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통일부 장관의 ‘전쟁’ 위협
입력 2022.06.06 07:07
수정 2022.06.07 04:44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북한 싸고돌기
협상이 통하는 상대여야 말이지
힘 뒷받침되지 않는 평화는 허상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 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
당시(그러니까 2015년)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이런 내용의 글을 올렸다. 김원봉이 등장하는 영화 ‘암살’을 보고 “남북 간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라며 그렇게 심경을 피력했다는 것이다(조선일보, 2019.06.06. 기사 참고).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북한 싸고돌기
그는 대통령으로서 행한 연설(19년 제64회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김원봉을 특별히 거명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습니다. (중략)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김원봉의 참여로 광복군이 완성됐고, 그것이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다는 게 연설의 요지였다. 문 전 대통령이 역사학자였다는 말은 들은 적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행세했다. 아주 명쾌하게 역사를 재단한 것이다. 하필이면 현충일 추념사에서!
해방 전 김원봉의 사상 편력이 어땠는지는 논외로 한다 해도 그가 48년 남북협상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간 후 거기에 눌러 앉아 김일성 집단의 고위직을 지낸 사실은 기억돼야 한다. 그는 북한 체제 안에서 국가검열상·노동상·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물론 김일성의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가담, 충성을 다했다.
문 대통령이 그의 공로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정권 안팎에서 좌파 독립유공자 재평가와 서훈이 공공연히 이뤄지던 때의 시기적·사회적 상황과 맞닿아 있었다. 김원봉은 좌파 진영이 주목하기 시작한 서훈 대상자였다. 문 전 대통령은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하거나 추동하는 차원에서 특정인을 위한 현충일 추념사를 했던 셈이다.
돌아보면 문 전 대통령의 행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재임 중에 행한 다섯 차례의 현충일 추념사에서 한 번도 ‘북한’을 언급한 바 없다. 6·25의 피해는 말했지만 그 가해자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항일투쟁에 대해서는 거듭거듭 강조하면서도 6·25의 참극은 스쳐 지나가듯 말했다. 대한민국을 김일성의 손아귀에서 구해낸 영웅 고 백선엽 장군의 영전에 조문 메시지 몇 자조차 아꼈다. 같은 기간 중 서울광장에서는 서울시·더불어민주당 공동의 고 박원순 씨 서울특별시장(葬) 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협상이 통하는 상대여야 말이지
지난 20년 3월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에서도 문 전 대통령의 회피화법은 변함없이 구사됐다. 그는 기념사에서 천안함 폭침이 누구의 짓인지 말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가 분향하는 대통령에게 따지고 들었을까.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
북한에 대한 그의 과공(過恭)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서도 유감없이 부각됐다. 20년 9월에 서해 연평도 인근해상에서 우리 공무원 한 사람이 북한 측의 총격으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문 전 대통령은 피살 공무원의 아들에게 친서를 보냈다.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대통령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희생자의 고교생 아들은 올 1월 18일 대통령의 편지를 반환했다. 청와대측이 수령하지 않아 땅바닥에 놔두고 돌아섰다. 그 정도로 끝나지도 않았다. 유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소송에서 법원이 군사기밀을 제외한 일부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지만 청와대는 항소로 대응했다. 그리고 문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양산으로 가 버렸다.
다시 현충일을 맞았다. 이제는 문 전 대통령이 일관되게 노출했던 그 황당한 대북 과공(過恭) 혹은 과공(過恐)의 작태는 보지 않아도 되겠거니 했는데, 웬걸 ‘그와 그들’의 행태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과시 될 모양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압박 위주 대북정책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일관성 있게 협상으로 끌어내는 전략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기 중 전쟁이 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뉴시스, 05.30).
“북한을 달래 협상에 나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굴종이라고 한다면 생각이 짧은 것”이란다. “발본색원하는 방법은 결국 협상밖에 없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 때 문 전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며 “옛날에 한두 번 만난적 있는, 그 우정으로 만나는 건 아니다. 정치인은 그렇게 안 움직인다. 쓸모가 있으니까 만나는 것”이라고 정치의 달인인 양 역설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을 대북 특사로 보내기 위한 만남이라는 게 그의 상상력 풍부한 단정이었다. 바이든은 통화만 하고 떠났다. ‘특사’에 대해서는 ‘ㅌ’자도 언급이 없었다.
힘 뒷받침되지 않는 평화는 허상
북한 체제의 본질과 속성을 모를 사람이 아니다. 수십 년을 북한 전문가로 온갖 요직을 거치며 활동했다. 젊은 시절에는 아주 혹독하게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전문가’였다고 ‘월간조선 5월호’가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어떤 계기에 180도 입장과 논리를 뒤집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설명이 없었다.
북한을 잘 안다면 북한과의 ‘협상’이 갖는 ‘한계’도 말해야 한다. 협상이라는 것은 함께 가 닿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 가능한 행위다. 한쪽의 목적과 목표에 상대가 무조건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굴종이다. 북한이 할 수 있는 협상이 그것이고, 정 전 장관이 정부에 압박하는 협상이 또한 그것이다. 그런데도 굴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의 전체주의적인 공포정치를 비판하지 마라. 우리의 인민에 대한 지배형태와 방법에 대해 간섭할 생각은 애초에 버려라. 우리의 핵무장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외세의 군사적 개입이 절대 없을 것임을 보장하라.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그게 전쟁이든 굴복이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생각 따위는 할 생각을 마라. 협상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모든 외세는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전제되는 협상도 선(善)일 수 있는지 그 견해부터 듣고 싶다.
무기 앞에 맨손으로 맞서는 대응방식으로 굴종이 아닌 평화가 확보된 예는 인류사상 한 번도 없었다. 그런 행동은 상대의 폭력성을 부추길 뿐이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무기를 버리는 순간 항복을 강요 당한다. 전쟁이 없는 상태가 곧 평화인 것은 아니다. 힘에 뒷받침되지 않는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 설령 가능하다해도 그건 일시적이고 착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북한과의 효과적인 협상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갖고 있다면 그것부터 제시할 일이다. 그런 대안도 없이 새 정부를 호구(虎口) 쪽으로 몰아대는 것은 이적행위일 수 있다. 김정은이 그간 평화공세를 편 게 문 전 대통령의 평화 애호 정신에 감동한 때문이라고 여기는 건가? 그래서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삶은 소대가리’라고 놀리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믿는가? 재롱떠느라고? 북한은 폭력에 중독된 집단이다. 김정은 체제에 대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게 현재로서는 그것밖에 없다.
현충일을 맞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더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