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의 ‘유치한’ 어른행세 습관
입력 2024.01.08 07:07
수정 2024.01.08 07:07
의전서열 들먹이며 이재명 편들기
본인은 말이 없고 민주당은 반박만
대놓고 병원 우열을 평가한 정청래
홍준표 대구시장은 아무 일에나 나서서 어른행세를 하는 ‘유치한 습관’ 좀 버려줬으면 좋겠다. 흉기 피습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현지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를 외면하고 굳이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 수술한 것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왜 대구시장이 ‘서열’을 들먹이며 끼어드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5일 페이스북에 ‘이 대표에 대한 특혜시비’를 꾸짖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의전서열 들먹이며 이재명 편들기
“제1야당 대표는 국가의전 서열상 총리급에 해당하는 8번째 서열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흉기 피습을 당했다면 본인과 가족의 의사를 존중해서 헬기로 서울 이송도 할 수 있는 문제지 그걸 두고 진영논리로 특혜 시비를 하는 것 자체가 유치하기 그지없습니다. 부산의료를 멸시했다는 논리도 가당찮습니다.”
글의 앞부분이다. ‘국가의전서열’이라니! 의전서열이 높은 사람은 의사의 판단보다 본인과 가족의 의사가 우선한다는 뜻인가? 그럴 수 있다. 다만 생사가 경각에 달렸다고 할 정도의 위급상황이라면 의료진의 판단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대표는 2일 오전 10시 27분쯤 흉기 공격을 당했다.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옮겨졌을 때가 11시 15분경, 구급 헬기에 실려 서울로 출발한 것은 오후 1시쯤이었다. 헬기가 서울 동작구 노들섬에 도착해서 서울대 병원으로 이송된 시간은 오후 3시 20분경이었다. 수술은 오후 3시 45분께 시작되었다. 사건 발생 후 5시간 18분 만이었다.
정말 심각한 부상이었다면 본인이나 가족이 5시간 넘도록 수술이 지연될 전원(轉院: 치료받던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옮김)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가 감당할 수 없는 수술을 해야 할 경우였다면야 전원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산대병원은 응급외상환자 처치 및 수술에서는 국내 최상위로 인정받고 있다. 서울대 중증외상센터보다 의료진의 수나 수술시설 및 경험에서도 앞선다고 알려졌다. 그런데도 굳이 서울로 옮겼다.
홍 시장에겐 이것이 ‘진영논리에 따른 시비’로 보이는가? 총리급(?)에 해당하는 서열이니까 헬기 이송도 할 수 있는 것이지 그걸 왜 따지느냐며 “유치하기 그지없다”라고 힐난했던데, ‘그지없다’라는 ‘끝이 없다’ ‘한이 없다’라는 뜻이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헬기 특혜가 논란의 핵심이나 본질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본인과 가족의 무모한 판단(‘위중한 상태’였음을 전제로 할 때)과 요구 △민주당의 막무가내식 정당화 △부산대 권역외상센터와 서울대 중증외상센터의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가 문제 제기의 요인이다.
구급헬기를 동원한 게 논란이 된 것은 △헬기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위급했다면 부산대병원에서 수술하는 게 옳았다, △전원을 해서 수술해도 될 상태였다면 구급헬기를 이용하지 말아야 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건 서열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진 판단과 본인·가족 및 민주당 당직자들 공인의식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사람 목숨의 가치까지 서열화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홍 시장 등 기득권층의 의식인가?
본인은 말이 없고 민주당은 반박만
홍 시장은 “부산의료를 멸시했다는 논리도 가당찮다”라고 했는데 ‘멸시’해서 그랬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까지 갔으면서도 수술과 치료를 서울대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받겠다고 우긴 것은 신뢰성에 경중을 둔 때문 아니었을까? 여러 말 할 것 없다. ‘부산대병원보다는 서울대병원이 더 미덥다. 그러니 구급 헬기로 옮겨 달라’고 요구했거나 부탁했을 것이다. ‘가당찮은’ 것은 비판자들의 지적이 아니라 환자 측 인사들, 그리고 두 대학병원 의료진의 판단이었다고 해야 옳지 않은가?
그는 비판자들에게 따졌다.
“서울수서역 버스 정류장에 가보면 오늘도 삼성병원에 가기 위해 SRT 타고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 셔틀버스 타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그건 왜 비판하지 않느냐.”
