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파국행 열차에 몸을 실었나?
입력 2023.01.16 07:07
수정 2023.01.16 07:07
당 내분으로 정권까지 잃었으면서
‘친윤’만으로는 국정 이끌 수 없다
당내 갈등 조정·해소제도 마련해야
‘친박’ 위에 ‘진박’이 있다고 했다. “내가 ‘진박’이다”라고 한다 해서 인정되는 게 아니었다. ‘진박 감별사’의 인가(認可)가 필요했다. 정말 그런 자리가 있었다는 건 아니고 언론이 만들어낸 신조어(新造語)였다. 그렇지만 근거가 아주 없지도 않았다. 친박 조원진 당시 의원이 2015년 12월 19일 대구 동구을 선거구 출마를 선언한 이재만 예비후보(전 동구청장)의 개소식에 참석해 “내가 가는 곳은 모두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한 게 씨가 됐다.
당 내분으로 정권까지 잃었으면서
‘진실한 사람’이라는 표현 자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표현이었다. 그보다 한달 9일 전이었던 11월 10일 박 당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앞으로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에 앞서 같은 해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라는 격한 표현으로 힐난했다.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국민들께서 심판을 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이듬해의 제20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여당의 공천파동이 이로써 시작된 셈이었다. 대구 동구 을은 유 의원의 지역구였는데 조원진·홍문종·이장우 의원(당시) 등 대표적인 친박들이 이 예비후보 응원에 나섰다는 것은 ‘유승민 배제’ 선언이나 다를 바 없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당시)는 경북 경산이 지역구임에도 불구하고 대구지역을 순회하면서 진박세력을 독려했다. 대구의 진박 예비후보 6인도 2016년 1월 20일 한 식당에 모여 단합을 과시하는 사진을 공개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 해의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보수 여당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진보 야당에 원내 제1당의 지위를 뺏기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2004년 제17대 총선 때 대선비자금 수사와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소추 등으로 멸문(滅門)의 위기에까지 몰렸었다. 그 당의 기사회생을 주도했던 박 전 대통령이 보수여당의 치욕적 패배에 한몫 한 것이다.
국민의힘이 주는 기시감(旣視感: 이미 전에 경험했던 것 같은 느낌, 데자뷰)이 바로 그 전신 새누리당의 파탄(20대 총선 패배와 박 대통령 탄핵, 21대 총선 참패)에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이 그때의 여당 지도부에 대해 불만을 가질 만은 했다. 그러나 정치는 우격다짐으로 풀리는 게 아니다. 누구보다 그 이치를 잘 알았을 박 대통령이 감정 조절을 못해 악수를 두고 말았다. 판박이 양상이 지금 국민의힘 안팎에서 도드라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전적(事前的) 정치경험이 전무하다. 여당과 국회에서 동지적 연대의식을 가질 만한 교분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는 뜻이다. 지금 여당 내의 이른바 ‘친윤세력’은 국민의힘에 입당한 후에 형성됐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오랜 인연을 가진 정치인이 몇몇 있다. 그러나 정치인·정당인으로서 같은 길을 걸었던 정치적 동지는 아니다. 관료조직에서도 검찰 외엔 특별한 연고를 가진 인사들이 많을 리 없다.
‘친윤’만으로는 국정 이끌 수 없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오랜 개인적 친분, 학연, 지연, 직연(職緣) 등을 공유한 인사들의 눈과 판단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마 인사 자료로 쓸 만한 수첩을 갖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같은 관점에서 말하자면 윤 정부의 고위인사들 대부분은 대선을 거치면서, 또 당선 후에 가까워진 사람들(이른바 윤핵관 또는 친윤)에 의해 발탁·기용됐다고 봐야 한다. 모두가 대통령의 충직한 심부름꾼을 자임하고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생판 초면이다.
(‘수첩’은 조선 명종·선조 대의 문신으로 대사간·이조판서·호조판서를 지낸이후백(李後白)의 고사에서 얻어 온 용어다. 그가 이조판서로 있던 어느 날 일가뻘 되는 사람이 찾아와 벼슬자리 이야기를 슬그머니 꺼냈다. 이 판서는 한참을 난감한 표정으로 있다가 문득 작은 책자 하나를 꺼냈다. 자신이 평소 벼슬자리에 천거할만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둔 것이라고 했다. 거기엔 청탁한 사람의 이름도 있었다. 인사청탁이나 하는 사람임을 알고 나서야 어떻게 천거할 수 있겠느냐며, 애석하지만 책에서 이름을 지울 수밖에 없노라고 했다-석담일기.)
