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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계획'이면 폭력‧파괴행위도 그냥 당해라?…노란봉투법 살펴보니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2.09.15 10:50 수정 2022.09.16 00:21

폭력‧파괴행위로 피해 입어도 개인 상대 손배소 금지

노조 상대 손배소도 '존립 불가능' 판단시 금지

노조 면책 범위 무한대 확장…불법행위 방조

헌법상 재산권 위배…세계적으로 유례 찾기 힘들어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노란봉투법 봉투를 들어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진보 정치권에서 입법을 추진 중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을 두고 경영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입법 내용을 살펴보면 노동조합원이 폭력‧파괴행위를 저지르더라도 피해를 입은 기업이 대응할 방법을 사실상 봉쇄해놓고 있어 노조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어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정치권에 따르면 현 제21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및 가압류를 제한하는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 6건이 계류돼 있다.


2020년 발의된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안, 정의당 강은미 의원안을 비롯, 지난해 발의된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의원안 등 3건이 계류돼 있었고, 올해 8월 이후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안, 강민정 의원안, 양경숙 의원안 등 3건이 더 추가됐다.


노란봉투법은 기본적으로 기업이 노조 측의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현행 노조법을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확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 두산중공업 조합원이 손해배상‧가압류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분신한 사건과 쌍용차 불법 점거농성 이후 금속노조 등에 손해배상이 청구된 사건 등을 계기로 근로자가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손배소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경영계에서는 기업이 손배소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할 경우 노조가 이를 악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불법행위를 지렛대 삼아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내놓고 수용하도록 협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해배상·가압류 제한 관련 노조법 개정안 발의 현황. ⓒ한국경영자총협회

6건의 개정안은 공통적으로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배·가압류 금지’ 조항을 추가하면서 ‘폭력·파괴행위’는 예외로 두고 있으나, 이 역시 ‘폭력‧파괴행위의 경우에도 손해발생이 노동조합에 의해 계획된 경우 임원‧조합원 등 개인에 대한 손배‧가압류 금지’ 조항으로 상쇄시키고 있다.


노조 차원에서 계획된 경우 조합원이 폭력‧파괴행위를 저질러도 개인에 대해서는 손배‧가압류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개정안 취지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배상액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상황을 방지하고, 폭력‧파괴행위를 계획한 노조에 책임을 묻도록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개정안은 개인이 아닌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에 대해서도 ‘노조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의 금액은 금지하도록 보호하고 있다. 이를테면 노조가 고의로 조합원들을 동원해 폭력‧파괴행위로 기업에 수천억, 수조원 대의 피해를 입혀도 기업은 대응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심지어 올해 발의된 강민정 의원안에는 노조가 폭력‧파괴 행위를 저질렀어도 사용자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법원이 인정할 만한 경우 손해배상액을 감면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비유하자면, 상대에게 폭력을 휘둘러 심각한 상해를 입혀도 피해자가 가해자의 분노를 유발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무죄라는 식이다.


광범위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음으로써 노조의 권한을 무한대로 확장하고 기업의 방어권을 전면 해제하는 내용이다.


설령 ‘폭력‧파괴행위 예외’를 무력화시키는 조항이 삭제된다 하더라도 노조가 기업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힐 가능성은 존재한다. 지난달 대우조선해양 도크 점거농성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하청 근로자들의 점거농성에 폭력‧파괴행위는 수반되지 않았으나 직접 피해액만 수백억원이었고, 농성이 길어졌을 경우 피해가 수천억원까지 늘어날 우려가 있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애초에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에도 손배소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것 자체가 사측의 방어권을 크게 약화시키는 내용인데, 법안을 살펴보면 폭력‧파괴행위까지도 사실상 대응을 못하도록 해놨다”면서 “노조의 면책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하는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노위원장실을 방문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으로부터 노랑봉투법 입법과 관련한 경영계 의견서를 전달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경영계에서는 노란봉투법이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더욱 기울어지게 만들 뿐 아니라 애초에 헌법에도 위배되는 무리한 법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 제23조는 모든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재산권을 규정하고 있으며, 민법 제750조는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에 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부과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을 보호하도록 돼 있다.


노란봉투법이 헌법상 기본권인 근로 3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기본권 보호를 명목으로 불법행위까지 면책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을 과도하고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는 게 경영계 입장이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 14일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노란봉투법은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라 불법쟁의행위까지 면책하는 것으로, 헌법상 기본권인 사용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우리 헌법정신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불법행위자가 피해를 배상하는 것은 법질서의 기본 원칙인데,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오히려 불법행위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인 사용자에게만 피해를 감내하도록 하는 매우 부당한 결과를 초래해 우리 경제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입법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불법쟁의행위에 대해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1982년에 노조의 모든 단체행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는 입법이 있었으나, 헌법위원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아 시행되지 못했다.


영국의 경우 노조의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시 상한액이 규정된 사례로 노동계에서 인용하고 있지만, 올해 7월 상한액을 기존 25만 파운드에서 100만 파운드(약 16억원)로 4배 인상했고(10만명 이상 조합 기준), 조합원 개인에 대한 배상 청구도 인정하고 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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