사진은 CAP그룹 우아치파토 제철소 내 철강 제품. ⓒ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철강 전문매체 스틸홈에 따르면 중국 항구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8% 늘어난 1억 540만t의 철광석 재고가 쌓여있다. 지난달 중국 내수 철근 가격은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토지 매입부터 건설까지의 시간을 감안할 때 앞으로 12개월 동안 부동산 부문의 철강 수요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금속 데이터 제공업체 상하이유사이왕(上海有色網·SMM)의 야오신잉(姚新穎) 철강 담당 이사는 철광석 가격이 t당 90달러까지 급락할 수 있다고 비관론을 내놨다. 비벡 다르 커먼웰스은행 광업·에너지 연구팀장도 “시장에서는 철광석 가격이 당분간 t당 100달러를 넘지 못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발 철강 쓰나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세계 각국들은 중국 정부 주도의 과잉 생산 정책으로 인해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고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저가 중국산 철강과의 경쟁에서 버티지 못한 각국 제철소들은 폐업 수순을 밟거나 잠정 휴업에 들어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칠레 철강업체 CAP그룹은 탈카우아노에 있는 우아치파토 제철소를 내달 15일부터 폐쇄하기로 했다. CAP그룹은 지난 2월 처음으로 폐쇄계획을 발표했다. 다급해진 칠레 당국이 제철소 폐쇄를 막기 위해 2개월 뒤 중국산 철강에 최고 33.5% 잠정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 자료: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상하이강롄(上海鋼聯)

이에 힘입어 CAP그룹도 제철소를 계속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달 초 다시 폐쇄로 가닥을 잡았다. 관세를 부과해도 중국산 저가 철강과 경쟁했을 때 수익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CAP그룹은 지난 2년 동안 중국산 제품 유입으로 5억 달러 이상 손실을 봤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제철소에서 일하는 직원 2500명과 지역 주민 2만여명의 생계가 어려워졌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독일 철강 제조업체 잘츠기터AG는 올해 상반기 1860만 유로(약 276억 3500만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1억 6200만 유로 순이익에서 적자 전환한 것이다. 군나르 그로블러 잘츠기터AG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과잉생산을 원인으로 지목하며 “지난 수십 년을 통틀어 올해가 독일 철강 산업에서 가장 어려운 해”라고 털어놨다. 유럽 최대 철강회사 아르셀로미탈 역시 “중국의 철강 수출 증가로 글로벌 시장이 지속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며 비판의 화살을 중국으로 돌렸다.


특히 호주 재무부는 중국산 철강 저가 수출 영향으로 국제 철광석 가격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호주 예산에 20억 달러(약 2조 6700억원) 규모의 ‘구멍’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짐 차머스 호주 재무장관은 "중국 경제의 부진과 철광석 가격 하락은 우리가 세계 경제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며 "이런 상황이 호주 경제와 예산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매우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호주 철광석의 85%가량 중국으로 수출됐다.


이에 미국·유럽연합(EU)·멕시코 등이 일찌감치 관세 카드로 맞대응한데 이어 브라질과 칠레,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들도 뒤늦게 관세를 인상하거나 검토 중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도 철강을 비롯한 중국산 제품에 대해 반덤핑 조사에 들어갔다.


ⓒ 자료: 중국 해관총서, 상하이강롄(上海鋼聯)

멕시코 정부는 지난해 수입 철강 관세를 기습적으로 인상했다. 멕시코 경제부는 2025년 7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수입 철강에 대해 5∼25%의 임시 관세를 부과하는 안을 발표했는데, 저가 중국산 제품을 겨냥한 조치로 해석됐다. 라틴아메리카 철강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역내 철강 시장에서의 중국산 점유율은 2000년 15%대에서 지난해 54%로 급증했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도 중국산 철강의 저가 공세에 보복관세로 맞대응하고 있다. 브라질은 올해 철강 부문 관세율을 인상했다. 브라질의 지난해 중국산 철강 수입은 전년보다 50% 급증한 반면, 국내 생산은 6.5% 감소해 자국 업계 타격이 현실화됐다. 브라질 정부는 지난달부터 일부 철강 제품을 대상으로 관세를 기존 9~12.6%에서 25%로 전격 인상했다. 지난해 수입량이 2020~2022년 평균 대비 30% 이상 증가한 11개 제품군이 인상 대상이다.


칠레도 지난 4월 중국산 철강의 덤핑 방지 목적으로 최대 33.5%의 잠정 관세를 매긴다고 밝혔다. 콜롬비아도 자국 철강생산 감소 원인이 중국의 저가 철강 수입으로 판단해 관세를 기존 5%에서 20∼25%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콜롬비아 일간 라레푸블리카는 전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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