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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직전 '기습공탁'하면 감형?…검사들 "용서를 돈으로 사나"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입력 2024.01.07 02:17
수정 2024.01.07 02:17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소속 검사들, 최근 대검찰청 논문집 '형사법의 신동향 겨울호'에 논문 게재

"피고인 형량에 공탁을 어떻게, 얼마나 반영해야 하는지 구체적 양형기준 없는 탓에 법원 혼란"

"일부 판사들, 피해자 처벌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공탁금을 피고인의 '반성의 증거'로 보고 감형"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합의 강제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져"

검찰 로고 ⓒ검찰

형사사건 가해자가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선고 직전 거액의 공탁금을 내는 이른바 '기습공탁'에 대해 현직 공판 검사들이 "'피고인이 피해자의 용서를 돈으로 살 수 있게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김해경 부장검사) 소속 손정아, 박가희, 임동민 검사는 최근 대검찰청 논문집 형사법의 신동향 겨울호에 실은 '형사공탁의 운용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형사공탁 특례제도는 지난 2022년 12월 피해자의 실질적 피해 회복을 위해 도입됐는데, 시행 1년여만에 실무현장에서 피고인들의 감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손 검사 등은 피고인의 형량에 공탁을 어떻게, 얼마나 반영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양형기준이 없는 탓에 법원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일부 판사들의 경우 피해자의 처벌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공탁금을 피고인의 '반성의 증거'로 보고 감형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같은 문제가 두드러지는 상황은 피고인이 '기습 공탁'을 시도할 때다.


변론이 모두 종결된 뒤 재판부의 선고만 남겨둔 상황에서 피고인이 기습적으로 거액을 공탁하는 경우, 피해자나 검찰의 의견을 들을 새도 없이 재판부가 공탁금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로 반영해 형을 선고한다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월 지하철에서 여성을 추행한 피고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을 선고했다.


선고기일 6일 전 피고인이 1000만원을 '기습공탁'한 것을 유리한 양형 조건으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선고 후에야 피고인이 거액을 공탁한 사실을 알게 된 검찰은 '피해자 의사 확인 없이 공탁만을 이유로 1심 판결을 파기하는 것은 형사공탁 제도 취지에 맞지 않고 판례에도 반한다'며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당 상고를 양형부당을 이유로 한 상고로 보고 '양형부당은 상고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상고기각 했다.


검사들은 이러한 기습공탁을 방치하는 현행 형사공탁 제도를 두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용서를 돈으로 살 수 있게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피고인의 배상 여부를 감형 요소로 인정하지 않는 미국·영국 사례를 언급하며 '강력범죄와 성범죄에서만큼은 형사공탁을 감형 인자로 인정해선 안된다'고 꼬집었다.


현행 기준상 강력범죄 사건에서 피고인의 형사공탁은 피해자의 '처벌불원' 표시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제"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는 게 검사들의 주장이다.


특히 "성범죄에서의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생각하는 피해자의 몸값은 딱 이 정도'라는 메시지와 함께 2차 가해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도 강조했다.


검사들은 현행 공탁제도는 법원이 피고인의 공탁 사실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고하는 방식을 채택해 피해를 키우고 있다면서 "형사공탁이 있을 경우 그 사실을 원칙적으로 피해자에게 고지함으로써 의견 제시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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