삼성병원에 가기 위해 SRT로 상경하는 환자들과 이 대표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이 대표를 거들기 위해 상경 치료 환자들까지 엮어 넣은 것은 야비한 화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 의식수준에 맞게 지방의료의 수준을 높일 생각부터 해야 한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가 서울대병원의 중증외상센터보다 수준이 낮으니 어쩔 수 없지 않았냐고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말이 옆길로 너무 많이 빠졌다. 이 대표 측이나 민주당은 의료수준 때문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는데 홍 시장은 왜 굳이 지방의료의 수준을 들먹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요즘 나이로는 어른 행세하기에 너무 이르다. 자주 정치 경력을 들먹이던데 정치하는 사람만 말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홍 시장이 정치를 하면서 그 나이에 이르렀다면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직업에 종사하며 그 시간을 채웠다. 이른바 ‘꼰대화법’의 독점권이라도 가진 양하는 태도가 일개 시민의 눈에 많이 거슬려서 하는 말이다. 집권당의 상임고문쯤 되는 사람이라면 말의 무게와 품격에도 좀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환자·가족 그리고 민주당은 이런 논란에 대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의문과 의심의 여지를 남긴 것에 대해서 국민과 지역 의료인들께 사과한다”는 말부터 하는 게 도리였다. 그런데 당사자 측은 입을 다물었고 민주당의 모모한 인사들은 변명과 반박에만 열을 올렸다.
“부상 시 대량 출혈이 있었고 부상 부위가 급소인 목이자 정치 생명이 걸린 목소리 기관인 성대 부근이었다”
“환자 보호자를 대신할 보좌진으로서 환자가 정신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가족의 간호를 받을 수 있게 병원에 요청한 것이 위법하며 윤리적으로 비난받고 사과해야 할 일인지 묻고 싶다”
대놓고 병원 우열을 평가한 정청래
“의혹이 풀리지 않으면 환자 전원과 닥터헬기 이송의 불법성에 대해서 조사 의뢰하시면 명쾌하게 밝혀질 일이다.”
민주당의 당 대표실 김지호 정무조정부실장이 5일 페이스북에 ‘조선일보와 부산시의사회는 닥터헬기 이송과 환자 전원을 왜 저에게 책임 묻고 사과 요구하시나요?’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 가운데 일부다. 논란이 커지자 삭제했다는데 어쨌든 민주당은 사과할 말은 없고 반박할 말만 많다는 입장인 듯하다. 김 부실장도 이 대표의 상태가 위중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환자가 정신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가족의 간호를 받을 수 있게 병원에 요청한 것”이라고 했다. ‘가족의 간호’는 수술 이후의 일이다. 급박한 상황에 대처하는 문제보다 ‘간호의 편의’를 우선해서 수술 병원을 지정했다는 것인가?
그는 “법대로 하라”라고 들리는 말까지 했다. 약자가 하는 말이 아니다. 강자가 약자를 비웃거나 윽박지르며 구사하는 말투다. 이게 민주당 식 문제 해결방식인가? 당의 신의와 도덕성을 지적하는데 왜 ‘조사 의뢰’하라는 말이 나오는지 황당하다.
이에 앞서 사건 당일(2일)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 대표가 피습을 당한) 목은 민감한 부분이라 후유증을 고려해 (수술을) 잘하는 곳에서 해야 할 것”이라며 “(전원은) 이 대표 가족들이 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놓고 병원의 우열을 평가한 셈 아닌가.
같은 당 장경태 최고위원은 5일 CBS라디오에 나가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각 시도마다 1개 정도 있는, 정말 아주 비상 응급 치료를 받아야 되는 곳”이라며 “오히려 여기서 이 대표가 눌러앉아서 치료받았다면, 정말 더 응급한 환자들을 방해할 수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것을 가리켜 ‘횡설수설’이라고 한다. 그럴듯한 핑계를 찾다가 말이 꼬인 것이다.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와 응급환자들을 위해서 수술 기회를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서울대병원으로 갔다는 말인 듯한데 개그로도 어설프지 않은가?
같은 당 부산시당위원장인 서은숙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의 쾌유를 기원하고 야만적 정치 테러를 규탄하는 것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의료인이 있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개탄했다. 전국 각지의 의료인이 반발하는 까닭을 성찰하기보다는 반격하기에 더 급급한 모습이다. 이 대표의 ‘당내 절대권력’ 때문인지 총선 공천 욕심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항의에 대해 진지한 해명은커녕 되레 비난하고 나서는 민주당적 정서가 한심할 뿐이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