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고속도로' 질주하는 이재명, '문재인 IC'로 빠져나갈까 [이재명 체제 1년 ④]
입력 2023.08.27 12:53
수정 2023.08.27 13:01
당대표 취임 1주년 앞두고 장외집회
'흰셔츠에 노타이' 연설, 黃과 판박이
개딸들은 국회 보이콧 등 강경 주문
총선 전 제1야당 대표 행태 '기시감'
지난해 8·28 전당대회로 선출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빠르게 '황교안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총선 참패 책임론으로 야권 유력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은 물론 정치권 전면에서 사라져버린 황교안 국민의힘 전 대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아직 시간은 있다는 점에서 중도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선례를 쫓아 파멸의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은 남아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대표 취임 1주년을 이틀 앞둔 26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며 기세를 올렸다. 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 등 야4당에 노동계 등 민주당에 밀착한 시민사회단체들도 동참했다. 주최측은 장외집회 참석자를 5만 명으로 추산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규탄 범국민대회'라 명명된 이날 장외집회에서 이재명 대표는 흰 와이셔츠에 노타이 차림으로 단상에 올라 강경한 연설을 펼쳤다. 이 대표는 "일본의 패악질을 가장 선두에서 합리화시켜주고 지지한 사람이 누구냐"며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의 심부름꾼·대리인·대변인이 아니다.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것을 우리가 증명할 것"이라고 외쳤다.
이재명 대표는 전날에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장외집회를 주재하고, 집회 직후 참석 인원들과 함께 용산 대통령실까지 2시간에 걸쳐 거리 행진을 벌였다.
민주당 홈페이지에는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는 한 당원이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지역구나 관리하며 총선을 준비할 게 아니다"라며 "168명의 모든 의원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와 국민들과 함께 대규모 장외투쟁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당원은 "이러한 시국에 국회가 다 무슨 소용이냐. 선비처럼 국회에 틀어박혀 공무원마냥 일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며, 전면적인 정기국회 일정 보이콧과 장외투쟁을 압박하기도 했다.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과 당대표, 그리고 강성 지지자들의 이러한 행태는 기시감(旣視感)을 불러일으킨다는 분석이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2019년 2·27 전당대회에서 당시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대표를 선출했다. '황교안 체제 1년'간 한국당은 강성 지지자들의 뜻에 따라 장외투쟁·삭발·단식·국회 보이콧 등 모든 종류의 강경 투쟁을 해봤다. 강성 지지자들과 유튜버들은 환호작약했다.
당시 '황교안 한국당'의 장외집회에도 지금의 '이재명 민주당'의 장외집회처럼 각종 군소정당들과 시민사회단체가 가세했다. 황 전 대표가 흰 셔츠에 노타이 차림으로 단상에 올라 문재인 정권을 '대변인'으로 지칭하며 총선 심판의 사자후를 토해냈던 것도 비슷하다.
황교안 전 대표는 당시 개천절 광화문 장외집회에서 "북한에서 한반도 아래를 타겟으로 해서 SLBM을 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무엇을 했느냐"며 "안보 불안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김정은 대변인 역할만 한다. 우리가 똘똘 뭉쳐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대표의 연설에서 "일본"이라는 단어만 "북한"으로 바꾸면 황교안 전 대표의 연설문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항상 광화문 장외집회 이후에는 당시 문 전 대통령이 있었던 청와대앞 청운동·효자동까지 행진을 했는데, 이 또한 광화문 집회 이후 용산 대통령실로의 행진을 이끈 이재명 대표와 흡사하다.
'차기 대권' 부동의 야권 1위 지지율
심판과 정권탈환 기대감 섞인 신기루
총선 패배 땐 두 달만에 주저앉을 수도
"尹 다리나 긁어줬단 평가 받을 수도"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뿐만이 아니다"라며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며 당 안팎에서의 우려를 일축하고, 이견이 불거질 때마다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내세우는 것도 (이재명 대표와 황교안 전 대표가)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다"고 귀띔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24일 TJB대전방송에 출연해 "내가 78%라는 역사에 없는 압도적 지지로 당대표가 됐다. 지금도 그 지지는 유지되는 정도를 넘어 더 강화되는 중"이라며 "지지자와 당원이 실망하거나 흩어지지 않게 하고, 내년 총선을 반드시 이기는 게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언명했다.
황교안 전 대표도 전당대회에서 당원선거인단의 과반을 넘는 55.3%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대표가 됐다. 78%를 내세운 이재명 대표보다 못한 것 같지만, 이재명 대표는 합리 성향의 박용진 의원과 양자대결이었고, 황교안 전 대표는 3자 대결 속에서 당시 김진태 후보(현 강원도지사)와 강성 당원의 지지표를 나눠가졌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한줌 강성 당원들과 유튜버들의 지지를 바탕삼아 '강경 투쟁의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을 때는 마음이 상쾌하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 다하는 것의 끝은 참혹할 수밖에 없다.
황교안 전 대표는 당대표 임기 내내 야권 대권주자 중 부동의 지지율 1위를 지켜왔다. 2019년 9월 3~5일 실시된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황교안 전 대표는 14%의 지지율로 야권 대권주자 중 단연 선두였다. 당시 유승민 전 의원은 5%, 홍준표 대구광역시장과 안철수 의원은 4%,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3%였다.
