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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한미일 이간질 꾀하나…일본에 '조건 없는 대화' 강조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입력 2023.06.28 15:24
수정 2023.06.28 15:24

北, 제재완화, 연합훈련 취소 등

韓美에 '조건 있는 대화' 고수

日에는 '조건 없는 대화' 촉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

제재 완화, 한미 연합훈련 취소 등 '조건 있는 대화'를 한국과 미국에 요구해온 북한이 일본을 향해 '조건 없는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단 만나서 대화하자'는 한미 요구를 외면했던 북한이 일본에 같은 접근법을 취하는 모양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28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리병덕 외무성 일본연구소 연구원 명의 게시글에서 일본이 미국·호주·유럽 국가 등과 함께 유엔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관련 화상토론회를 개최하려 한다며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납치 문제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의 아량과 성의 있는 노력에 의해 이미 되돌릴 수 없이 최종적으로 완전무결하게 해결됐다"고 밝혔다.


통신은 "일본이 마땅히 우리의 선의에 과거 식민지 지배와 반인륜적 만행에 대한 철저한 사죄와 배상으로 성근히 대답해야 했을 것"이라며 "역대 일본 집권층은 납치 문제를 극대화해 반공화국 적대감을 광란적으로 고취했고, 우리의 성의를 장기 집권의 정치적 야욕을 실현하는 데 악용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국민의 혈세로 짜낸 납치예산을 탕진하면서 반공화국 납치소동을 피워대는 것으로 얼마만한 이득을 챙기겠는지 새겨볼 필요가 있다"며 "일본이 실현 불가능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구태의연하게 국제무대에 들고 다니는 것은 부질없는 시간낭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제 조건 없는 일조 수뇌회담(일북 정상회담)'을 희망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급하고 있는 일본 당국자 입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일본이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며 납치 문제 해결을 앞세워선 안 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실제로 박상길 외무성 부상은 지난 5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북 고위급 회담 개최 의향'을 밝힌 지 이틀 만에 담화를 발표해 "일본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화답한 바 있다.


다만 "일본이 전제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납치 문제 및 북한의 자위권을 놓고 '문제 해결'을 운운한다"며 "앞선 정권의 방식을 갖고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해결해 보려는 것이라면 오산이고 시간 낭비"라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날 공개된 외무성 소속 연구원 명의 게시글 역시 납치자 문제, 불법 신무기 개발 등과 무관한 '조건 없는 대화' 의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AP/뉴시스

일본 측은 리병덕 연구원 게시글에 대해 즉각 선을 긋고 나섰다. 납치 문제가 해결됐으니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서라는 북한 측 주장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맞받은 것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납치 피해자 가족이 고령화하는 상황에서 시간적 제약이 있는 납치 문제는 한시도 흔들 수 없는 인권 문제"라며 "모든 납치 피해자가 하루라도 빨리 귀국할 수 있도록 전력으로 과감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쓰노 장관은 '기시다 총리가 일북 정상회담 조기 개최를 위한 고위급 협의 의사'를 밝힌 바 있다면서도 "일본의 북한 대응은 북일 평양선언(2002년)에 근거해 납치·핵·미사일 등 여러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북일 국교정상화를 실현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납치 문제와 불법 무기 개발 등이 양자 회담의 주요 현안이 돼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미일 엇박자 만들고픈 北
정치적 성과 노리는 日"


북일이 사실상 공개 메시지를 수차례 주고 받음에 따라 양측 물밑 대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앞서 마키노 요시히로(牧野愛博)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는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북일 물밑 대화가 지난달 북한 외무성 담화 발표 이전에 성사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밝힌 바 있다.


기시다 총리가 고위급 접촉 의향을 밝힌 시점과 외무성이 화답한 시점이 각각 토요일 오후, 월요일 오전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 체제 특성상 북일 대화와 같은 핵심 외교 이슈는 최고지도자 관여가 필수적인 만큼, 북한이 주말 동안 관련 결정을 내렸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북일이 물밑 대화를 꾸준히 진행하는 가운데 산발적인 공개 입장 표명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무엇보다 북일 접촉은 상호 필요성이 있는 만큼 향후 진전 여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북한은 한미일 공조 이간질을 위해, 일본은 국내 정치적 파급력을 염두에 두고 있을 거란 분석이다.


마키노 교수는 "북한은 한미동맹 강화를 경계하고 있다"며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대규모 경제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한미일 협력에 엇박자를 만들고 싶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기시다 총리 입장에선 납치 문제가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문제"라면서도 "앞서 인기가 높았던 아베 신조 전 총리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였다. 만약 이를 해결한다면 정치적으로 큰 성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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