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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버린 노소영의 '1조3808억', 노태우 회고록엔… [데스크 칼럼]

지봉철 기자 (Janus@dailian.co.kr)
입력 2024.07.05 11:16
수정 2024.07.05 12:39

노태우 前 대통령 "SK 이동통신 특혜 없었다"…생전 회고록 재부각

노소영, 이혼소송서 "SK 사돈 특혜 있었다"…父 회고록 전면 부정

SK "특혜시비 일자 이통사업권 반납…공개매각때 참여해 텔레콤 키워"

노 전 대통령 회고록 내용 재산분할액 등에 영향…상고심 쟁점

노태우 전 대통령 회고록ⓒ조선뉴스프레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부에 의해 '절판'된 책의 몸값이 치솟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고 거래 가격이 20배 안팎으로 치솟는가 하면,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는 품귀현상도 목격된다. 1조3800억원대의 재산분할을 명한 법원의 과도한 잣대가 부른 씁쓸한 초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태우 전(前) 대통령의 생전 회고록이 바로 그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옥중에서 육필로 작성했던 대학노트 30여권의 메모를 바탕으로 2011년 1112쪽에 이르는 회고록을 출간한 바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뿐만 아니라, 노소영 관장, 노재헌 변호사 등 가족들도 출간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고록에서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 당시 대선 후보에게 3000억원을 준 사실을 인정하는 등 정치자금의 존재와 관련 인물, 소회 등에 대해 솔직하게 밝혀 출간 당시 상당히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관장 이혼소송에서 재판부가 6공 특혜를 판결의 주요 근거로 삼으면서 출간된 지 10년도 더 지난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다시 조명 받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청와대나 내가 개입한 일은 절대 없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 회고록 中)


2심은 SK(당시 선경)가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무형적 기여가 작용했다고 결론내렸다. 노 관장 측은 소송에서 SK가 청와대 후광을 이용해 경쟁사를 배제시켰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최태원 회장의 무선통신 청와대 시연으로 이동통신사업 논의가 촉발되었고, 이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4대 그룹의 통신사업 수허가권을 제한한 결과 SK그룹이 이동통신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인정했다.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엔 노 관장이 주장했던 내용이 그대로 담겨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SK에 대한 특혜나 지원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되레 노 전 대통령은 "나와 선경(SK)의 관계 때문에 정치 문제로 비화해 결국 선경이 사업권을 반납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다음 정권에 가서 결국 선경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그 당시 정치 논리 때문에 선경이 피해를 봤고, 자신이 아닌 김영삼 정부 때 한국이동통신이 인수된 사실을 밝힌 셈이다. 노 관장의 주장과 반대되는 지점이다.


더욱이 회고록에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청와대는 일절 관여하지 말라는 원칙을 정해주었으며, 실제로 청와대나 본인의 개입은 없었다. 송언종 체신부 장관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실무진들이 청문회에라도 설 각오로 엄정하게 추진하라고 당부했다"고 밝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적 개입도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SK 측 역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그 어떤 특혜나 지원도 받은 게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SK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노태우 정부 때가 아닌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이동통신 사업을 품에 안게 됐다. 노태우 정부 시절 1992년 8월 제2이동통신 민간사업자 선정 경쟁에서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대표 등이 "현직 대통령 사돈 기업에 사업권을 부여한 것은 특혜"라고 비판하자, 사업권을 일주일 만에 반납했다.


이어 SK 측은 "오해 우려가 없는 차기 정권에서 사업성을 평가받아 정당성을 인정받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 시절, 한국전기통신공사 자회사인 한국이동통신 매각 입찰에 뛰어들었다. 공정성 시비 재발을 우려해 제2이동통신 사업자 사업을 포기하고, 신규 사업권 획득보다 더 막대한 인수자금이 필요했던 한국이동통신 공개 입찰에서 지분 23%를 4721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2심 재판부가 "최태원 회장의 무선통신 청와대 시연으로 이동통신사업 논의가 촉발되었고, 이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4대 그룹의 통신사업 수허가권을 제한한 결과 SK그룹이 이동통신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한 것도 회고록에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 차원에서 4대 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을 제한"한 것으로 쓰여있다. 노 전 대통령은 4대 그룹 진출 제한이 사돈 특혜가 아닌 당시 정책 기조였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노 관장 측 주장만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노태우의 사돈이거나 사위라는 인척 관계에 있지 않은 일반적인 기업인의 경우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되거나 제1이동통신인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SK그룹이 사세를 크게 확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노태우의 존재 및 노태우의 용인 등이 배경이 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SK 측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편견과 예단에 기반해 기업의 역사와 미래를 흔드는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발하는 이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연합뉴스

결국 상고심에서는 SK㈜ 주식이 부부 공동재산으로 포함된 핵심 배경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무형 도움'의 실체에 대해 치열한 법리적 다툼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재계에선 "정경유착 비자금 유입이 기정사실로 한 것도 의아스럽지만, 비자금 유입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그룹 성장에 주도적인 기여를 했다는 판단은 너무 비약적"이라는 입장이다.


비자금이 재산분할 소송의 기초자금으로 인정받았지만 이를 비자금 조성자인 노소영 관장의 기여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300억원에서 불어난 1조3808억원을 노 관장의 돈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노 관장이 300억원 비자금 제공이나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기여를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 회고록대로 SK의 이동통신사업 진출이 아버지 관여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법원에서 인정된다면, 재산분할 대상과 분할 비율 측면에서 노 관장 측은 상당히 불리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역사적 진실은 하나다. 특히 대통령 기록물의 보존·관리가 2007년까지 법제화되지 않았던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의 회고록은 역사적 사료다. 재임 기간 밝힐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이 생생히 담겨있어 후세에게는 타산지석이 된다. 노 관장이 아버지가 쓴 회고록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지봉철 기자 (Janu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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