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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캐릭터탐구㊵] 당신이 ‘섬’이라고 느낄 때 ‘파 프롬 헤븐’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3.06.19 09:05
수정 2023.06.19 09:06

섬에 다리를 놓는 사람들, 캐시-레이몬드 (줄리안 무어-데니스 헤이스버트)

‘매일’이 천국인 사람이 있을까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든 일일 겁니다. 우리를 낙원의 행복한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그 가운데 하나, 그것도 아주 큰 하나는 누구에게도 내 속내를 말할 수 없고, 그것을 온전히 혼자 짊어져야 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어도 내 이야기 들어 줄 이가 있고, 힘내라고 응원해 줄 이가 있다면 견딜 만합니다. 하지만 이 넓고 넓은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낄 때, 함께 사는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진실이 있고 가까운 친구에게도 내보일 수 없는 아픔이 있을 때 우리는 ‘섬’이 됩니다.


여기 프랭크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캐시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입니다. 남편의 회사는 번창하고 아내는 현모양처의 전업주부입니다. 집은 완벽하게 꾸며져 있고, 남편은 일밖에 모르는 성실한 가장이고 아내는 상냥하고 이해심이 넓습니다. 두 사람은 외모마저도 훤칠하며 아름답고, 패션 감각도 뛰어납니다. 첫째 아들은 반듯하고 둘째 딸은 사랑스럽습니다. 남편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아내는 성대한 파티를 열어 성공을 이웃 사회에 인증합니다. 여성잡지에서 캐시를 인터뷰하러 예정보다 일찍 들이닥쳐도 남편은 아내의 볼에 입맞춤하며 출근하는 길이고, 교양 넘치는 아내는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완벽한 실내장식의 집만큼이나 흠잡을 데 없는 옷차림만큼이나 완벽해 보이는 두 사람에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남편의 귀가가 늦고, 집에 와서도 피로를 호소하며 혼자 잠자리에 듭니다. 절친 엘리노어와 이웃의 여자들이 남편과의 잠자리를 자랑할 때 캐시는 그저 미소 지을 뿐입니다. 너무 일이 많아서 그러는 것일 뿐이야!


혹여나 남편이 딴 여자랑 바람을 피우나, 예상하신다면 그것은 아닙니다. 훨씬 드물어서 캐시에게는 훨씬 더 충격적일 ‘마음속 진실’이 프랭크에게는 있습니다. 자상한 프랭크는 매일 꼬박꼬박 야근이라고 집으로 전화합니다. 그러곤 퇴근해서 혼자 영화를 보기도 하고 술집 카운터 석에 앉아 옆자리를 기웃거립니다. 정확히는 남자들만 있는 술집에서, 옆자리의 남자들에게 눈길을 보냅니다.


캐시는 그날도 야근한다는 남편이 마음에 걸려서, 입주 가사도우미 시빌에게 도시락을 싸달래서 남편의 사무실로 찾아갑니다. 문을 연 순간 두 남자가 키스하고 있습니다. 한 명은 남편입니다. 자신을 등한시한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겁니다.


안색이 좋지 않다며, 언제든 네 얘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다며 걱정하는 엘리노어에게도 캐시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함께 ‘행복한 가정’이라는 성공을 전시하고 인증해온 엘리노어에게 ‘치명적 실패’로 파트너를 잃는 충격을 줄까 봐 그랬던 걸까요. 앞으로 계속 봐야 할 사이다 보니 남편의 체면을 생각해서일까요. 캐시 자신의 자존심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겁니다.


프랭크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아니 자신의 정체성은 뚜렷이 알지만 이를 숨겨야 하는 고통 속에서 가족 내의 ‘섬’으로 지내왔습니다. 이제 아내가 알게 됐고, 분노하기보다 ‘단지 병’일 뿐이니 함께 치료에 노력을 다하자는 아내다 보니, 한편으로는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니, 후련한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캐시는 이 터지는 속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 낯빛이 사색이 되어 갑니다. 남몰래 혼자 정원에서 울다 마주친 이가 있었으니, 돌아가신 아버지에 이어 정원을 돌봐 주고 있는 레이몬드입니다. 내가 속한 세계로 들어올 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안전하다 느껴져서 그랬을까요. 캐시는 누구에게도 못한 얘기를 레이몬드에게 털어놓고, 조경 화원을 운영하는 레이몬드는 그런 캐시에게 나무 사러 가는데 같이 가자며 잠시나마의 안식을 선물합니다. 이제 캐시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얘기하지 않은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시대 배경이 1950년대이고, 레이몬드가 흑인입니다. 남편이 동성을 사랑한다면 21세기에도 충격이겠지만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이라면, 제아무리 서양의 미국이라고 해도 충격의 강도가 대단했을 겁니다. 안주인과 정원사가 친하게 지내는 게 지금은 별일이 아닐 수 있겠으나 20세기 중반에는 백인과 흑인이 친구가 된다는 게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을 사건이었습니다.


