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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우크라이나의 눈물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04.07 14:19
수정 2022.04.09 22:44

영화 ‘해바라기’

드넓은 들판 위를 황금빛 해바라기가 물결처럼 끝없이 출렁인다. 전쟁에 징집된 남편을 찾아 우크라이나로 떠난 그녀의 눈앞에 해바라기 밭이 펼쳐진다. 이탈리아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고전 영화 ‘해바라기’의 명장면이다. 영화 속 배경이 된 우크라이나의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해바라기가 피어있는 넓은 평원은 그 어떤 풍경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의 국화로 국기에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노랗게 핀 해바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크라이나 들판에 핀 해바라기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전쟁 중 숨진 군인과 민간인들이 집단으로 묻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민족의 비극적 수난사가 배어 있는 곳,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잊고 있었던 고전 영화 ‘해바라기’를 소환했다.


2차 세계대전 무렵. 나폴리 시골에 살던 조반나(소피아 로렌 분)는 나폴리에 주둔 중인 군인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분)와 사랑에 빠진다. 부대 복귀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둘은 결혼식을 올리지만, 안토니오는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떠나게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조반나는 남편의 전사 통지서를 받게 된다. 남편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는 그를 찾아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소련의 구석구석을 헤맨다. 천신만고 끝에 남편을 찾아내지만 기억을 잃은 안토니오는 전쟁에서 죽기 전 그를 구해준 소련 여인 마샤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탈리아로 돌아와 남편을 가슴에 묻고 새로운 사람과 결혼해 살고 있는 조반나 앞에 기억을 되찾은 안토니오가 나타난다.


영화는 전쟁의 상흔을 로맨스를 통해 그려냈다. 연출을 맡은 비토리오 데 시카는 세계영화사에 있어 한 획을 그은 거장 감독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궁핍한 이탈리아 생활상을 과감하게 드러낸 영화 ‘자전거 도둑’과 ‘구두닦이’ 등을 만들어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알렸다. 1970년 연출한 ‘해바라기’ 역시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그린다. 전쟁이 갈라놓은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메인 테마곡 ‘사랑의 상실(loss of love)’의 슬픈 선율에 맞춰 영화는 그들의 사랑이 맞게 된 모진 풍파를 따라간다. 또한 원망과 그리움으로 뒤섞인 마음으로 오열하던 소피아 로렌의 명연기를 통해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보여준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도 일깨운다. 영화 속에서 조반나는 독일군들이 포로들에게 해바라기 밭에 자기 무덤을 파게 했고 그녀의 남편 역시 해바라기 아래 묻혔을 거라는 말을 듣는다. 영화 속 장면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군인에게 한 할머니가 ‘해바라기 밭의 거름이나 되라’고 호통 쳤던 일과 오버랩 된다. 2차 대전 중 400만 명의 군인들이 광활한 해바라기 평원에서 뒤엉켜 싸웠으며 전쟁으로 희생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700만 명에 이른다는 기록도 있다. 아름다운 꽃과 검붉은 피가 섞여 있는 곳, 우크라이나 평원에는 영화처럼 아직도 해바라기가 피고 있다. 세계 3대 곡창지대이지만 스탈린의 집단농장 체제 강요로 기아가 발생해 수백만 명이 죽어나간 우크라이나는 이번 러시아의 침공으로 비극이 반복되면서 우크라이나의 눈물이 세계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SNS시대가 되면서 지구촌 사람들은 과거의 달리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해바라기를 들고 독재자와 전쟁을 일으킨 전범들을 규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화 ‘해바라기’가 52년 만에 재조명되고 있다. 해바라기의 꽃말은 기다림과 사랑, 희망이다. 영화를 보면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우크라이나의 아름다운 해바라기 밭을 다시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양경미 /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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