대통령을 꿈꾼 바가 없었을 테니 인사수첩인들 만들어 기록해왔겠는가. 주변의 천거자들이 아무리 믿을만하다 해도 그 사람들 역시 각자의 연고에 따라 추천하게 마련이다. 물론 조심이야 하겠지만 개인적 이해득실에 휘둘릴 경우가 아주 없으란 법은 없다. 이들이 ‘편 만들기’ 유혹에 넘어가면 대통령은 유능한 인재 대신 ‘친윤’의 세력들에 둘러싸일 것이다.
그러므로 친윤을 내치라고 말하자는 게 아니다. 그들이 패당을 짓고 인사를 독점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상식을 상기시키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이 소위 ‘멀박’ ‘비박’ ‘반박’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친박’ ‘진박’들을 자제시키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더라면 유서 깊었던 보수정당이 그처럼 허망하게 패퇴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함은 선한(先漢=前漢)이 흥하고 융성한 까닭이요, 소인을 친근히 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함은 후한(後漢)이 기울어지고 쇠한 까닭입니다.”
제갈량의 ‘출사표’ 한 대목이다. 용인(用人)의 요체를 말하고 있다(윤 대통령이, 이 부분만이 아니라 출사표 전문(全文)을 책상 앞에 두고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은 3월로 예정된 당권 경쟁 때문에 시끄럽다. 분위기로 보건대 윤 대통령과 주변에서는 ‘친윤 당 대표’를 만들어내고자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그게 아주 수월하지는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인적네트워크가 (아직은) 빈약하다. 그 때문에 ‘친윤’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이지만 득실이 명확히 계산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지지‧동참 세력과 함께 반발세력도 키워놓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당내 갈등 조정·해소제도 마련해야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가 기세를 올리고 있지만 안철수 의원,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등의 득표력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 나 전 의원은 21년 전당대회 때 당원 표를 더 많이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여론조사에 밀려 당권 쟁취에 실패했었다. 안 의원은 후보단일화를 통해 윤 정권을 출범시킨 만큼 자신이 당 대표를 맡는 게 순리라고 여길 것이다. 유 전 의원도 당내에 일정한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 각자로서는 김기현 의원에 밀린다고 판단될 경우 연합전선을 모색할 개연성이 부족하지 않다.
윤 대통령은 ‘당무 개입’논란을 초래해서 훗날 법적책임문제로까지 비화될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억울한 생각이 들더라도 당무 불개입이 정치적·법률적 원칙이라면 존중하는 것이 ‘윤석열다움’을 지키는 길이다. 대신 당의 유력자들은 물론 소속 의원들 모두의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낼 방법을 찾아내는 게 옳다.
친윤세력을 만들면 그들로부터는 충성을 이끌어낼 수 있겠지만 서클 밖의 사람들에게는 소외감, 거부감, 심지어는 적대감까지 안겨줄 수 있다. ‘충성과 시혜의 교환’이라는 구시대적 정치윤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의 리더십 가운데서도 우선시되는 것이 신뢰성과 설득력이다. 여당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참여와 협력의 의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게 정권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필수적 덕목이라고 하겠다.
특히 장제원 의원과 나경원 전 의원(측)이 벌이고 있는 ‘친윤 vs 반윤’ 언쟁이 기가 막혀 하는 말이다. 대통령 탄핵과 총선 참패로 멸문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가 천신만고 끝에 회복한 정권을 또 상실하려고 작정한 사람들 같다. ‘이준석에 덴 상처’가 깊다는 점은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다시 ‘친윤’ ‘진윤’이 나서서 ‘멀윤’ ‘비윤’ ‘반윤’을 몰아세우는 상황을 재연하면 단언컨대 국민의힘과 그 위에 선 윤 정부는 파국행 열차에 몸을 싣는 격이 된다.
지금이라도 당내에 갈등 조정 및 해소를 위한 제도와 기구를 만들 일이다. 당직과 공직 후보 경쟁에서 대결한 상대는 서로 정적이 되고 마는 게 한국 보수정당(물론 진보정당도)의 오랜 고질이었다. 경쟁의 룰과 윤리를 존중하는데 생리적으로 서툴기 때문이다. 자리다툼하다가 공멸의 길로 치닫는 것은 얼마나 한심한 작태인가.
(박근혜 대표, 김무성 사무총장 시절, 그러니까 2005년에 한나라당의 홍준표 혁신안 공청회가 있었다. 패널로 참가하긴 했는데 2시간이나 기다려서야 잠깐의 의견개진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뿐이다. 어쨌든 그 때 제안했던 것이 ‘당내 갈등 완화 및 해소 방안 마련’(아마도) 이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던 모양으로 이후로도 ‘학살 공천’이 거듭됐고 ‘진박’ ‘비박’의 대립 속에 정권이 붕괴하는 참사까지 겪어야 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솜씨가 남아 다시 ‘진(眞)’과 ‘비(非)’ 혹은 ‘반(反)’의 혈투를 벌일 참이다. 공멸(共滅)에 이력이 난 사람들이어서 그런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