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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하라는데…국가유공자 우선주차는 '엇박행정' [데일리안이 간다 76]

허찬영 기자 (hcy@dailian.co.kr)
입력 2024.08.23 02:57
수정 2024.08.23 10:07

국가유공자 일상 속 예우 강화 위해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획 조성

고령 운전자 사고 많아지며 면허 반납 요구하는 상황에 역행이란 지적

시민 "보훈 수당 증액 등 비운전자도 혜택받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

전문가 "국가유공자 예우는 당연히 필요…실효성 있는 제도에 예산 투입해야"

강동구 천호1동공영주차장의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획 조성 모습.ⓒ강동구 제공

서울 강동구를 비롯해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국가유공자의 편의를 높이고 일상 속 예우 강화를 위해 관내 공영주차장에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획을 조성하고 있다. 다만 최근 고령 운전자의 사고 사례가 늘면서 면허 반납을 유도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고령인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주차 공간 조성은 모순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훈전문가들은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획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국가유공자들이 보다 보편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책에 행정력과 예산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근 강동구는 '서울특별시 강동구 주차장 설치 및 관리 조례'를 개정하고 '국가유공자 등 우선주차구획 설치'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강일동·명일동·암사1동·천호1동·천호3동·천호유수지·안말 공영주차장 등 8곳에 국가유공자 우전주차구획 8면을 조성했다. 강동구 외에 경기 광명, 강원 평창, 대전, 충남 서산 등도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획을 조성했거나 할 계획이다.


구에 따르면 해당 구역에 주차하기 위해서는 운전자나 탑승자는 국가보훈부장관이 발행하는 신분증서 또는 확인서를 소지해야 한다.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획 조성을 두고 일각에서는 시대를 역행하는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각 지자체에서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을 위해 힘쓰고 있는 상황에서 우선주차구획 조성은 고령자가 대부분인 국가유공자들이 오히려 운전을 하게끔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부

실제로 국가보훈부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7월 기준 국가유공자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참전유공자(6·25 전쟁, 월남전)의 가장 낮은 연령은 65~69세 사이였다. 가장 많은 연령을 차지한 75~79세는 11만2782명으로 20만8567명인 참전유공자 전체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서울시만 놓고 보더라도 참전 유공자는 4만2000여명으로 평균 연령은 약 80세다.


또 국가유공자 중 고령이 아닌 이들의 대부분은 상이군경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부상을 입어 전역한 군인·경찰관 등으로 장애 등급 판정을 받아 장애인 주차구역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역의 존재가 무색하다.


이에 구 관계자는 "국가유공자를 존중하는 보훈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전용 주차구역을 조성했다"며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취지는 공감한다. 하지만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획 조성이 고령 운전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획이 조성된 서울 강동구 천호3동 공영주차장.ⓒ데일리안 허찬영 기자

22일 데일리안은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획이 만들어진 강동구 천호3동 공영주차장을 찾았다. 이곳에는 1면의 우선주차구역이 조성됐으며 출입구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옆 기둥에 위치해 있었다. 주차 칸의 크기는 장애인 주차 칸이 아닌 일반 주차 칸과 동일했다.


이날 데일리안은 국가유공자를 위한 우선주차구획 조성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공영주차장 근처에서 만난 시민 박모(41)씨는 "국가유공자를 위한 전용 주차구역이 있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보여주기식 예우 아닌가 싶다"며 "이런 것보다는 국가유공자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복지가 훨씬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민 정모(47)씨는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국가유공자 대부분이 65세 이상일 텐데 그 중 운전하는 비율은 높지 않을 것이다. 또 최근 고령운전자 사고가 늘면서 면허를 반납하자는 추세인데 이런 복지는 무의미하다고 본다"며 "국가유공자 보훈 수당 등이 적다고 뉴스에 자주 나오더라. 차라리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천호3동 공영주차장에 있는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역의 모습.ⓒ데일리안 허찬영 기자

안종민 국가보훈행정사무소 대표행정사는 "현재 우리나의 국가유공자 분포도를 보면 고령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최근 고령 운전자에 대한 불신이 높은 점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하지만 유공자 보철용 차량을 보면 고령의 국가유공자는 조수석에 타고 운전은 가족들이 대신 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에 대한 예우와 편의 증진 등을 위해서라도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획 조성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 대표행정사는 "하지만 주차 공간 개설보다는 국가유공자들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대해 행정력과 예산을 집중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며 "국가유공자 중 비교적 소외받고 있는 7급 유공자에 대한 수당을 올려야 한다. 또 단순한 진료만 보는 1차 병원이 아닌 유공자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진료 과목이 있는 보훈 병원을 늘리고 이들 배우자에 대한 혜택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열 한국보훈포럼 회장(영남이공대 교수)은 "보훈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은 보편화돼 있다. 보훈은 은혜에 보답하는 국가 책무적 의미로 국민들의 존경심 등 정신적 예우 차원에서도 필요한 제도"라며 "국가보훈부가 62년 만에 국무위원 장관으로 승격됐으나 대통령실 보훈비서관은 아직 신설되지 않아 이 점이 조속히 필요하다. 보훈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 유공자에게 각종 연금 수당 예우 등 필요한 예산을 적재적소에 지원해 한치의 소홀함 없도록 노후를 편안하게 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허찬영 기자 (hcy@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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