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임대차3법…文정부 서민정책 착오가 낳은 '전세사기'
입력 2023.04.27 06:09
수정 2023.04.27 06:09
우선매수권·LH매입 등 골자, 전세사기 피해 특별법 발의
임대차3법, 전셋값 단기간 급등 불쏘시개 작용
전세사기, 저금리·집값 상승·정부정책 등 맞물린 부작용
최근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급격하게 불어난 데 대해 이전 정부의 판단 착오로 시작된 서민 주거 정책이 한몫했단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이 단기간 급등하자 내 집 마련에 나서지 못하는 무주택자들을 위해 전세자금대출 확대, 임대차 3법 등을 추진했는데, 시장 상황이 급변하면서 외려 서민들의 발목을 잡게 됐단 지적이다.
27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전세사기 피해 지원방안을 담은 특별법을 국회에 발의할 예정이다. 특별법에는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우선매수권 부여, 장기 저리 대출 지원, LH 매입임대 추진 등의 내용이 포함될 전망이다.
특별법은 이르면 다음 주 통과될 예정이다. 정부는 특별법 발의와 함께 피해 지원 종합대책도 내놓는다.
정부 여당은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급속도로 늘어난 원인으로 이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지목한다. 전문가들 역시 문재인 정부의 지나친 시장 규제책이 집값 상승을 부추겨 지금의 전세사기 피해를 키우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은다.
서민 주거안정을 꾀하겠다며 무리하게 강행한 임대차 3법은 결과적으로 전셋값 상승의 불쏘시개로 작용했단 분석이다.
KB부동산 시계열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기간(2017년 5월~2022년 4월) 전국의 주택종합전세가격은 17.4% 상승했다. 서울의 전셋값은 27.2% 올랐다.
특히 2020년 7월 임대차법 개정 이후 두드러지는 상승세를 나타냈다. 문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임대차법 개정 당시인 2020년 7월까지 전국의 전셋값은 1.3%, 서울은 6.5% 각각 상승했다. 하지만 법 개정 직후인 그해 8월부터 1년 사이 전국의 전셋값은 11.2%, 서울은 14.5% 급등했다.
4년간 전셋값을 올리지 못하는 집주인들이 애초에 보증금을 올려 물건을 내놓기 시작했고, 아파트값 상승으로 기존 세입자들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가 늘어 전세매물 품귀가 심화됐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달리는 청년·신혼부부들은 자연스럽게 빌라 등 비아파트로 내몰리게 됐단 관측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 팀장은 "최장 4년의 계약기간이 보장되는 계약갱신청구권 시행으로 전세 물건이 부족한 상황에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르는 사람에게 전셋집 보여주기를 꺼리는 분위기였다"며 "결국 재계약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전세 유통물량이 줄어드는 주요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전세자금대출 확대도 원인으로 꼽힌다.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무주택자들에겐 대출을 받더라도 월세보다 이자가 저렴한 전세가 더 유리했다. 전세대출은 보증금의 최대 90%까지 대출이 가능한 데다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소득요건이 없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 규제에서도 자유로웠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지난 정부에선 전세대출을 굉장히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다. 계약 갱신 시점에 보증금이 오르면 그 오른 금액만큼 더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며 "집값은 오르고 전세대출은 수월하고 임대차 3법으로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올리는 등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맞물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매매가격과 갭이 좁혀지니 갭투자를 하기 수월한 환경이 조성돼 투자수요가 대거 유입된 것"이라며 "지난해부터 집값이 떨어지고 전·월셋값이 하락하면서 이전에 계약한 보증금을 그대로 돌려줄 수 없게 된 깡통전세가 늘어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맺어진 전세계약 만료 시점이 도래하는 올 연말까지 전세사기 피해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전세사기 피해 지원과 함께 예방 대책을 발 빠르게 마련한단 계획이지만, 속도보다 전세제도와 관련한 근본적인 고민이 선행돼야 한단 의견도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전세사기'라는 단어가 대명사처럼 쓰이는데 이게 정말 사기가 맞냐는 접근부터 해봐야 한다"며 "정부가 가진 기존 시스템이 환경이 달라지면서 지금처럼 문제가 발생한 건지, 만약 집값이 오르고 금리가 저렴한 환경에서 갭투자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해 운영하려 하던 공급자만의 문제라면 그게 정말 사기라고 볼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전세제도를 둘러싼 문제가 발생한 원인과 진단에 따라 처방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며 "세입자에게 가장 근원적으로 필요한 건 보증금 반환이다. 보증금이 안정적으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을 줄 만한 대책이 나온다면 같은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