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과 거리 尹측, 국민투표 카드 꺼냈지만 현실성은 '글쎄'
입력 2022.04.28 02:00
수정 2022.04.27 23:50
장제원 "尹에 국민투표 건의할 생각"
현실화 가능성 낮아…법적 문제 상존
과거 '헌법 불합치' 판정 후 법 개정 無
尹직접 언급하더라도 '선언적 의미' 가능성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추진하고 있는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문제에 있어 “국회와 당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이어왔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국민투표 실시’라는 카드로 본격적인 저지 움직임에 나설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취재진과 만나 "국민적 상식을 기반으로 해서 헌법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 당선인 비서실은 윤 당선인에게 국민투표를 부치는 안을 보고하려 한다"고 언급했다.
국민투표는 헌법 제72조의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는 내용을 근거로 실시되는 제도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총 6번 실시됐으며 보통 개헌이 이뤄질 때 국민들의 의사를 묻기 위해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가장 최근으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는 9차 개헌안이 탄생할 때 실시된 바 있다.
윤 당선인 측이 국민투표를 언급하게 된 배경에는 국회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의 강행 처리 움직임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전국민 대상 투표를 통한 여론전으로 민주당의 정치적 부담을 배가시키겠다는 승부수로 읽힌다는 평가다.
장 실장은 “차기 정부가 지금 탄생을 했고, 대한민국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은 차기 정부와 의논을 하고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해야 될 일”이라며 “국회가 압도적으로 다수의 힘을 가지고 헌법 가치를 유린하고 있는데 과연 이것을 국민들이 원하는지 직접 물어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 측은 구체적인 투표 시점으로 6·1 지방선거와의 동시 실시를 제안하며 실질적인 실무 검토에 돌입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장 실장은 “비용적인 측면에서 6·1지방선거 때 함께 치른다면 큰 비용도 안 들고 국민들께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인수위에 나와 있는 변호사들과 함께 의논해서 당선인께 보고할 생각”이라 설명했다.
단, 정치권에서는 윤 당선인 측이 꺼낸 국민투표 카드가 현실화되기는 어렵다는 시선도 많다. 국민투표 요건이나 절차에 있어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분석이 나오는 탓이다.
우선 현행 국민투표법 자체가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점이 관건이다.
당시 헌재는 국민투표법 제14조 1항의 “국민투표를 한다고 공고한 시점에 우리나라에 주민등록을 해 놓았거나 재외국민이더라도 국내 거소 신고가 돼 있어야 투표인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내용이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후 현재까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현재는 국민투표법 자체가 효력을 상실한 상태라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실제 지난 2018년 열린 6·13지방선거에서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도 이 같은 문제에 부딪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재외국민의 참여를 제한하는 현행 법 조항의 효력이 헌재 결정으로 상실됐다. 투표인명부 작성이 불가능해 국민투표 실시도 불가능할 것”이라 견해를 밝혔다.
장제원 실장이 “요건 절차를 다 검토할 것으로, 투표인 명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잘 검토해 당선인께 보고할 생각”이라 말했지만, 결국 다수당인 민주당의 협조 없이 법안 개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 문제를 뛰어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그간 개헌이라는 굵직한 이슈 외에 개별 법안으로 인해 국민투표를 실시한 사례가 전무한 만큼, 투표의 당위성에 대한 전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날 국회에서 민주당의 검수완박법 본회의 상정에 맞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실시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민주당이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있다면 다음 정부에 넘겨 국민투표 대상으로 해보라”면서도 “국민투표 카드는 그냥 정치적 주장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 선을 긋기도 했다.
따라서 윤 당선인이 직접 국민투표 실시 필요성을 언급하더라도 ‘선언적 의미’에 국한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당선인 신분이라는 점과 입법부인 국회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찬반 입장 표명을 자제해 온 윤 당선인이 우회적으로 사안의 중대성을 환기시킨다는 차원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입법부의 권한을 침범하는 행위라며 비판에 나섰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삼권분립을 전면 부정하는 반헌법적 주장에 불과하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지금 내뱉고 있는 것”이라 꼬집었다.
당 일각에선 섣부른 국민투표 제안으로 인해 불필요한 역풍을 불러오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충분한 검토 과정과 공감대 형성 과정 없이 인수위 실무진 차원에서 공론화를 시킨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라며 “국회에서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만큼 보다 정제되고 실효성 있는 메시지가 나가야 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