갤럽의 10월 1~2일 설문에서는 17%로 뛰어오르며, 전체 1위인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22%)를 오차범위 내로 추격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당시 검찰총장)은 지지율이 1% 미만이라 순위권에 집계되지도 않다가, 1월 7~9일 설문에서야 비로소 1%로 올라왔던 시절이었다.
총선 직전인 2020년 4월 7~8일 설문까지 계속해서 야권 1위를 질주하던 황교안 전 대표는 총선에서 패망하자마자 극적으로 추락했다. 총선 참패 직후인 5월 12~14일 설문에서 단 1%의 지지율이 나오며, 직전 설문에 비해 지지율이 8분의 1 토막이 났다. 유승민 전 의원, 윤 대통령과 동렬이고 안철수 의원(3%), 홍준표 시장(2%)에 밀리는 결과였다.
다음달인 6월 9~11일 설문까지 지지율 1%가 잡히던 황교안 전 대표는 7월 7~9일 설문에서 1% 미만으로 순위에서 사라지며, 대권가도는 물론 정치권 전면에서 사실상 이탈했다.
지금 이재명 대표도 차기 정치지도자 1위를 달리고 있다. 갤럽이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설문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는 22%의 지지율로 이낙연 전 대표(2%), 김동연 경기도지사(1%)와 비교할 수 없는 야권 부동의 선두주자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하지만 이같은 현재 지지율은 신기루와 같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제1야당의 대표주자인 당대표로서 총선 심판을 이끌어 정권탈환을 기대하는 여론이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만약 당대표로서 총선을 이끌다 패배한다면 단 두 달만에 무너지면서 지지율 1% 밖으로 튕겨나간 황교안 전 대표의 전철을 충분히 밟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호남 권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내려놓지 않고 총선까지 이끌다가 패배하기라도 하면 의회권력마저 윤석열 정권에 넘겨줬다는 책임론에 직면하면서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기대감은 급속히 사라질 것"이라며 "사실 지게 되면 다 본인의 '사법 리스크' 때문 아니냐. 윤석열 정권 심판은커녕 다리나 긁어줬다는 비판과 실망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李, TJB대전방송서 '사퇴설' 강력 부인
'전격적·충격적인 사퇴' 위한 포석일까
文도 '전격 사퇴' '충격 후임'으로 대권
거머쥐어…"과연 李, 그럴 수 있겠나"
이재명 대표도 이와 같은 이치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이 대표는 황 전 대표와는 달리 중앙정치는 아니지만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선출직으로 하면서 정치를 해왔던 사람이다.
이 대표는 "당대표라는 게 단체장과는 다르더라"고 주변에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체장은 공무원·관료 조직의 수장이다. 상명하복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자기 뜻대로 인사를 낼 수 있는 대상만 기초단체장은 수백 명, 광역단체장은 수천 명 규모에 이른다. 명령 하나를 내리면 조직이 다 따라 움직인다.
헌법기관이고 의전서열이 높다지만 달랑 9명으로 구성되는 의원실 보좌진만 데리고 정치하던 국회의원들이 단체장을 한 번 맡으면 그 재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광역단체장을 하다가 다시 국회로 돌아온 한 중진의원은 공공연히 "중앙정치에 통 재미를 못 느끼게 됐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단체장을 십수 년 했던 이 대표에게는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당대표라는 게 단체장과 비교하면 뭣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다. 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임명직처럼 당대표와 상명하복 관계인 게 아니라, 각자가 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독립 헌법기관이다. 사무처 조직도 관료 조직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총선 패배 책임론이 부담되는데다 당대표라는 게 자신이 애초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면, 이 대표가 적절한 시기에 이를 내려놓고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 이재명 대표가 TJB대전방송에서 자신의 사퇴설과 관련해 "전망이 아니라 그렇게 (사퇴)하길 바라는 기대일 것이다. 특히 여당이 그럴 것이고 그에 동조하는 일부 입장이 있을 수 있다"며 강하게 부인한 것을 정치권에서는 크게 주목하는 분위기다.
2016년 총선을 한 해 앞둔 2015년 2·8 전당대회를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로 등판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내 비주류의 '흔들기'에 한 해 내내 시달리면서도 사퇴설에 아랑곳하지 않다가, 해를 넘긴 2016년 1월 27일에 전격 사퇴하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카드'를 꺼내들어 총선을 치렀다.
'김종인 비대위'는 이해찬 전 대표와 정청래 최고위원을 공천 배제하는 등 강성 지지층의 요구와는 정반대로 가면서 강경 색채를 지우고 중도로 외연을 확장해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에 문 전 대통령도 자칫 패배할 뻔한 총선의 책임론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은 물론, 차기 대권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대표 사퇴는 전격성이 있어야 하고 충격적이어야 한다"며 "사퇴설이 파다한 가운데 사퇴하는 것은 끌려내려오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사퇴설을 강하게 부인한 것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전격적인 사퇴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다만 이 관계자는 "문제는 자신이 사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꺼내들었던 '김종인 비대위원장 카드' 같은 충격적인 후속 인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도 "이래경 씨를 혁신위원장으로 인선했던 이재명 대표의 용인술과 '인재 풀'로는 불안감과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