어느 쪽의 충격이 더 클까요. 영화 ‘파 프롬 헤븐’(감독 토드 헤인즈, 배급 프라임픽처스, 2003)을 보면 프랭크에게는 출구가 있어 보이는데, 캐시에게는 도통 보이지 않습니다.


프랭크의 비밀이 탄로 나면서 ‘봉인 해제’라도 된 걸까요. 치료도 받고 심기일전하자며 아내와 마이애미로 여행도 다녀왔건만, 프랭크는 자신의 본능을 숨기는 게 더 괴롭습니다. 다름 아닌 마이애미에서 만난 사람과 밀애하고, 그것도 모자라 함께 살겠다고 집을 나가고, 끝내 캐시에게 이혼을 요구합니다. 자유를 찾아 꿈을 실현하는 프랭크, 캐시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아이들과 집에 남습니다.


남편이 떠나는 상황까지 되자 캐시는 친구 엘리노어에게 그간의 일들을 털어놓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캐시의 외로움에 공감하는 위로 대신 비난을 남기고 떠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선을 지켰다고 해도 엘리노어는 캐시와 레이몬드를 불륜 남녀 취급합니다.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여자와 아내와 사별한 남자의 불륜이 아니라 백인과 흑인 사이에 그어진 선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함께 어울리지 못할 ‘비상식’을 봅니다.


1862년 9월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령을 내렸어도, 100년 가까이 흘러도 인종의 벽은 실생활에서 허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딸을 데리고 백인 관람객만이 가득한 그림 전시회에 가는 레이몬드는 ‘별꼴’이고, 그런 레이몬드에게 다가가 ‘여긴 어쩐 일이냐’ 반가워하며 작가의 화풍에 대한 해석을 나누는 캐시는 ‘별종’입니다. 각자의 세계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레이몬드의 진취성, 피부 색깔에 괘념치 않고 똑같이 대하는 캐시의 인격은 ‘흑백분리’를 당연시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동기상구, 레이몬드와 캐시는 서로의 비슷한 기운을 부지불식간에 알아보고 서로에게 마음을 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속 깊은 얘기를 기꺼이 터놓을 수 있는 상대, 진정한 친구가 된 겁니다. 사랑으로 열매 맺을 수 있었지만, 시대상이 반영된 사회적 편견에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레이몬드는 캐시가 살아가야 할 공간에서 자신을 지웁니다. 더 이상 캐시가 오해받고 눈총받고 입방아에 오르길 바라지 않습니다.


캐시가 살아온 곳에서 아이들과 살아가게 두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딸에게 돌 던지는 학생들이 있는 곳을 떠나 딸이 교육받기에 조금이라도 나은 곳을 찾아 떠납니다. 캐시는 레이몬드에게 말합니다, 언젠가 내가 그리로 가겠다고. 그런 날이 왔을까요? 있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지금 시대에 비춰 보면 캐시와 레이몬드가 넘은 ‘선’보다 프랭크가 넘은 ‘선’이 파격으로 보입니다. 그때그때 다르다, ‘절대적’ 기준의 선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당시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억지로 생이별을 해야 할 만큼, 흑백의 하나 됨은 용납될 수 없는 ‘죄’처럼 취급됐지만요. 영화를 보다 생각합니다. 지금 나에게는 시대를 방패 삼고 사회를 핑계 삼아 잘못 고수하고 있는 ‘선’은 없는가.


영화 ‘파 프롬 헤븐’에는 매우 인상적 장면이 있습니다. 백인들뿐인 전시회에 흑인 부녀가 서 있던 것처럼, 흑인들뿐인 재즈바에 캐시가 앉아 있습니다. 흑일점으로 섬이 될 그들에게 캐시가 손을 내밀었고, 백일점인 그녀를 레이몬드가 혼자 두지 않습니다.


사실, 레이몬드는 일부러 캐시를 흑인들의 세계에 데려갔습니다. 나만 다르고, 나 혼자뿐인 ‘섬’이 되는 경험, 사회적 소수로서 최약자가 되는 경험을 백인인 캐시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뼛속 깊이 다가오는 역지사지, 진정 상대방의 입장이 될 수 있다면 공감과 이해의 폭과 깊이에 진전이 생기지 않을까요.


줄리안 무어(캐시 역), 데니스 헤이스버트(레이몬드 역), 데니스 퀘이드(프랭크 역)를 비롯한 배우들이 명연을 해준 덕에 우리는 그 ‘재즈바’에 가지 않고도 사회적 소수자들의 입장과 감정에 역지사지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특히나 줄리안 무어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평한 대우가 몸에 밴 캐시의 ‘우아한 인성’을 너무나 실감 나게 연기해 제59회 베니스영화제를 비롯해 미국과 영국의 여러 비평가협회가 주는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닮고 싶은 어른의 좋은 예를 아름답게 연기한 데니스 헤이스버트의 연기도 멋집니다. 천국과는 거리가 먼, 전혀 천국이 아닌 세상에서 천국처럼 아늑한 일상을 만들 줄 아는 이들의 교우, 나를 ‘섬’으로 남겨 두지 않는 누군가, 당신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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